단축근무를 시작한 지 어느덧 2년이 지났다..
딸아이의 장애를 알게 되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마음에 한동안 회사일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모든 지인의 연락을 끊었고.. 커리어를 포기하고 휴직까지 고민했지만, 리더와 수차례 면담 후에 결국 오전 근무만 하는 단축근무를 선택했고, 그렇게 조금씩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갔다. 월급이 반으로 줄어서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만약 휴직을 했었더라면 더 힘든 과정이었을것 같고 당시 리더의 제안에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근무 시간을 조금더 늘려서 오후 4시까지 일하고 퇴근해 아이의 발달치료와 병원 진료를 매일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개발자로서의 일과 부모로서의 책임 사이에서 매일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다. 하루의 절반은 회사 소스코드를 보고, 나머지 절반은 아이의 치료 계획을 본다. 사실 그동안 아이만 건강할수 있다면 뭐든지 할수 있다는 마음이었고, 커리어는 거의 포기한 상태였는데, 최근에는 문득,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개발자인가?’라는 질문이 자주 머릿속을 맴돈다.
그나마 이 2년을 버텨올 수 있었던 건, 함께 일한 리더와 팀원들 덕분이었다. 내가 자리를 오래 비우거나 일정이 제한적일 때마다 불편함 없이 배려해주고, 묵묵히 빈자리를 채워준 동료들이 있었다.
동료들의 이해와 협력이 없었다면 이 시간을 이렇게 지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일의 흐름을 완전히 놓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개발자로서의 감각을 이어갈 수 있었다.
내년 9월이면 법적으로 육아기 단축근무가 끝난다.
그 이후의 내 커리어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요즘 고민이다.
와이프와 나 둘중에 누군가는 더 많은 시간을 내야 하고, 결국 한 명이 일을 내려놔야 할지도 모른다. 그게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 시기를 통해 배운 것도 많다.
일의 속도를 조절하며 한정된 시간 안에 진짜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 예전처럼 밤새 코드를 짜며 몰입하는 날은 줄었지만, 그만큼 “왜 이걸 해야 하는가”를 더 깊이 고민하게 됐다. 개발이라는 일이 단순히 기술을 구현하는 것을 넘어,
사람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조금은 느끼게 된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벽은 분명 존재했다.
내가 가진 역량만으로는 변화나 방향을 제시하기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이끌어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란걸 수차례 깨달으면서, 누군가를 설득하기 전에 나 먼저 스스로의 깊이를 쌓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냉정히 돌아보면, 단축 근무로 인해서 지난 2년간 내 성과는 결코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게 된 것도,
어쩌면 지금의 내가 한 걸음 성장한 증거일지 모른다.
지금 이 회사에 다닌 지도 어느덧 5년이 넘었다.
이제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보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어떤 개발자로 남고 싶은지가 더 중요해졌다. 언젠가 다시 풀타임으로 복귀하더라도,
이 시간을 단순한 ‘쉬어가는 시기’로 남기고 싶지 않다.
육아와 커리어 사이, 그 좁은 틈에서 조금 느리더라도 꾸준히 성장하는 개발자로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여전히 함께 걸어주는 동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느린 걸음이지만,
언젠가 이 시간이 내 커리어의 깊이가 되어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