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7월 1일 월요일, 결혼 D+934
제일 최근의 나의 생일(12월)에는 지난 짱구 잠옷 사태 같은 실패를 다시 하지 않고자 호떡이 선물을 고를 선택권을 나에게 부여한 덕에 서프라이즈는 없었지만 원하는 것을 받을 수 있었다. 호떡은 2017년 나의 생일에 짱구 잠옷을 주긴 했지만 2018년엔 제육볶음도 하고 미역국을 끓여주기도 했었는데, 꽤나 맛있게 끓인 미역국을 떠먹으며 2019년 여름 호떡의 생일에는 내가 꼭 미역국을 끓여주겠노라고 공언했던 터였다.
우리는 정말 많이 싸워대서 사실 싸움의 성수기와 비수기가 확연히 구분되지는 않는 편인데, 그 와중에 기념일이나 여행일 등 특별한 날이면 더 싸운다는 특성만은 확실하다. 여행을 가려고 차를 타고 나서서 가다가 차 문을 세게 닫은 것으로 핀잔을 주다가 싸움으로 번져서 갑자기 운전하다 말고 분노의 유턴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7월 초 호떡의 생일을 앞두고도 그랬다. 메신저에 기록이 완전히 남아있지는 않아서 싸운 사실만 기록으로 남아 있어서 싸웠었구나, 알 뿐이지만 양력 생일을 앞두고서 음력 생일을 챙기는 호떡의 부모님께서 생일을 맞아 같이 식사나 하자 제안하셨었고, 당연히 갔다 오려는 생각이었었다. 싸우기 전까지는.
싸움의 9할 정도가 별 일 아닌 사소한 것들이 매개가 되어 시작되기 때문에 그날도 엄청난 이유로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러나 싸우다가 폭언을 들은 것만은 명백히 기억이 난다.
성인이 되고서는 욕설이나 비속어로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벼이 보이고 진정성을 낮추는 이유가 된다고 줄곧 생각해왔기에 최대한 비속어는 내뱉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인데, 호떡은 앞서 이야기했듯 분노 레벨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서 분노 상태로 진입하면 제어가 살짝 안 되는 편이다. 호떡의 부모님과 뵈려던 날을 코앞에 두고 싸우다 호떡이 내뱉은 말은 어김없이 상처였고, 그렇게 다친 마음과 갈라진 사이로 부모님을 뵐 순 없겠다는 판단이 섰다. 게다가 나의 연기력은 최악이기에 오히려 부모님께 걱정만 끼칠 것 같기도 했고.
호떡의 음력 생일, 즉 부모님과의 식사가 예정돼 있던 날 아침, 호떡은 내게 가려면 지금 준비해야 하는데 안 갈 것인지 물었고 나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 너 혼자 다녀오라고 해버렸다. 아프다고 둘러대 달라고. 보내는 마음이 편한 건 당연히 아니었지만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호떡의 손에는 장어가 들려 있었다. 몸이 안 좋아서 못 온 며느리를 위해 장어를 이만큼 포장해서, 내가 좋아하는 밑반찬들과 함께 들려 보내주신 것이었다. 끼니를 제때 챙기지 못한 상태였는데 마침 생각해서 보내주신 게 감사했고, 먹고 나서 감사 인사를 드리겠노라 생각하고 상을 차려 먹었다.
먹고 있는데 호떡이 와서는 부모님께 연락은 드렸냐고 물었다. 지금 그게 넘어가냐고, 어쩜 그렇게 연락도 없이 주신 것만 챙겨 먹을 생각이 드냐고 했다. 아니 연락을 아예 안 드리려던 건 아니었다고 변명했더니 본인이었다면 받자마자 걱정하지 마시라, 그렇게 아픈 거 아니고 괜찮다, 챙겨주셔서 감사하다 말씀 먼저 드렸을 거라고 했다. 잘하는 것까진 바라지 않지만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아, 그래 그렇지. 내가 너무 생각이 없었네. 미안하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는 못했지만 식사 후에 잊지 않고 연락을 드렸고, 그렇게 어느 정도는 봉합됐다고 착각해버렸다.
처음 호떡의 생일을 맞아 세웠던 계획은 부모님과의 식사를 잘 마치고 돌아와서, 오후에 호떡과 쇼핑을 같이 가서 이것저것 잘 입힐 옷가지를 선물로 사주고서는 저녁에 소고기를 사 들어와서 미역국을 끓이고 호떡이 좋아할 만한 반찬을 해서 생일 전야제를 잘 치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생일을 앞두고 또 싸워버린 탓에 부모님과 만나서 식사를 하려던 계획부터 어그러졌고, 그날 차려먹으려던 생일상도 물 건너가버렸다.
나와는 달리 호떡은 본인의 생일에 큰 무게를 두지 않는 편이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모두가 축하의 인사를 건넬 생일에 나와 너무 틀어져 있으면 마음이 불편할 것은 당연했다. 오전 내내 고민을 하다가 결국 오후에 호떡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호떡 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신 여사님(우리 엄마)이 축하금 보내셨고요, 주말엔 나도 너무 예민하게 군 것 같아 미안함을 전합니다’라고. 메시지를 확인한 호떡은 부모님께 연락했느냐며, 내가 자리에 함께 가지 않아 매우 서운해하셨다고 했다. 장어 들고 오던 날 했던 말(잘하는 것까진 안 바라지만 해야 하는 건 해줬으면 좋겠다는)도 덧붙였다.
서운해하셨을 건 알지만 앞에서 어색하게 연기할 자신은 없었고, 연락은 드렸다고 하면서 퇴근 시간을 물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기에 좋은 곳에 가서 넘치게 맛있는 식사를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싶어 그동안 가려고 점찍어두었던 곳들을 읊었는데 반응이 없었다. 생일날 저녁 식사에 대한 아무런 의욕도 느껴지지 않는 호떡의 대답에 뭔가 단단히 망했다는 느낌에 압도당했지만 그래도 뭔가를 해주면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미역국을 정식으로 제대로 끓여주지는 못하더라도 미역국이라는 음식 자체는 먹도록 해줘야지. 간단히 할 수 있는 반찬 정도는 해서 밥상이라도 직접 차려주면 마음이 좀 풀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퇴근을 자율적으로 조금 앞당겨 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데 내심 감사하며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퇴근했다.
살 수 있는 레토르트 미역국 중 가장 괜찮은 것을 사고 싶어서 편의점만 다섯 군데를 돌았다. 반찬을 할 돼지고기 앞다릿살도 좀 사고, 밥도 안쳤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제육볶음이지만 돼지고기랑 고추장이랑 어떻게 버무려서 볶으면 맛은 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레시피에 따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호떡이 올 시간이 다 되었는데, 아직 반찬이 완성되지 않아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한여름에 안친 밥에, 달달 볶이고 있는 돼지고기에, 냄비에 끓인 레토르트 미역국이 뿜어내는 증기에 좁은 집이 한창 달궈진 상태에 호떡이 귀가하며 집안으로 진입했다. ‘너 뭐 하냐’라는 표정으로 휙 보더니 웃지도 않고 어이없어하며 내가 언제 이런 걸 해달랬냐고 불쑥 한 소리를 했다. 그래도 땀 흘려가며 열심히 하고 있는데 좋게 봐줬으면 좋겠는데.
하필 있는 줄 알았던 양파가 없어서, 한 번의 외출을 더 해서 겨우 밥상이 완성됐다. 그래도 단시간에 차리긴 차렸다는 일말의 만족감이 있었는데 호떡의 표정은 식사 내내 풀리지를 않았다. 얹힐 것 같은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밥을 먹는 호떡의 눈치를 계속 보며,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를 호떡의 생일 식사가 종료되었다.
밤에 자려고 누워서 호떡이 인스타그램을 하다 본 웃긴 게시물을 보여주기에 그래도 호떡의 마음이 조금 풀렸구나 싶어 안도를 하려던 찰나 호떡이 질문을 하나 던졌다.
“근데 내 선물은 어딨어?”
선물? 어, 어, 음…. 없는데?
솔직히 듣자마자 정말 엄청 당황해버렸다. 나의 계획이란 것은 호떡의 부모님과 예정대로 잘 진행됐어야 할 그 식사 이후에 호떡을 가로수길에 데려가 쇼핑을 제대로 해주려고 했었으므로, 그 식사 계획이 파투가 나고부턴 모든 것이 다 꼬여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미안하다고 했었어야 했다.
정신이 갑자기 나가버린 내 주둥이에서 ‘너 필요한 거 없잖아’가 나와버릴 줄은 나도 몰랐고, 호떡도 몰랐을 것이다. 그 말이 나가버리고서 침대 위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호떡은 기가 차 하더니 어이가 없어진 채로 잠에 들었고, 그렇게 호떡의 생일 밤은 수습되지 못하고 영영 과거로 묻혀버렸다.
생일 밤 이후 약 사흘을 더 냉전 상태로 보냈던 둘은 사흘째 밤 또 한 번 메신저로 키보드 배틀을 했다. 나와 풀고자 하는 1g의 의지도 없어 보이던 호떡의 차가운 기운은 공동묘지에 혼자 서 있는 것처럼 을씨년스러울 정도였고, 그날 밤 나도 단단히 결심을 내렸다.
애교에 능한 것도 아니고 사과를 잘하는 타입도 전혀 못 되지만 그날 밤은 정말 미안하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십수 번쯤 미안하다고 하면서 자꾸만 돌아 누우려는 호떡에게 치댔고, 호떡은 겨우 마음을 풀어주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진짜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전날 치고받고 싸웠어도, 생활 연기가 받쳐주지 못해서 식사 자리는 못 갔어도, 어머님 아버님 서운하신 마음은 덜어드릴 수 있게 바로 연락했었어야 했다. 생일날 밤 웃긴 게시물을 보여주며 조금 풀어지려던 호떡의 물음에 ‘너 필요한 거 없잖아’ 따위의 망언을 해서는 안 됐었고.
내년 생일은 정말 잘 챙겨줄 것이다. 이렇게까지 잘 챙겨주겠다고 쓰고 있으니 정말 잘 챙겨줘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내년 생일에도 꼭 싸울 것만 같다.
《너와 이혼까지 생각했어》는 저희 부부(아내: 임우유, 남편: 호떡)의 싸움 이야기를 펴낸 독립출판물로 월/목요일 브런치판을 연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