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피바다 주간을 주의하시오

시끄러워 죽겠어

by 임우유

 5월 22일 수요일, 결혼 D+894



 ― 호떡. 아직도 분하니?

 ― 어 분해

 ― 왜 아직도 분할까?

 ― 나는 너가 맘에 안 드는 짓 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게 많은데

  너는 하나하나 너무 맘에 안 드는 게 많고

  짜증도 많고 화도 많이 내


 호떡과 살면서 정말 힘들다고 여기는 것 중 하나는 ‘소음’에 대한 정의 또는 납득 가능한 소음의 레벨이 서로 몹시 다르다는 것이다.


 호떡은 인생에 좋아하는 게 별로 없다. 인생에서 별로 많지도 않은 좋아하는 것들 중 내가 포함된다는 게 어쩌면 참 다행이고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대신 좋아하는 것은 정말 맹렬하게 좋아하는데, 거의 사람이었으면 나 대신 결혼했어야 마땅한 게 농구다. 음, 또 호떡이 좋아하는 게 있다. 중계, 그리고 액션 영화. 주로 시끄러운 것들이다. 축구 중계, 농구 중계, 액션영화, 마블 영화! 그날 우리가 피 튀기는 설전을 했어야만 했던 이유는 이 망할 마블 영화 때문이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 지나치게 유행을 했었다. 그 영화를 아이맥스로 한 번 보고 와서는 뭔가 마블에 가득 취한 우리는 마블 시리즈 중 TV에서 틀어주는 건 닥치는 대로 봐댔다. 마블 영화를 사랑할 정도로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때의 호떡은 나보다 마블에 조금 더 심취한 것 같았다. 아니, 심취했었다.

 넷플릭스 무료 1개월 체험을 끊더니 토르 시리즈를 같이 보자고 해서 한 두 편 같이 주말에 보는 것까진 뭐 오케이. 그 정도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호떡이 혼자서 토르 시리즈를 보던 그날은 주중 피곤함이 상승 곡선을 그리는 화요일 밤이었고, 월간 피바다 주간을 맞아 그날은 유독 내게 평화로움이 더 필요했던 시기였다.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까 영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다. 앞선 ‘청력 사건’에서 짚었다시피 호떡은 나보다 약간 청력이 낮은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집에서 볼 때는 소리를 내 기준엔 조금 과하게 크게 키워놓고 보는 편이기도 했다. 소리 좀 낮춰줘, 하면 소리를 두어 단계 낮은 레벨로 내렸다. 그러다가 소리가 탄탄하게 받쳐줘야 보는 맛이 나는 장면에서는 또 다시 슬금슬금 한두 단계 소리를 키운다. 듣자 듣자 하니 이건 또 너무 큰데, 소리 좀 낮춰줘.


 아 시끄러워 진짜!


 한참 듣다가 소리를 확 질러버렸다. 볼륨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해오던 호떡도 내가 질러버린 소리에 질리는 게 보였다. 그 정도 표정이 나오면 그냥 넘어가기엔 이미 화가 많이 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호떡과 나는 한참을 고성으로 서로 치받으며 화요일 밤을 지나 보내고 말았다.




 변명을 해보자면 나는 상반기 내내 업무적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의지가 되어주었던 모든 것들이 잘려 나가듯 사라지고, 심정적으로 피를 철철 흘리며 억지로 회사를 다녔다. 그렇게 밥 먹듯 드나들던 인스타그램이니 뭐니 다 올 스톱. 한때는 회사에서 택배를 받아주는 곳에 입장만 해도 내 이름도 묻지 않고 내 이름이 적힌 택배 상자를 전해주곤 했었는데, 받으러 갈 택배도 없었다. 쇼핑을 아예 하지 않았거든. 쇼핑을 하고 싶다는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예쁜 하늘을 보면 남들보다 늘 조금씩 과하게 감동하곤 해서 카메라를 치켜 들어 사진을 찍어야 직성이 풀렸었는데 그 시기엔 하늘이 아무리 예뻐도 ‘아, 예쁘네’ 같은 무미건조한 반응 이상에 들일 에너지가 밀알만큼도 없었다.


 그 시기 집은 나에게 피 흘리던 나의 정신머리를 단 몇 시간만이라도 지혈시켜야 하는 공간이었다. 하필이면 그 시기는 심신이 다 피가 철철 흐르던 때였으니 마음이 성했을 리가 없다.

 호떡에게 짜증을 많이 냈다. 옷감에 실밥 하나 튀어나오는 정도의, (아끼는 옷에 실밥이 튀어나오면 사실 나한텐 작은 일이 아니지만) 작은 일들에도 짜증이 마침표처럼 튀어나왔다. 한두 번은 그래, 네가 심정적으로 위태롭구나 하고 넘어가던 호떡의 인내력도 마침 그날은 바닥이 나버린 것이었고.


 ― 너도 실수할 수 있고

  맘에 안 드는 행동 할 수 있는데

  난 그때마다 너한테 그렇게 짜증 안 내

  화도 안 내 근데 넌 맨날 화내지

  너 생리하는 기간마다 나는 살얼음판이야

  그게 어쩔 수 없다는 거 아는데 그걸

  매달 겪는 나는 어떨지 생각해본 적 있어?


 둑 하나가 와장창 무너진 것처럼 쏟아지는 말에 잠깐 일시정지.

 밥 차려 먹는 일부터, 내가 그렇게 마음에 지금까지도 담아 두고 있는 ‘전 회사에서 죽어가던 호떡을 이해해주지 못한 나’에 대한 서운함까지 와다다. 한 번 터져나오기 시작한 서운함은 서로가 원하는 위로의 방식이 달라 힘들다는 데까지 이르렀다가, 이렇게 서로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서로 불만족하기만 한다면 앞으로는 노력이라는 걸 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얘기까지 나와버렸다.


 긴 시간 서로의 사무실에서 손가락으로 투쟁의 메시지를 보내다 얻은 결론은 호떡은 지쳐 있던 나를 나름대로 이해해가며 하기 싫은 일도 참아가며 하고 있는데, 사소한 것 하나하나 못 잡아먹어 안달인 듯한 내 태도에 화가 많이 났었다는 것이었다.


 편하게 앉아도 되는 사무실 의자에 옹송그리듯 앉아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호떡이 지나치게 힘들어하던 시기를 생각했다.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 때는 그걸 바라보는 나도 너무나도 힘들었었지. 옆에 다가가 앉아 있기만 해도, 아무 일도 없는 내 마음마저 부식되는 것 같곤 했었지.


 그래, 너도 힘들었겠다.

 문득 얻은 깨달음에 손가락을 움직여 답장을 보냈다.


 ― 그래

  덜 싸우게 화이팅하자


 메시지를 보내고, 화요일날 피 터지게 싸운 우리는 수요일엔 여느 때처럼 볼을 부비며 잠에 들었다.



《너와 이혼까지 생각했어》는 저희 부부(아내: 임우유, 남편: 호떡)의 싸움 이야기를 펴낸 독립출판물로 월/목요일 브런치판을 연재 중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잊히지 않는 어떤 밤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