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력 좀 키워줬으면 좋겠다고 했을 뿐인데
7월 6일 목요일, 결혼 D+209
소중하면서 분주한 아준시(아침 준비 시간)가 또 한 번 소란을 일으키게 된 날의 아침이었다. 호떡과 내가 늘 상충하는 포인트 중 하나는 서로의 목소리가 작고(호떡이 나에게), 잘 못 듣는다는(내가 호떡에게) 것이었다.
내가 수년간 인정하지 못하다 최근에야 인정한 사실인데, 나는 말할 때 목소리가 대부분 작다. 그 점은 청력이 유난히 안 좋은 호떡에게는 아주 쥐약이다. 목소리를 작게 내어 말하는 자와 안 좋은 청력을 가진 자의 콜라보 ― 좋을 리가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집은 방 두 개짜리 작은 빌라로 안방은 침실로, 작은 방은 옷방으로 쓰고 있고 화장실이 하나 있다. 그날 아침에 나는 옷방에 있었고, 호떡은 안방인지 주방인지에 있었다.
헤어드라이어를 쓸 타이밍이었나, 옷방 화장대 앞 스툴에 앉아있는데 호떡이 내게 무언가를 물어봐서 ‘응’이라고 대답했다. 조금 뒤에 바로 호떡이 같은 질문을 했다. ‘응!’ 또 한 번 더 대답을 하면서 아까 대답했는데 왜 그러냐고 한 마디 더 붙였다. 그때 호떡이 크게 좀 얘기하라며 핀잔을 줬다.
“크게 좀 얘기해! 하나도 안 들려.”
그 말과 ‘크게 좀 얘기해줘~ 하나도 안 들려.’와의 차이를 안다. 그 뉘앙스의 차이가 기분이 나빴다. 질 수 없지. 나도 거기다 받아쳤다.
“넌 청력 좀 키워줬으면 좋겠어!”
그 말 한마디로 싸움이 완성되었다. 한 사람이 던진 말에 한 사람이 받아쳤고, 둘 다 기분이 나빠졌다. 거기서 기분이 완전 확 나빠진 호떡은 갑자기 내 앞에 와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줄 게 있었는데 내가 말을 싸가지 없게 해서 본인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었기 때문에 주지 않을 거란다! 와 뭐 이런 유치한 인간이!
출근하면서도 내내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호떡은 내게 별안간 성격파탄자에 싸이코라고 폭언을 퍼부어댔다. 조금 유치했던 건 속으로 인정하면서 나도 청력을 키워달라는 말이 백 퍼센트 진담일 리가 없지 않느냐고 했다. 친구랑 얘기하다가 유독 말을 못 듣는 친구에게 귀 좀 파라는 농담 섞인 핀잔 같은 거랑 결이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호떡은 호떡대로 청력이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그간 내심 신경 쓰긴 했던 모양인지 내가 그 말로 장애 취급을 한 것 같이 느꼈던 듯했다. 네가 잘못했네, 네가 더 잘못했네의 말 받아치기가 랠리처럼 이어졌다.
그냥 옆에 와서 물어보라는 내 말과, 청력을 들먹이는 말은 상사에게도 못 할 거면 본인에게도 하지 말라는 호떡의 말로 끝없이 랠리를 이어가던 우리는 결국 그날 밤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보냈다. 물론 싸운 날 당일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은 건 당연히 아니었다. 출근하자마자 사내 메신저를 켜고 친한 동기들의 단체 메신저 방에 욕을 흐드러지게 퍼부어주었다. 동기들은 너넨 참 별 걸 갖고 잘 싸운다며, 청력을 좀 키워줬으면 좋겠다는 말은 웃기다고 키읔을 남발하며 웃어줬다.
목요일의 청력 드립 사건 이후 우리는 그 이후로 아무 말 하지 않고 토요일을 맞이했다. 토요일 밤에 바깥에 나가 있던 내게 호떡은 분식을 시켰는데* 먹을 거면 오라는 말을 남겼고, 나는 1시간 뒤에나 집에 가고 있다고 답장했다. 그리고 아무도 이어서 말을 붙이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름 돋게도 다음 주 목요일을 맞이했다.
싸운 지 꼭 1주일이 되던 그 목요일엔 부장님이 어느 회사에서 주는 스파이더맨 당일 관람 티켓 두 장이 있는데 보러 갈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셨고, 나는 이 기회를 쓰지 않으면 다다음주 목요일을 맞게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에 보러 가겠노라며 손을 들었다.
보러 가자고 메시지를 보내 볼까, 그냥 말까, 한 삼천 육백 번쯤 고민하다가 영화 티켓이 생겼는데 보러 가겠느냐는 메시지를 겨우 남겼다. 우리 회사 부장님에게 티켓을 돌린 그 회사에서 고용한 에이전시 분이 나눠준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어색하게 베어 먹었고, 다행히 그날 스파이더맨은 재미가 있었다. 아마도 영화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에는 호떡이 내 손을 스윽 잡았던 것 같다.
그다음 날 아침에 온 메시지가 ‘어젠 말 심하게 해서 미안해’로 시작하는 걸로 봐서 아마도 우린 그날 돌아와서도 서로 언쟁을 한 것 같지만 더 기억나지 않는 내 기억력을 탓하는 대신, 청력 드립 사건은 스파이더맨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내 손을 잡았던 호떡의 손에 그득했던 온기까지만 기억하기로 한다.
* 열흘쯤 지나 이때 시켰던 영수증에 남긴 배달 메모를 발견했는데 아주 압권이었다. 그 와중에 ‘순대 간 오소리감투 등등 다 넣어주세요 감사합니다’라고 남긴 것이 아닌가! 쓸데없이 성실하고 섬세한 메시지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