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아닌데
5월 27일 토요일, 결혼 D+169
호떡이 다니던 첫 회사를 관두고 두 번째 직장으로 스무스하게 넘어간 것은 분명히 그에게도 나에게도 잘된 일이었다. 근무지가 같은 강남권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가끔 운이 좋으면 서로 손 붙잡고 출근길을 나설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호떡이 조금 더 행복해 보였다는 것이 내게도 큰 위안이었다. 첫 직장에서의 불행이 그득했던 그늘져 있던 낯빛이 환해진 덕에 그간 내 가슴속에 눌러왔던 부채감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호떡이 너무 신이 나게 되었다는 것은 생각지 못한 함정이었다. 그 전 직장에서는 말 안 통하는 또라이 같은 상사와, 말이 안 통하는 건 아니지만 인간적으로 100% 의지할 정도로 가깝지는 못했던 사수뿐이었기에 새로 옮긴 직장에서 만난 또래 동기들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겠지.
귀가가 늦어지는 날이 잦아졌다. 술 냄새 풍기며 들어오는 일도 많아졌다. 처음 몇 번은 동기들끼리 모여서 즐겁게 술 한 잔 걸치고 들어오는 호떡의 모습을 보는 게 싫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그의 표정이 밝아 보이는 것이 내게도 기분 좋은 일이기도 했기에.
4월에 입사한 새 회사에서 동기가 열 명쯤은 된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한 번 사무실을 본가가 있는 지역에서 서울로 크게 옮겼고, 그나마 서울에는 동기들이 몹시 북적거리도록 많았으나, 한 번의 더 큰 변화를 겪고 강남이라 하기엔 애매한 어느 강남권으로 들어와 버렸기에 별다른 동기가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동기가 단 한 명도 없었다!
한때는 같은 건물 안에 동기만 서른마흔 다섯 명쯤은 됐던 내게 새로 옮긴 사무실은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인프라를 갖췄지만 그에 비해 정서적으론 고독하기 그지없는 외로운 곳이었다. 그래도 업業을 크게 바꾸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었으니 그걸로 괜찮았다. 호떡의 늦은 귀가가 삼세 번을 넘어가기 전까지는.
호떡의 입사는 만우절이었고, 만우절 닷새 뒤였던 엄마 생신은 보기 좋게 놓쳐버렸었다. 그때도 새 회사의 동기들과의 술자리에서 조금 더 일찍 빠져나오지 못해 상황이 악화됐었지. 얼마 뒤에는 퇴사를 하고 다른 회사를 가니 어쩐지 더 생각이 났을 전 회사 선배들을 만난다며 여의도를 갔었다. 호떡이 여의도로 가서 선배들을 만나던 날엔 다음날 새벽 세 시를 넘겨 집에 들어왔다. 언제까지 저러나 보자고 생각하던 날, 호떡은 또 술을 마시러 간다고 했다. 동기 집들이를 가야 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언제 오냐고 물으니 10시 11시쯤에 온다고 했다. 둘 중 이른 시간을 생각했다가 늦게 되면 서운한 기분이 들까 봐 둘 중 더 늦은 시간으로 제시한 11시가 귀가시간이 될 줄로 믿었다. 아주 즐거운 집들이였던지 11시를 코앞에 두고 출발했고, 집에 도착하니 12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서운했다. 내가 무려 10시와 11시 중 11시를 골라 기다렸는데, 12시가 다 돼서 와? 얼굴을 보자마자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11시면 올 거라더니 하루 다 가서 오네. 이렇게 늦을 거면 늦는다고 말이라도 해주지. 괜히 기다렸잖아. 서운한 소리를 쏟아내는 내내 호떡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내가 서운해 죽는지 사는지 관심조차 없는 표정으로 일곱 시 반쯤 귀가한 사람처럼 굴었다.
내가 서운해하는 게 넌 보이지가 않는 거야? 서운한 마음이 먹구름처럼 커져서 한 번 더 칭얼댔더니 그제서라도 사과를 하기는커녕 호떡은 내게 역정을 냈다. 그리고 역정 끝에 내려진 호떡의 결론 속에 나는 호떡의 원만한 사회생활을 가로막는 꽉 막힌 아내였고, 알아서 잘할 테니 터치하지 말라는 말도 이어 붙여졌다.
다음날 호떡은 예정되어 있던 대로 대학교 동기네 집으로 홀랑 놀러 가 버렸고, 토요일의 시작을 혼자 한 내가 어제의 울분에 지쳐갈 때쯤이었다. 호떡과 나는 대학교 때 만났으므로 대부분의 대학교 동기들은 나와 호떡을 모두 아는 공통의 지인들인데, 그중 하나가 내게 전화를 걸어 호떡의 귀가 시간을 알려왔다. 오든지 말든지. 심드렁한 통화가 종료되었다. 통화의 끝에 무언가가 분명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 새끼 아직 내가 왜 화났는지 전혀 감도 없구만?
장문의 카카오톡 메시지 집필이 시작되었다. ‘뭐가 그렇게 서운했는지 조금도 모를까 봐 얘기할게’로 장엄하게 시작한 내 메시지는 약 열세 줄 정도의 분량 안에 나의 입장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첫째, 나는 평소에도 누굴 만나러 저녁에 잠시 약속엘 갔다가도 11시 안에 들어온다. 둘째, 지방으로 동기들이랑 놀러 가서 하룻밤 묵고 오는 것도 사전에 동의를 구하고 갔으며 그나마도 그렇게 놀고 왔던 것은 반년도 더 된 일이다. 셋째, 그런데 거기서 네가 터치하지 말라고 하는 건 극단적으로 너에게만 유리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넷째, 너의 늦은 귀가로 서운한 사람이 생기면 응당 그 서운함을 풀어주려 노력해야 하지 않니? 정도의 입장을.
열세 줄 정도의 입장표명을 굳이 이기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호떡은 백기를 들었다. 전 회사에서는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일이 적었는데 지금은 좋은 사람들 만날 일이 많아져 그런 것 같다며. 앞으로 잘할게.
네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어, 앞으로 잘할게.
내가 간밤에 원했던 말도 딱 그 열일곱 자가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