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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유 Aug 31. 2020

결혼 첫 해, 엄마의 생신을 까먹어버렸다

어떻게 우리 엄마한테 이럴 수 있어?

 4월 5일 수요일, 결혼 D+117



 2016년 겨울에 결혼이라는 걸 하고 집에서 마치 영영 분리된 것처럼 독립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딸에게 서운할 수 있는 순간들은 뭐가 있을까. (원래도 잘 안 했지만) 전화 통화 한 통 제대로 하지 않는 딸? 본가에 자주 찾아오지 않는 것?

 결혼한 이듬해 엄마의 생신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를 일은 그날 엄마의 생신을 잊어버린 것이 나뿐만이 아니라 언니와 동생, 그러니까 망할 이놈의 임 씨 삼 남매 모두였다는 것이고, 불행임이 확실한 일은 언니와 동생은 그 상황에서 우리보다 빨리 빠져나갔다는 것이었다.

 그 일을 전화로 알려준 건 형부였다. ‘처제, 큰일 났어요’로 시작한 통화에서 알게 된 사실은 형부가 덜덜거리며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는 정말 죄송하다고 너무 정신없어서 깜박했다고 사죄했고, 엄마는 그 말을 들으며 말로만 괜찮다고 하셨다고 했다. 내가 들은 건 아닌데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하셨겠지만 아마 그 말은 ‘오십 년이 넘게 딸들을 키워도 엄마 생일도 까먹는 정나미 없는 딸들에게 내가 서운해 죽을 지경이다’로 여과 없이 들렸을 것이다. 내가 거짓말을 잘 못 하는 건 우리 엄마를 닮았거든.


 엄마를 서운하게 했다가 꽤 여러 번 된통 고통받았던지라 등골이 아주 제대로 오싹해졌다. 정말 큰일 중의 큰일이었다. 아연실색해서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더니 부서 분들이 무슨 일이냐며 물으셔서 이래저래 해서 엄마 생신을 까먹어서 집이 난리가 났다(사실이었다)고 했더니, 아이고 결혼하고서 첫 생신을 까먹었으니 오죽 서운하시겠냐고 혀를 끌끌 차셨다. 서운하셨을 줄은 알지만 내 결혼 직후 첫 생신이라는 것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것까지 더해지면 정말 엄마는 너무너무 서운할 것이었다!  무섭고 죄송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호떡에게 전화를 해서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할 건지 물었다. 우리는 같이 벌벌 떨면서 다음 단계를 고민했는데, 호떡이 내린 결론은 각자 전화하는 것보다는 둘이 같이 있을 때 전화를 드리는 게 낫겠다는 것이었다. 최대한 빠른 타이밍에 연락을 드리려면 각자의 사무실에서 따로 통화를 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 했는데, 오늘 동기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어떻게든 늦지 않게 빠져나와 귀가하겠노라고 약속을 하기에 믿었다. 하지만 9시 18분에 곧 나가겠다고 하던 호떡은 11시 반이 넘어갈 때까지 귀가하지 않았다. 계획한 대로 둘이 같이 전화하려고 기다리던 나는 호떡의 귀가 시간이 11시가 넘어간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야 허겁지겁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내야만 했다.


 눈물이 났다. 삼 남매 모두가 엄마 생신을 까먹은 이 날, 내 불효가 유독 그렇게 도드라지게 될 줄은 몰랐다. 상황을 단계적으로 악화시킨 호떡에게 분노가 들끓었다. 그날 회식은 심지어 어마어마한 상사가 동석해서 자리를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회식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차라리 자정 넘겨 귀가를 해도 좋으니 같이 통화하자는 그 빌어먹을 거지 같은 계획만 세우지 않았어도! 8시 반쯤 아무도 생신을 기억해내지 못했다는 비보를 접한 그 순간에 바로 전화를 드릴 수만 있었어도 이렇게까지 엄마한테 미안할 일은 없었을 텐데! 억울함과 분노가 이리저리 뒤엉켰다.


 예정된 귀가 시간을 훌쩍 넘겨 들어온 호떡은 미안하다고 중언부언 몇 마디를 하더니 회식자리에서 업어온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미안하다고 하다 말고 잠에 들어버렸다. 정말 기가 찼다. 게다가 호떡은 내게 어머님 아버님께 연락이라도 가끔 드려주길 기대하며 그렇지 못한 내게 그다지도 서운해하던 사람인데, 네가 어떻게 우리 엄마한테 이럴 수 있어?




 다음날 근무하다 말고 없는 시간을 쪼개 호떡이 사죄의 메시지를 남겼고, 엄마도 알았노라 용서의 메시지로 답장을 해주시면서 생신 불효 사건은 종료되었고, 그 일로 둘 다 트라우마가 생겨서 매해 달력에 양가 부모님 생신부터 큼직하고 뻘겋게 표시해놓는 의식을 치르게 되었다.


 부디 양가 부모님 누구도 서운해하시는 일 없게 부모님 생신 같은 것 다시는 까먹지 않게 도와주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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