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받은 자, 이율을 놓치지 말지어다
3월 27일 월요일, 결혼 D+108
― 일본 여행 어떡할까
지금 상태로 가봐야
여행 같지도 않을 것 같은데
언젠가 한 번 크게 싸우게 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하필이면 곧 가기로 예정되어 있던 일본 여행을 앞두고 싸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부모님 도움 없이 살림을 시작했던 우리가 필연적으로 져야 했던 빚은 꽤 컸고, 당시 조금 더 형편이 나았던 내가 거의 모든 금액을 대출받았으며, 내 통장에서 차곡차곡 대출상환금이 빠져나가고 있던 시즌이었다.
호떡은 가끔 TV를 보다가도 가스 밸브는 잠갔는지 묻는 것처럼 이율이 그대로 변함이 없는지를 물었고, 나는 정확히 체크하지도 않은 채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 뒤로도 몇 번쯤 이율 변동은 없었는지 체크하는 호떡의 물음에 그냥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차피 내 통장에서 매달 나가는 돈으로 정기적으로 상환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되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었다. 그리고 몹시 당연하게도, 그게 화근이었다.
상환 시즌의 어느 주기를 앞두고 호떡은 내게 물었다. 우리 잘 갚아가고 있어? 그렇다고 생각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호떡은 확인을 시켜주었으면 했다. 갑자기 식은땀이 흘렀다. 뱅킹 앱을 켜서 조회를 눌렀는데 두 달째 상환이 제대로 안 되어 있었고 이율은 내가 얘기해두었던 것보다 조금 올라 있었다. 사실 매달 나가고 있던 것은 상환액이 아니라 대출금에 대한 이자였고, 상환은 내가 챙겼어야 하는 부분이었던 것이었다.
들어왔던 것과 달라진 이율, 두 달째 갚아낸 금액도 0원. 화를 내는 호떡에게 그냥 미안하다, 앞으로 잘 챙겨 갚겠노라 말했으면 되었을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순순하게 사과로 이어지지 못한 나는 사과 대신 화를 버럭 내버렸다. 이율이 내가 알아봤다손 치더라도 0.0001%라도 내려갈 것도 아니고, 얼마 못 갚았다고 해도 이제 갚으면 되잖아! 이십만 원이 넘는 이자는 다 내 통장에서 나가고 있고, 매달 십여 만원이 드는 관리비도 내가 내고 있다고! 나도 빚을 갚을 의지가 있고 이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실수인 걸!
방귀 뀐 놈이 성을 아주 오지게 낸 덕에 호떡의 화는 정수리를 뚫고 치솟았고 결국 그날의 싸움과 앞으로의 여행에서 모두 호떡이 퇴장하고 싶어지도록 만들고야 말았다. 한참 동안의 변명 뒤에 내몰린 벼랑 끝에서 나도 각성을 하듯 이제 사과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타이밍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앞으로 정말 잘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겨우 그 싸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다행히 계획된 연차도 잘 소진하며 그 해 일본 여행도 잘 다녀왔다.
그리고 빚은 여전히 잘 갚고 있기는 한데 어쩐지 빚이 불어나버렸다. 빚의 신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