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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오리 Oct 28. 2022

2. 새 집과 친해지기

[8개월 태백살이]

직접 촬영, 1화 꽃무늬 벽지 사진과 같은 장소(이제야 눈이 편안하다.)


2주정도 뒤 다시 찾은 집은 몰라보게 깔끔한 모습이었다. 차분한 연회색으로 깨끗하게 도배된 아파트는 다른 공간같았다. 집주인이 화장실도 새로 시공해준 덕분에 타일이고 세면대고 변기고 번쩍번쩍 광이났다. 계약 당시 집주인이 도배는 한 지 얼마 안돼 새로 도배는 안된다고 못을 박았었지만(태백의 한기를 막아주는 특수 재질로 비싼 돈을 주고 시공한 벽지라고..), 딸이 그 어지러운 꽃무늬 벽지에 둘러싸여 사는 모습을 도무지 볼 수 없었던 부모님은 기존 벽지를 제거하고 새로 도배할 돈을 충분히 지불하겠다고 집주인에 전화했다고 한다. 덕분에 새 집에 온 것처럼 깨끗했다.


바뀐 집을 본 부모님은 그제야 안심한 모습이었다. 다행이라는 말을 반복하시면서 본가에서 차에 싣고 온 살림살이를 정리했다. 이때 가져온 살림살이라봐야 냄비, 수저, 접시, 이불, 세면도구, 간소한 옷가지와 책 몇 권 뿐이었다. 갈 길이 멀어 해가 지기 전에 출발해야 한다며 부모님은 일찍 집을 나서셨다. 아파트 비탈길을 내려가는 차의 뒷모습을 보며 배웅하는데 콧잔등이 시큰했다.






 부모님까지 가시고 혼자 남은 집은 고요했다. 첫 자취방이 방 세 개에 18평짜리 아파트라며 넓다고 좋아했었는데, 막상 혼자 있으니 지나치게 휑하고 괜히 너무 큰 집을 골랐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 다섯이 복작복작 모여 살다가 나홀로 어색한 집에서 자려니 괜시리 무섭기도 하고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이제 정말 혼자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백산34, 김장삼, 공유마당, CC BY

 

밤이 깊을수록 청각은 더 예민해졌고 그제야 주변에서 나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오래된 아파트인 탓에 윗집에서 의자를 끄는 소리, 옆집에서 실랑이하는 소리, 아빠와 아이가 아파트 복도를 지나가면서 나누는 대화소리까지 들렸다.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혼자가 아니다. 위에도 아래에도 양 옆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의자에 앉아 뭔가 작업을 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아이를 사랑하기도 하는 어제의 이웃이 오늘의 이웃인 것이다. 인간 군상의 모습이 어디라고 크게 다를까. 평범하고 익숙한 사람들의 일상을 떠올리자 금세 사람의 온기에 둘러쌓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는 층간소음이라 불평할 소음을 배경음악 삼아 기분좋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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