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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송희 Mar 28. 2024

꿈을 잃으면 안돼

<웡카>의 대책없는 낙천주의


꿈을 잃으면 안돼

<웡카>     


낯선 곳에 이동해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의 감흥을, 여러분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내 경우에는 그게 고향을 떠나 대학 입학을 위해 낯선 대도시에 혼자 떨어졌을 때였다. 서울에 당도한 지역 출신의 아이들은 대개가 높은 곳에서(주로 남산에서) 도심을 내려다 볼 때 이런 생각을 한다. “저 많은 불빛 중에 내 집 하나가 없구나” 


어딜 가도 생소한 것들 뿐이고, 생면부지의 세련된 도시의 사람들이 왠지 나를 업신여기는 것만 같은 촌뜨기의 심정으로 눈치를 보며 지내는데, 그때 했던 실수는 십수년이 지나도 잊히지가 않는다. 예를 들어 말로만 듣던 강남이라는 곳의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 처음 갔을 때, 또 말로만 듣던 '에스프레소'를 시켰는데 그게 단지 가장 싼 커피라서 주문을 했을 때의 실수 같은 것 말이다. 이 고품격의 이탈리아 전통의 쓰디쓴 커피를 능숙하게 즐기는 사람처럼은 보이질 않았는지, 주문을 받던 직원은 나에게 되물었다. “에스프레소가 어떤 커피인지 아시고 시키신 거죠?” 그렇다. 에스프레소는 커피에 물이나 우유를 전혀 가미하지 않은, 원액을 작디 작은 컵에 내주는 커피였던 것이다. 그게 다른 커피에 비해 500원 가량 저렴해서 주문했던 나는 그 커피가 매우 쓴 커피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시켰다. 그 사실이 간파되었다는 것이 창피해 긴 주문 줄 앞에서 얼굴이 빨개져 대답도 못했다. 열아홉의 나를 지금 만난다면 니 취향은 이거라며 달디 단 아이스 바닐라라떼를 대신 주문해 주고 싶다. 낯선 환경에서 한껏 위축되어, 누구든 내 호주머니를 털어갈까 겁먹은 상태를 벗어난 게 언제였을까. 실은, 지금도 낯선 곳에 여행을 갈 때마다 가방 앞 지퍼를 몇번이나 확인을 한다. 경험치를 발휘할 수 없는 낯선 곳은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만드니까.



런던에 처음 당도한 주제에 겁도 없이 거리에서 팔을 벌려 춤을 추고 얼마 가지지도 못한 전 재산 은화를 삽시간에 런던 사람들에게 털리는 대책 없이 해맑은 웡카를 보면서 나의 많은 ‘처음’들이 떠올랐다. 7대양을 떠돌며 초콜릿 제조 기술을 연마한 웡카가 “나만의 초콜렛 가게를 열어 부자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품고 런던에 당도한다. 웡카의 손에는 단돈 몇 닢의 은화와 초콜릿 제조기가 들어있는 작은 가방과 모자 뿐.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어떤 마음으로 런던에 도착했는지를 소개하는 노래가 뮤지컬 영화 <웡카>의 첫 곡이다. 윌리 웡카가 <찰리의 초콜렛 공장>의 프리퀄이라는 것을 모르는 관객조차도 티모시 샬라메가 친절하게 노래로 설명하는 “A Hatful of Dreams”를 들으면 처음 보는 이 청년이 왜 런던에 왔으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떤 성격을 가진 인물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착해진 윌리 웡카의 과거 사정

<웡카>의 주인공 윌리 웡카는 아무리 사람이 낙관적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대책 없을 수 있을까 싶은 청년이다. 사람들에게 속으면서도 대책 없이 선의를 믿는 그에게 고아 소녀 누들(칼라 레인)은 정신 차리라고 말한다. 웡카와는 달리 누들은 체념하기에 길들여져 미래를 꿈꾸않는다. 누들이 현실적인 조언을 할 때마다 웡카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해 평생을 살아왔어.”


<웡카>는 로알드 달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찰리의 초콜릿 공장>에서 기이한 초콜릿 공장 사장 캐릭터로 사랑받은 윌리 웡카를 주인공을 한 프리퀄(편집자주- 오리지널 영화의 전사를 담은 속편)이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비롯해 <마틸다> <그렘린> <멍청씨 부부 이야기> 등의 동화를 쓴 세계적인 작가 로알드 달의 작품은 수차례 영화화되었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복을 받는, 뻔한 교육용 동화가 아닌 어딘지 으스스하고 공포스러운 색채의 로알드 달의 이야기는 제작자들이 영상화에 군침을 흘리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이 천재적인 이야기꾼이 만든 동화 속 주인공 아이들은 ‘어른의 시선으로 그려낸 유아적 인물’이 아니다. 탐욕스런 어른들과 달리 아이는 오히려 자기의 세계가 확실하며 가난 혹은 가혹한 어른의 사정으로 고립되어 있을지언정 자기가 원하는 미래를 만드는 주체적 인물로 그려진다. 그중에서도 로알드 달이 창조한 초콜릿 공장은 동화적 상상력으로 마력이 흘러넘치고, 찰리의 가족과 윌리 웡카, 초콜릿 공장을 그려낸 묘사는 읽기만 해도 영상이 그려지는 듯 생생하다. 


<웡카>는 윌리 웡카가 초콜릿 공장의 사장이 되기 전, 청년이었을 때 어떤 모습이었을까? 에서 출발한 내용이고 <웡카>의 감독 폴 킹과 작가 사이먼 파너비가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폴 킹이 <웡카>의 감독을 한다는 소식이 발표됐을 때, 아마도 많은 이들은 이 영화가 팀 버튼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는 다른 길을, 이를테면 더 희망차고 밝은 분위기일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폴 킹 감독의 대표작인 <패딩턴>을 떠올려 봤을 때, 음울하고 부정적인 윌리 웡카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우니 말이다. 그리고, 역시나 폴 킹의 윌리 웡카는 팀 버튼의 윌리 웡카의 '과거'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훨씬 밝고 희망찬 청년으로 설계되어 있다. 과거 두 차례 영화화 된 윌리 웡카를 대입해 본다면, 같은 인물의 과거라고 보기 어려 울만큼 <웡카>의 윌리 웡카는 낙천적이며 낭만적이고, 인간의 선의와 우정을 믿는 사람이다. 마법으로 날아다니는 초콜릿을 만들고, 자신이 만든 초콜릿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초콜릿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호언장담하는 마성의 청년이 웃으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심지어 그는 티모시 샬라메이다! 아마도 초콜릿에서 <해리포터> 캔디의 귀지 맛이 나고, 먹자마자 얼굴이 푸른색으로 부풀어 오른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황홀하게 음미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대책 없는 낙천이 필요할 때

여기까지 얘기하고 보니, 혹여 이 영화가 무조건적인 긍정주의, 무대책의 낭만을 외치는 영화로 오인될까 걱정이다. <패딩턴>의 곰돌이 패딩턴이 고향 페루를 떠나와 낯선 런던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이 험난했던 것처럼 가진 거라곤 초콜릿 만드는 능력밖에 없는 빈털털이 웡카가 자기만의 초콜릿 가게를 여는 과정은 쉽지 않다. 대기업 초콜릿 사장들의 정경유착으로 인해 런던에서는 초콜릿 장사를 할 수 없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여관 주인 스크러빗 부인(올리비아 콜먼)에게 속아 지하 세탁소에 갇혀 강제 노동을 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여관 투숙 계약서에 잘못 사인을 했기 때문인데, 여기서 웡카의 비밀이 하나 밝혀진다. 친절한 고아 소녀 누들이 사인하지 말라고 경고를 했음에도 웡카가 천진하게 스크러빗 부인을 믿고 사인했던 이유는 그가 글을 읽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웡카는 초콜릿을 만드는데 정진하느라 정작 글을 배우지 못했다. 부인에게 속아 지하에 갇혀 강제 노동 중인 다양한 친구들과 웡카가 함께 부르는 뮤지컬 넘버는 그야말로 못된 기업가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노동요라고도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이 영화에 숨겨진 미덕이 드러난다. <패딩턴>이 대도시에 갑자기 나타난 사고뭉치 곰을 브라운 가족이 포용하는 과정을 통해 다양성의 인정과 더불어 사는 관용의 자세를 보여줬다면 <웡카>는 다소 도식적인 구도이기는 하나 기업가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의 자유의지와 정해진 계급을 수용하지 않고 새로운 꿈을 꾸는 모험가의 자세를 노래한다. 



초콜릿 카르텔의 한 축을 담당하는 못된 기업가 중 한 명이 ‘가난’이라는 말만 나오면 구역질을 하며 가난뱅이를 혐오한다는 점은 이 영화가 무엇을 풍자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찰리의 초콜릿 공장>의 윌리 웡카가 절대 소리 내지 못하던 단어가 ‘부모님’이었다는 것과 달리(원작의 윌리 웡카는 가족의 따뜻함을 믿지 않던 인물), <웡카>의 악당은 가난뱅이를 혐오하고 경찰과 종교인에게 뇌물을 줘 초콜릿을 독점하는 나쁜 기업가다. 웡카가 처음 런던에 왔을 때로 돌아가 보면 그가 가지고 있던 은화 중 하나를 빼앗아간 경찰의 사유가 새삼스럽다. 웡카가 꿈을 노래하자, 경찰은 “공상비”라며 그에게 벌금을 받아간다. 이 나라에선 꿈을 갖는 사람, 공상을 하는 사람은 벌금을 내야 한다. 기존의 질서는 꿈꾸기를 금지한다. 꿈을 꾸는 사람은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사실 웡카가 런던에 가서 초콜릿 가게를 열겠다 꿈꾸게 된 것은 그의 어머니가 남긴 메시지 때문이었다. 웡카의 생일에 웡카의 어머니는 초콜릿을 선물하는데,(<찰리의 초콜릿 공장>에서 찰리가 생일에만 초콜릿을 먹을 수 있었던 것처럼) 웡카는 이 초콜릿에 숨어있는 엄마의 메시지를 꿈으로 간직해온 것이다. 웡카의 가장 큰 조력자이자 친구인 누들이 태어나서 한 번도 초콜릿을 먹어본 적 없다고 하자 웡카는 “오, 말도 안돼!”라며 초콜릿을 만들어 준다. 초콜릿을 처음으로 먹어 본 누들은 기뻐하기보다 의외로 슬퍼한다. “이제 이 맛을 알아버렸으니, 더는 먹지 못하게 된다면 슬플 거야” 실망하기 싫어서 희망을 품지 않고 살았던 냉소적인 누들의 말에 웡카는 “평생 초콜릿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누들과 웡카가 ‘저 구름 뒤 한줄기 불빛’을 믿는다 노래해도 웡카는 계속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웡카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도 여기는 “욕심쟁이가 가난뱅이를 이기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우린 할 수 없다.”고 할 때마다 웡카만이 방법을 찾아 나서고 무모한 도전을 계속한다. 



팀 버튼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웡카의 아버지가 치과의사여서 아이에게 단 것을 금지했던 것과 달리 <웡카>의 윙카는 엄마와 단둘이 살았던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물론 이 역시 웡카의 공상일 수도 있다). 엄마는 웡카에게 이렇게 말한다. 좋은 일은 모두 꿈에서 시작됐단다그러니까 꿈을 잃으면 안돼.” <웡카>가 로알드 달의 원작처럼 어둡고 냉소적인 웡카의 청년기를 그렸다면 이 영화가 강조하는 꿈에 대한 찬양이 난데없이 느껴졌을 것이다. 초콜릿으로 만든 나무, 먹으면 하늘을 나는 초콜릿…혈당수치 걱정 없이 마음껏 초콜릿을 먹을 수 있었던 어린 시절 누구나 꿈꿔 봤던 환상적인 초콜릿의 폭포수 앞에서 대체 꿈을 꾸지 않으면 무엇을 할까. 공장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중년 웡카가 그토록 부자들과 고약한 아이들에게 야멸찬 어른이 되었는지 <웡카>만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청년 웡카는 내일은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노래하고, 포기하지 않는 한 꿈은 언젠가 꼭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사람들이 초콜릿을 사랑해마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이 대책 없이 사랑스러운 웡카(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심지어 티모시 샬라메다)의 꿈속으로 함께 여행을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함께 보면 좋을 책

<찰리와 초콜릿 공장>

윌리 웡카의 시작이된 동화. 가난하지만 선량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찰리가 초콜릿 공장에 초대되어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동화다. 초콜릿 공장을 묘사한 부분이 특히 기이하고 아름답다. 상상력이라는 말은 이런 것이구나 싶어지는 동화.

<마틸다>

<웡카>에서 웡카만큼 중요한 인물이 고아 소녀 누들이다. 누들은 책벌레이자 지적인 소녀로 그려진다. 로알드 달의 작품 중 책벌레이자 도서관으로 매일 같이 피신하는 소녀 마틸다에서 영감을 얻은 캐릭터다.      



**'고교독서평설'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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