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종영한 지 꽤 된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넷플릭스로 정주행 했다. 같이 일하는 부장님을 비롯해 주변에 많은 사람이 인생작이라며 추천했고, 파울로 코엘료가 극찬했다고 하니 꼭 봐야지 하고 있었다.
다 보고 나니 부장님이 왜 그렇게 극찬을 했는지 이해가 갔다. 제 뜻대로 되지 않는 회사 생활. 껄끄러운 대학 후배가 회사 대표로 왔지만 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수도 없는 현실. 와이프와의 관계는 소원해진 지 오래. 유일한 낙은 퇴근 후 형제들과의 술자리, 그리고 조기축구. 부장님이 공감할만하다. 이선균은 4050 세대가 직장과 가정에서 느끼는 부담감과 압박감을 모두 짊어진 캐릭터였다. 그런 그에게 자신처럼 다크한 기운을 내뿜는 이지안이 눈에 들어온다. 탕비실에 커피를 훔치는 그녀. 아픈 할머니를 홀로 모시는 소녀 가장. 근데 알아갈수록 착하고 "예쁘다".
"회사에 아이유 같은 애가 왜 없는 거니."
"회사에 이선균 같은 부장님이 없는 거랑 마찬가지죠."
우스갯소리를 주고받고는 상상해본다. 이선균 같은 외모에, 목소리를 가진 부장님이라. 참 감사한 일일 거다. 하지만 이선균(박동훈 역) 같은 캐릭터의 부장이라면? 음.. 사실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나는 이선균의 캐릭터에 답답함을 느꼈다. 아이유(이지안 역)에 감정이입하면 한없이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였지만, 실제로 '나의 상사라면', '나의 남편'이라고 생각해보면, 왠지 명치에 고구마가 걸려있는 듯하다.
드라마에 대한 극찬이야 널렸으니, 불편러의 눈으로 본 <나의 아저씨> 후기를 적어본다.
나의 아저씨가 아니라.. 나의 상사라면?
이선균은 한마디로 "사람은 좋아" 유형이다.
이런 상사 밑에 있으면 피곤해진다. 임원이 되고 싶은 꿈이 있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라지만, 이선균은 애초에 그런 야망조차 없어 보인다. 윗사람에게 적당히 비위도 맞추고, 본인 어필도 잘해야 후배들도 일하기 편하다. 조금 영악한 사람이 착하기만 한 사람보다 훨씬 조직에 적응을 잘한다. 이선균은 오히려 공무원이나 교사에 어울릴 만한 성격이다.
나의 남편이라면?
아이유보다 이지아에게 감정 이입되고부터 특히 거슬렸던 장면을 뽑아 보았다.
1. "일주일에 두 번만 정희네 가서 술 먹을게. (조기 축구는 빼고)"
이선균은 매일같이 정희네 술집에 가서 형, 동생, 조기축구 사람들과 술을 먹는다. 이지아와의 관계가 안 좋아서 이렇게 된 건지, 이래서 이지아와 관계가 안 좋아진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일주일에 절반을 친 형 동생과 술을 먹는 남편이라..
2. 이지아가 이선균에게 전화를 건다. 휴대폰에 발신자가 표시된다. “집사람”
집사람. 이 얼마나 올드한 단어인가. 밖에서왕성하게 활동하고 잘 나가는 변호사를 “집사람”이라니. 와이프나 아내라고 했어도 될 텐데.
3. “내 아들 기죽이는 것들은 다 싫어!”
극 중 이선균의 어머니로 나오는 고두심. 이선균의 아내인 이지아가 사시를 패스했을 때 고두심은 며느리를 축하하기보다 자기 아들이 기죽을까 봐 걱정이다.능력 있는 와이프 두면 아들의 경제적 부담이 덜어지는 것 아닌가? 나와 같은 시청자를 대변하듯 막내아들 송새벽이 얘기한다.
“형이 사시 패스했어 봐! 그쪽 집에서는 잔치 열었지!”
세상이 많이 바뀐 듯하여도, 드라마에서는 여전히 아들 둔 엄마를 저렇게 그린다.
명대사도 많고, 드라마가 전하려는 메시지도 따뜻했다. 그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고두심 같은 캐릭터도 나오고, 착한 답답이 캐릭터도 나온다. 하지만 은연중에녹아있는 불편한 관점들이명작 속옥에 티처럼 느껴져서 별점 하나를 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