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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리 Dec 10. 2017

괜찮지 않을 용기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란 말이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시련을 만나지만, 각자 나름대로, 최대한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그 짐들을 받아들이고 이겨낸다. 이런 점에서 인생은 또한 인내의 연속이기도 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마음과 몸이 힘든 건 겪고 또 겪어도 당최 익숙해지지 않는다.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겪다 보면 나중에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이겨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들은 어떤 순간에만 날 힘들게 하다가 사라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떨 때는 가볍게 마른 나뭇잎 정도로, 어떨 때는 도끼에 베인 커다란 고목이 크게 넘어가는 것처럼 시시때때로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가 견뎌내려 하는 고난과 시련들은 마음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 남아있다. 그렇게 쌓인 땔감 옆에는 촉박한 시곗 소리가 들린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우리들 모두 저마다 다른 시간이 적힌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 시간이 아주 한참 많이 남은 사람도 있고,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사람도 있다. 또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한폭탄의 뇌관들은 다 달라서, 어떤 색깔을 건드리면 이게 당장 폭발할지 타인이 알 수도 없다. 뭘 건드리면 당장 이 땔깜들과 함께 내 마음이 다 연소해 버릴지는 자신만이 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곗 소리를 무시하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참는 건 어른의 미덕이다. 힘들어도 힘든 티를 너무 내면 안 된다. 사실 세상에는 나보다 힘든 사람들이 더 많고, 나의 이런 투정이 배부른 소리일 수 있으니까. 나는 어른이고 이제 내 행동과 나의 문제에 대해 나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책임감으로 끊임없이 한숨을 삼켜보고, 불평을 잇속으로 씹으면서 우리는 견뎌낸다. 눈물은 미성숙의 상징이 된다. 속에서 조금씩 피어오르는 불씨를 미처 꺼트리지 못해 밖으로 새어 나오는 눈물을 참아낸다. 그렇다고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마음이 멀쩡 해지는 것은 아닌데도 꾸역꾸역 참는다.


이런 세상 속에서 내가 괜찮지 않음을 솔직하게 시인하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슬프고 괴로울 때면 부모님과 친구들을 가장 먼저 찾게 되고, 이 마음속 땔감을 함께 한숨 쉬며 모닥불에 같이 던져줄 사람을 찾는다. 아마 내가 어른의 미덕을 지킬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사람도 아니고, 꽤나 철면피 같은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는 것이 성숙함과 의젓한 어른의 상징이라면, 사실 나는 영원히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내가 괜찮지 않은 만큼, 아니 설령 나보다 괜찮을 지라도. 나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마음속 짐을 털어놓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땔감이 고작 가지 한 줌 정도여도, 그 짐의 경중을 따질 것은 자기 자신이지 누가 함부로 유난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내 마음을 좀먹는 세상의 미덕이 나에게도 아름다울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인내하지 않고 때로는 어깨에 지워진 땔감을 한 번에 내려놓곤, “나 이만큼 힘들었어”라고 당당하게 말해보자. 짐은 줄어들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지 속에 쌓이는 신뢰는 내 마음을 좀 더 여유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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