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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alm Feb 26. 2019

알알이 살아있는 찰밥

오곡밥이나 찰진밥을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엄마의 찰밥을 찾는다.

"엄마가 해주던 음식, 그 손맛의 집밥이 제일 그리워."


간혹 지인들에게 이 말을 듣곤 한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다가 배우 박철민 씨가 아픈 어머니의 옛 손맛 음식이 그립다고 셰프님들께 엄마 집밥을 재현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 맛을 그리워했으면서도 정작 그 분은 완성된 음식을 맛보기 전 떨리는 목소리로, "이 맛이 어머니의 손맛과 똑같으면 어쩌지요.." 미묘한 감정을 보일 땐 내 모성애마저 자극되기도 했다. 어머니의 손맛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셰프님의 요리를 한 입 맛보고는 흐느껴 우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성을 뛰어넘어 남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요즘 셰프님들의 레시피를 보면 정량에 맞춰 몇 ml, 몇 티스푼, 몇 g이라고 정확한 수치로 적혀있다. 물론 요리전문가, 셰프, 감각이 뛰어난 분들의 실력을 따라가긴 어렵지만 (감사하게도) 나같은 아마추어나 곰손이라 할지라도 얼추 비스므리한 음식 맛을 재현해낼 수 있겠다. 그러나 배우 김수미 씨의 프로그램 '수미네 반찬'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 엄마네 (적어도 우리 엄마의 레시피는...) 집밥 레시피들은 측량 가능한 정량 수치가 아니라 '어림잡은 손맛'을 기억해내며 만드는 형용사들로 가득 차

'이만치 집어서 넣어..'
'적당히 끓으면..'
 '대충 그만큼만..'


뭐 이런 식이다. 옆에 딱 붙어 눈으로 보고도 '대체 저건 얼만치'를 뜻 하는 것인지 감으로 맞춰가야한다.


어찌 보면 엄마의 손맛이 그리울 수밖에 없는 건 나중에 재현해내기에 딱 맞는 정량 수치가 없어 수없이 먹어보고, 수 차례 요리를 시도해보며 그 맛을 기억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안타까운건 엄마와 할머니가 나이드시는 것처럼 혀 끝의 미각도 손끝도 쇠해져 그 맛이 변해간다는데 있다. 예전엔 식당을 해도 되겠다고 모두가 감탄했던 우리 외할머니의 전라도 요리 실력도 이제 87세 치매 초기 증상이 온 지금은 그 맛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왜 엄마가 한창 그 맛을 기똥차게 만들어 주실 때는 우리가 그 맛의 진미를 모른 채 지나는 것일까..    

세월의 흐름과 나이 듦을 언급하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이럴 때는 '세월의 야속함'이라는 진부한 표현이 머릿속을 맴맴 돈다. 따끈한 집밥을 해주던 엄마의 음식을 기록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엄마의 음식 중 나중에 가장 그리울 메뉴를 꼽으라면 단연 '찰밥'이겠다. 얼마 전 정월대보름이라 찰밥이나 오곡밥을 여기저기서 해 드셨겠지만 우리 집은 찰밥을 수시로 해 먹는다. 다른 데서 맛보는 찰밥과는 달리 밥이 푹 퍼져있거나 너무 찰지지 않고 찹쌀로 지은 밥인데도 불구하고 알알이 살아 있는 우리 집만의 특미다.


지난 정월대보름에 엄마에게

'이번 엄마표 찰밥은 내가 직접 만들어볼게. 엄마가 하는 방식 그대로 알려줘. 내가 기록해둘래.'

라며 사진도 한 장 한 장 찍어 담아두었다. 역시나 정확한 정량 수치를 알 수 없고 엄마 표현 방식의 수치로 기록되는 점을 미리 양해하고 올려두려 한다.


참고로 우리 엄마는 손이 크다. 실제 손을 고사리처럼 작은데, 마음의 통이 크다. 그래서 혼자만 먹질 못 한다.

한번 음식을 할 때면 솥 한 가마니씩 되는 양을 준비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4인 식구지만 매번 음식을 4인에 딱 맞춰한 적이 없고, 역시나 최소 6-7인분씩 만들어 남는 2-3인분은 주변 사람들에게 싸주기 바쁘므로 이 역시 감안하고 봐야 한다.)


알알이 살아 있는 찰밥 (6인분 기준)  

준비물: 찹쌀 1L, 돔보 콩 (손으로 2 움큼), 찜기     


찹쌀을 깨끗이 씻어서 2시간 30분 정도 불려둔다.
(엄마 가라사대, 따뜻한 물에 담가 두면 2시간으로도 충분하단다.)


색감이 참말로 곱디 고운 '돔보 콩'!
보통 팥을 삶아 넣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엄마는 찰밥을 지을 때 무조건 '돔보 콩'으로만 짓는단다.
엄마 가라사대, 씹는 식감도 좋고 푹푹 퍼지지 않고 영양에도 좋다며 수 차례 강조하신다.
깨끗이 씻은 돔보 콩을 1시간 정도 센 불에 끓여 삶는다.
1시간 정도 지나면, 이렇게 물이 쫄아들고 그 즈음에 소금 1 티스푼, 설탕 1 티스푼 정도 넣은 후 2-3 분 정도만 더 끓여둔다.
(엄마 가라사대, 삶은 콩과 밥을 섞어 한번 더 쪄줄 것이기 때문에 콩이 너무 푹 삶아지거나 퍼지면 안 된단다.)

찜기를 꺼내고 젖은 가재 수건을 올려 준비해둔다.  2시간 30분을 불려둔 찹쌀을 찜기에 담고

찜기 1층에는 물을 '한강물같이' 가득 담아두고, 찜기 2층에는 불린 찹쌀을 올린 후 40분 정도 센 불에 찐다

40분 정도 찌고 나면 엄마는 밥주걱으로 찐 찰밥을 살짝 눌러볼 때 익은 정도가 확인된단다. 내게도 밥주걱으로 익은 정도를 확인해 보라고 하셨지만.... (엄마.., 난 아직 요리의 길은 먼 것 같아.......)


(엄마 가라사대, 밥이 살짝 덜 익은 정도일 때 불을 끄고 꺼내서 아래의 큰 그릇에 옮겨 담아야 한단다. 밥은 잠시 후 돔보 콩과 섞은 후 다시 찔 예정이므로 약간 설익은 정도가 좋단다.)  
소금 간 하며 삶았던 돔보 콩 & 삶으며 나온 콩물을 담아둔 큰 대야에 잘 찐 찰밥 옮겨 붓고, 돔보 콩과 섞어준다.
(엄마 가라사대, 흰 찰밥을 원한다면 이 콩물을 빼도 된다. 이 콩 삶은 물은 찰밥에 색을 입혀주는 역할을 한단다. )
소금 1/2 티스푼과 설탕 1/2 티스푼과 참기름 쬐끔을 넣어 콩이 부서지지 않게 밥과 콩을 살살 섞어준다.
(엄마 가라사대, 소금 쪼끔, 설탕 쪼끔이라고 넣으신다. "소금, 설탕 각각 한 티스푼 정도 되는 거지?"라고 물었으나 엄마는 정색을 하며 한 티스푼씩은 너무 많아!라고 하시는 걸 보니 대략 반 티스푼 정도 되는 듯하다.)


엄마 가라사대, 요로케 요로케! 잘 섞어야 돼. 콩이 안 으깨지도록 요로케 요로케!


참기름도 두르고 간도 맞추고 잘 섞인 윤기 흐르는 찰밥을 다시 찜기에 넣는다. 간이 잘 배이도록 한번 더 살짝 쪄줄 예정이다.


다시 찜기로 돌아온 찰밥은 수건으로 다시 덮어 20분 정도 약불에 쪄준다.

컴언....! 한 올 한 올 밥알이 살아있는 엄마 찰밥은 사진 말고 맛을 봐야 식감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 찰밥은 적당히 간이 배어있어서 다른 반찬도 필요 없고 밥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싸 먹을 구운 김까지 있으면 횡재!

정월대보름에 각종 나물무침과 찰밥. 밥을 소량 먹기 위해 삶은 계란 한 개와 고구마 한 개를 같이 먹었지만

결국 먹은 양은 대량이라는 것......... 식욕이 왜 이러지.

예전에 찰밥 셔틀 가면서 찍어둔 사진이지만, 이 다음 날도 나는 찰밥 셔틀을 할머니 댁과 엄마 친구 집으로 다녀왔다.


보통 찰진 밥이나 오곡밥을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엄마의 찰밥만큼은 예외로 드시곤 한다. 일단 한번 만들어보신다면 후회하지 않을 신세계의 식감을 맛보실 수 있을 겁니다.. :)



갈색빛깔을 곱게 띈 윤기흐르는 이 찰밥을 해주시는대로 수시로 먹기만했지 이렇게 옆에 서서 직접 해보니..

2-3시간 쌀을 불리고, 콩을 1시간 삶고, 밥을 1시간 찜기로 찌고, 설익은 정도를 확인하고, 다시 콩과 밥을 섞어주고, 찜기에 다시 넣어 20분 쪄주고.....


요리는 참말로 "정성이다".

엄마의 손맛은 각종 양념과 더불어 '찐한 정성'이 가득 들어가니 더 맛있을 수 밖에 없나보다.

(남들 다 하는 진부한 소리로 시작해 진부한 소리로 끝났지만...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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