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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요선 Feb 07. 2024

1년 동안 옷을 사지 않기로 다짐했다

뒤죽박죽 스타일 일대기

올해 나의 목표 중 하나는 '(새) 옷 사지 않기'이다. 그나마 여지를 남기기 위해 '새'라는 단서는 달아두었다. 혹시 모르니까! 다행히 아직까진 잘 지켜지고 있다. 근 한 달간 3번의 고비가 있었다. 단순 계산으로 남은 11개월 동안 대략 33번의 고비가 있을테지. 패션계 성수기 봄/여름이 본격 시작되면 분명 더 많은 고비가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두렵다.


새 옷을 사지 않아야 한다 생각하니 내가 가지고 있는 옷들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 옷 무더기들을 보자니 나의 스타일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주로 더블유컨셉과 29cm, 그리고 '도매 브랜드' 쇼핑몰에서 쇼핑을 한다. 도매 브랜드는 백화점 브랜드에 버금가는 퀄리티의 옷을 생산하는 동대문 도매 브랜드를 칭한다. 니트류는 10만원대, 코트는 30만원 대 쯤한다. 나름 퀄리티 좋은 옷을 합리적으로 산다고, 후기 적립금과 쿠폰을 알차게 먹여 쇼핑하는 편이라 자부한다. 회사 내 또래 직장인 여자분들이 디올이나 이브생로랑, 아니면 한섬 브랜드를 애용하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저렴하냐면서. 회사에서 샤넬 슬리퍼를 신고 있는 분을 보고 샤넬 귀걸이라도 사 볼까 했었으나 관뒀다. 귀걸이마저도 내가 살 수 없는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SPA 브랜드나 저렴한 쇼핑몰도 이용한다. 그런 옷들은 처음에는 그럴듯하지만 세탁을 하면 십중팔구 망가지기에 여름 한 철에만 입을 생각으로 구입한다. 간혹 정말 마음에 들어도 1만 원 대 티셔츠를 드라이할 수는 없으니 버리게 된다. 이 참에 다 버리기로 했고 앞으로는 정말 웬만하면 이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구입처는 다양하지 않지만 스타일은 좀 중구난방이다. 옷을 못 입는 편은 아니고 관심도 있는 편인데 그리 힙하진 않기 때문에 생기는 애매함이다. 또 좋아하는 스타일은 '걸리시 무드'인데 잘 어울리지 않는 체형과 이미지를 갖고 있기에 생기는 부적절함도 있다. 내가 내 스타일로 한껏 꾸미면 어디 행사 뛰고 왔냐고들 한다ㅎㅎ 그렇다고 '레니본' 브랜드와 같은 일반적인 페미닌 한 무드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내 스타일을 오해하는 이들은 내가 꽃무늬만 있으면 좋아하는 줄 아는데 아니라고! 솔직히 그런 무드는 좀 촌시럽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나는 과감하고 과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모아놓고 보면 눈이 아플 정도로 내 옷장은 각종 꽃무늬와 레이스, 쨍한 레드와 민트, 핫핑크로 뒤덮여 있다.


한동안은 빈티지를 모았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옷들을 구입하는 맛으로 빈티지 쇼핑몰이 하는 라이브 방송을 기다렸던 적도 있다. 거기다 빈티지는 세상에 딱 하나뿐이고! 인기 많은 곳은 입금 순으로 완판 되기 때문에 그 구입하는 경험 자체의 스릴도 즐겼다. 그렇다고 내가 힙한 건 아니다. 한동안은 힙함을 동경하였는데 힙은 사실 캐릭터와 애티튜드의 영역인 것 같아 이제는 포기했다.


점점 사회생활이란 것을 시작하고서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거 하나쯤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구입한 아이템들도 늘어간다. 베이지색 캐시미어 코트, 검은색 원피스, 회색 슬랙스. 대표님들도 반바지 입고 다른 분들도 크롭티 입고 다니는 직장에만 다녔기 때문에 이 나잇대에 입어야 하는 무언가에 대한 강박이 확실히 덜하긴 하다. 간혹 대기업 다니는, 은행권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패션만으로도 우리가 다른 세계에 있음을 느낀다.

 

사실 나는 그때마다 예뻐 보이는 아이템을 줏대 없이 사모으는 걸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드라마 '미스티' 김남주 배우의 드레시한 원피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신민아 배우의 걸리시한 원피스, 아이유 가수가 뮤비에 입고 나온 클럽룩 원피스까지 핫한 아이템은 다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서 나의 어정쩡함이 바로 빛을 발한다. 사실 패션은 개인의 욕망과 사회의 욕망이 뒤섞여 있는 장이고, 본인이 원하는 이미지를 획득하는 도구이다. (그래서 나는 순전히 남을 위해서 꾸민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욕망이란 건 또 참으로 복잡해서 본인이 자각하는 것과 자각하지 않는 것들까지 있을 테지만.


그런 맥락에서 나는 패션이라는 도구를 잘 활용하지 못해왔다. 여러 번 오해를 샀으니 말이다. 20대 중반까지 훨씬 더 페미닌한 스타일을 좋아했는데 실은 그렇지 않기에. 그다음엔 과감하고 독특한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힙하지 않기에. 그러고 보면 패션의 완성은 본인을 잘 이해하고 본인과 착붙인 스타일을 찾아가는 것인가!


잘 모르겠으면 남들이 좋아해 주는 것, 어울린다고 하는 걸 하면 쉽기야 하다. 스타일 코칭도 받으시고 관련 자격증을 딸 정도로 몰두해 본 한 지인 분은 닮은 연예인 따라만 입어도 성공이라는 조언을 해준 적이 있다. 그러니 좀 섹시하고 건강한 스타일로 입으라고. 이렇게 보니 스타일이란 건 내가 '배우'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하는 고민의 영역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나에게서 기대하는 게 무엇일지 파악하고 이를 충족시켜 주어야 하는 게 배우의 숙명이다.


사실 나는 무난하게 입으면 입을수록 칭찬받는다. 흰 셔츠에 청바지 입었을 때, 남색 니트에 청치마 입었을 때 제일로 칭찬받았다. 검은색, 베이지색 계열의 핏한 원피스를 입거나 할 때도. 그렇지만 그런 스타일이 내 워너비인 건 아니다! 내 마음에는 썩 들지 않는다. (이 객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도 내가 배우로서 자리잡지 못한 이유일테지...ㅎ)


한동안은 이 뒤죽박죽 스타일을 유지하겠지만 언젠가는 내 스타일을 찾아나가고 싶다. 너무 튀지 않게 입으라고, 나이에 맞게 단정하게 입으라고, 좀 여성스럽게 입으라는 말은 앞으로도 듣진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회사 행사에는 베이지색 코트와 회색 슬랙스를, 오디션장에는 흰셔츠에 청바지 입고 갈 눈치와 판단력은 다행히 챙겼다. 자신의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을 동경하는 나로서는 쇼핑을 잠정 중단하는 이번 연도가 일단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벌어다 주는 듯하여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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