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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요선 Feb 28. 2024

혹시라도 내가 행복할까 봐

30대 여자 소개팅들 후기

만 35세 남자 중 결혼한 비율이 40%이고 출산율이 0.6명에 진입했다고는 하지만 만나면 연애/결혼 얘기가 주를 이룬다. 지난주에는 90년대생 친구들과 떠들었고, 오늘은 00년생 인턴 친구와 신나게 떠들었다. 늘 그렇듯 결론은 답이 없다였고.


예전에는 나만 빼고 속물이라 조건들을 따진다고 생각했는데 왜 따지는지 이제 아는 나이가 되었다. 한 사람이 하는 선택 자체가 그 사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위 말하는 스펙이라는 게 그 사람을 나타내는 거겠지. 거기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 안전하기도 하고. 게다가 본인이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나열하고 맞춰보는 세계에서 갑자기 나 혼자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다 말하는 것도 그로테스크해 보인다. 사실 그 진정한 사랑이라는 거 나도 뭔지 잘 모르겠다. 성욕이 진정한 사랑인 것도 아니고 말이지.


나 역시 뭘 안 따지는 것도 아니다. 나도 나와 비슷한 사람 만나고 싶다. 나보다 대단히 조건이 좋은 사람 만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보기에 나보다 부족해 보이는 사람도 만나고 싶지 않다. 이 '부족해 보인다'는 것은 외모를 비롯한 매력 자본일 수도, 소셜 포지션일 수도 있고, 감수성과 취향이라는 문화적 자본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도 나의 기준이 있다. 그리고 이 기준들이 당연하고 동시에 너무나 피로하다!


이 피로함을 안고 사무실에 들어와 00년생 남자 인턴과 또 한 번 열띤 토론을 이어나갔다. 이 친구는 (이렇게 말하면 좀 징그럽지만) 나중에 내가 아들이 생긴다면 저런 친구였음 싶은 그런 친구이다. 나는 또 나이에 걸맞게 꼰대처럼 가르치려 들었다. 20대 때 많이 만나보세용~ 하면서. 그땐 그냥 지랄해도 된다면서.


이 친구는 그런데 '똑똑한' 친구답게 지랄하는 건 견딜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또 호기심이 일어서 뭘 견딜 수 없냐 물었다. 철없는 거? 징징거리는 거? 그랬더니 그런 건 상관없다며 나의 궁금증을 더 자극했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기가 너무 힘들다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정말 성숙한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다고 답했다.


와. 요즘 친구덜 정말 똑똑하네. 나는 이제 어렴풋하게 깨달은 걸 20대에 바로 알아버리다니! 개부럽다.


나는 또 그러면 이런 걸 물어본다. 그럼 자신을 '너어무' 사랑하는 사람은 어떠냐고. 미워하는 것보다는 낫다고들 했다. 나는 아직도 자신을 ‘너어무’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미워하는 사람이 나은 거 같은디.





나의 지금은 내가 딱 원하던 바라던 모습이다. (꿈이 소박했기에 다행)

그럼에도 어떨 때는 아직도 남아 있는 시간이 형벌처럼 느껴진다.

그러면 나는 또 이런 생각하면 안 된다고 나를 자책한다.

상담 선생님은 그런 감정이 들면 그냥 받아들이라고, 거기서 또 죄책감을 가지니 더 괴롭다 했다.


나에게 어떻게 에너지가 계속 있냐고, 너는 하고 싶은 거 다 해서 좋겠다고들 할 때마다

혹시라도 내가 행복할까 봐 싶은 거라면 행복하지 않으니 안도하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아직도 있다.

너무 하고 싶고 의욕이 일어서 뭔가를 계속하는 게 아니라

살고 싶지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계속하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을 때가 아직도.

이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올해 나의 목표는 내 몫의 사랑을 응당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사랑을 갈취하겠다는 게 아니니 혹시라도 지랄 노)
동시에 언제까지나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 편이고 싶다.

이 간극을 좁힐 수 있을까.


일단은 충분히 혼자 지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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