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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요선 Mar 06. 2024

인물을 깊이 이해한다는 건 뭘까

<밀양>과 <멋진 하루> 속 캐릭터 연기를 중심으로

<밀양>과 <멋진 하루>를 통해 캐릭터를 이해하는 시간. 


<밀양>에서 신애가 고통받는 인간이라면 종찬은 남루해 보이나 한줄기 희망인 신이다. 예전에는 신애가 가식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지극히 '평범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신애가 대단히 나쁜 의도를 가지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자기를 속이기도 하고, 잘 사는 척 위장도 하고, 너무 힘들어서 종교에도 기대는 거니까. 


오히려 종찬이야말로 다시 보니 기괴하기까지 했다. 예전에는 그냥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이 남자는 처음 보는 여자인 신애에게 친절을 베풀고, 자신을 무시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일편단심 순정을 보여준다. 심지어 자자고 하니까 도리어 화를 낸다! 대가 없는 사랑이라. 이거야말로 진짜 기괴하고 무섭고 존재하지 않지 않나..?


신애가 가식적인 줄 알았는데 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평범한 줄 알았던 종찬이 비범한 <밀양>에서 두 배우는 각자 무엇을 하는가.


신애는 일단 고통 한가운데에 던져진 여자이다. 남편이 바람피우고, 어린 아들 두고 죽어버리고, 어린 아들까지 죽어버리고, 그나마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죄인을 나 대신 용서해 버리기까지 했다. 신애는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져버렸는지 몰라서 미쳐버리기 직전일 것이다. 고통을 생생하게 겪는다는 느낌이 매우 중요한 캐릭터이다. 전도연 배우님은 특히나 감정 연기에 탁월한 배우이신데 그러니 이 역할에 제격인 셈이다. 감정을 굉장히 촘촘하고 또 드라마틱하게 표현하는 배우와 신애가 만나니 그 고통이 절절히 느껴진다. 정말 지금 뭔가를 겪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건 <멋진 하루>에서도 두드러진다. 자신이 한 말에 자신이 상처받는 중요한 대목이 있는데, 그때도 뭔가 꾸며진 연기를 한다기보다는 생생하게 느끼는 연기를 한다.) 전도연 배우 특유의 목소리, 가느다란 몸 선 덕분에 신애의 나약함이 더 돋보인다.


종찬은 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영화의 메시지이다. 그는 남루한 모습일지언정 어디에서나 버티고 서 있는 존재이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외관, 어디에나 섞여들 수 있는 유연함과 유머러스함, 동시에 너무 가볍지 만은 않은 안정감은 송강호 배우님을 통해 구현된다. 송강호 배우님은 특히나 하나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만드는 데에 탁월하다. 자식을 뒤주에 가둬 죽인 영조도, 뱀파이어가 된 신부도 송강호 배우를 통하면 아들을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 사랑을 겪는 한 남자가 된다. 엄청나게 독특한 캐릭터마저도 '평범한 인물'로 만들어 관객인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드는 것은 영화를 폭넓게 이해하고 영화의 구조 안에서 연기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인물에 깊이 연루된다기보다는 감독의 의도, 작품의 사회적 맥락, 영화의 구조적인 특징 등을 염두하고 연기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배우는 아니라고.


그러니까 신애 역할은 고통을 생생하게 겪고 한 인물을 깊이 이해하는 배우가, 종찬 역할은 영화의 전체 맥락을 파악하고 유머러스하면서 안정적인 배우가 해야만 하는 것이다! 


더하여 밀양은 정말로 아프고 아름다운 영화인데 어쩌면 밀양마저도 완벽한 판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좀 싫어졌다. 사실 너도 판타지잖아! 하는 마음. 그리고 신애가 진실에 조금씩 다가가고 또 견디기도 하는 장면이 마음 아팠다. 여기에선 거울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하는데 이럼 섬세한 설정들이 감독의 능력임을!


신애는 사람들이 가식적이고 무언가를 숨기고 의뭉스럽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기도 위장을 한다. 자신이 타인을 그렇게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신애는 점점 보이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혹은 모든 것이 까발려져 그럴 수밖에 없어진다.) 신애가 추측하고 생각하고 오해하는 세계에서는 모두가 적이지만 그들이 하는 말만 찬찬히 들어보면 모두 진실이고 필요한 말이다. 




<멋진 하루>는 다시 보니 정말로 멋진 영화였다. 예전에는 몰랐다. 좆같은 하루를 멋진 하루로 이끄는 병운과 그와 동행하며 세상을 다르게 감각하게 되는 희수의 이야기이다. 밀양과 구도가 비슷하다. 


희수는 내 돈과 네 돈이 명확하게 구분된다고 생각하는 여자이다. 그래서 답 없는 병운과 결혼할 생각 안 했을 거고,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랑 결혼할 예정이었던 것 같다. 앙칼지고 공격적이고 직선적이다. 주로 멀찍이서 팔짱 끼는 스타일이다.


병운은 내 돈, 네 돈이 따로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남자이다. 한여사랑 잠도 자냐는 희수의 물음에 그게 끔찍한 일씩이나 되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나쁜 마음 없는 한량이다. 유머러스하고 얼렁뚱땅하고 곡선적이다. 주로 자기가 나서서 안절부절못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미안해하고 관여한다.


병운을 황당해하는 역할에는 인물의 생생함을 구현하는 데에 최적화된 배우(전도연 배우)가, 설렁설렁하고 유연한 병운 역할에는 유머러스함과 함께 영화의 리듬에 맞춰 연기를 조절하는 배우(하정우 배우)가 필요하다. 


이렇게 보니 배우의 특성에 꼭 맞는 캐릭터가 있음이 다행이라는 생각, 그러니까 나에게도 꼭 맞는 길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 물론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멋진 하루>는 정말로 멋진 영화이다! 빌려간 '내 돈' 내놓으라는 여자와 함께 세상에 흩뿌려진 돈들을 수거하는 남자 이야기라니. 쏘 로맨틱...




나는 <멋진 하루>의 병운 역할을 연기했다. 이 캐릭터 수업에서는 얼핏 나에게 어울려보이나 내가 이해하지는 못하는 캐릭터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병운스럽다는 이야기를 듣는 편이다.


그른데 그 병운스럽다는 게 모지. 나는 장난스럽고 오지랖 넓고 무엇보다 귀여운 병운을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나에게도 장난스럽고 주책바가지인 면모가 있으나 병운 캐릭터와는 다른 의도이기 때문이다. 병운에겐 천성이 그런 천진함이 있다면 나는 좀 히스테릭하고 무기력함이 있다. 그리고 병운보다 눈치를 많이 본다. 보니까 병운은 눈치를 보진 않는다!


어쨌든 외관의 모습이 비슷한데 그 내적인 것은 이해하지 못하고 연기했다. 다만 연기하면서 아 얘가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얘가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구나. 재밌네. 얘가 이렇게 움직이면서 이런 말을 하는구나. 이런 것만 어렴풋하게 느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점점 캐릭터에 다가갈 수 있는 건가 싶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면서 당황스러웠던 건 희수가 초반에 성질을 엄청 낸다는 거였다. 그래도 로맨스 장르인데 여자 주인공이 이렇게까지 신경질적인 영화가 있었나? 초반 두 캐릭터의 대비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으리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선생님이 희수가 초반에 그렇게 화를 낼 수밖에 없었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왜 희수는 병운을 찾아왔을까? 병운이 끔찍하게 싫었으면서 왜? 정말 싫었을까? 그런데 왜 왔을까? 희수에게 경마장은 어떤 공간일까? 왜 희수는 움직이지 않고 멀찍이 서있을까? 희수가 병운에게 한여사랑 잠도 자냐고 물어보고 좀 후회했을까?


영화를 보는 것과 영화를 공부하는 것이 다르듯

좋은 연기를 모방하는 것과 영화 속 인물을 깊이 이해하는 것은 정말로 다르다.


나는 사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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