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니 와일러가 살아야 GS칼텍스가 산다
역시 와일러가 키였다. 키(194cm) 말고 승부를 결정하는 그 Key 말이다(결론부터 말하면 오늘 지에스칼텍스는 Key가 작동하지 않았다). 현대건설 강성형 감독은 경기전 와일러를 집중 공격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고 이영택도 와일러도 그러리라고 생각했을 게다. 피할 수도 없는 일이고 대비한다고 해도 꼭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은 선수의 마음이 중요하겠다(해설자들은 선수가 잘 버텨야 한다고들 한다). 이 선수들을 목적타 서브의 타겟이라고 부른다. 목적타 서브란 한 선수에게만 죽어라고 쳐대는 서브다. 나는 목적타 서브야 말로 배구에서 제일 잔인한 전략이라고 생각하지만, 승부의 세계란 다 그런 것 아닌가.
목적타 서브 타겟 대부분은 공격력을 떨어뜨려야 할 아웃사이드 히터이므로 팀마다 거의 정해져있다. 24~25 V리그 개막 이후 현대건설의 목적타 서브 타겟은 정지윤, 지에스 타겟은 와일러다. 참고로 흥국생명은 정윤주, 페퍼는 박정아다. 선수들의 속마음이야 내가 알 리 없겠으나, 목적타 타겟이 되는 선수들은 대부분 운명이려니, 하고 나설 것이다(결국 나는 모른다, 라는 뜻이다).
배구는 연결이 중요한 게임이라서 공을 어떻게 잘 받아서 어떻게 잘 전달하느냐가 게임의 승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공격하는 팀에서는 어떻게든 리시브를 흔들어야 하고 수비하는 팀에서는 어떻게든 잘 받아야 한다. 하지만 말이 쉽지 시속 70~90km (국제 대회에서는 100km를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속도로 달려드는 공을 맨 몸으로 받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대포알만한 공이 눈 앞으로 들이닥치는 거다. 무섭기도 하겠지만 잘 받아도 충격이 만만찮다. 선수들이 리시브 한 후에 종종 넘어지는 건 그 충격을 흡수해서다. 충격을 흡수해야 상대 쪽으로 공이 넘어가는 일이 없고 우리 편도 더 편하게 세트할 수 있다. 그러니 목적타 서브를 받는 선수들에게 더 큰 격려를. 그대들이 없으면 배구는 많이 밋밋했을 것이다.
정지윤이야 하루 이틀 당하는 일도 아니고 와일러는 2인 배구 경기 선수였으니 공을 받는 걸 두려워 할 것 같진 않다. 다만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잘 받거나 못 받거나 할 뿐. 10월 27일 경기에서 정지윤은 잘 받았고 와일러는 잘 못 받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22개를 받은 정지윤의 리시브 효율은 41%, 35개를 받은 와일러는 20%다. 리시브 점유율은 비슷하게 50%다. 꼭 와일러 때문에 진 건 아니겠지만 (실바도 별로 안 좋았다. 요즘 지에스칼텍스에서 제 역할을 하는 건 권민지(잘한다!) 뿐인 듯하다)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와일러가 리시브 할 땐 약간 뒤로 물러서는 듯 주춤하면서 받는다. 당연히 충격을 줄이려는 의도겠지만 이게 잘 되는 날은 능력으로 보이고 잘 안되는 날은 뭔가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 와일러는 약간 자신이 없어 보였다. 지난 번 경기에서도 느꼈지만 실바가 아무리 잘해도 다른 선수들이 받쳐주지 못하면 지에스칼텍스는 이길 수 없다. 그러려면 이영택의 선택, 와일러가 살아나야 한다. 와일러가 리시브에서 주춤거려도 이영택이 와일러를 계속 출전시키는 이유는 분명하다. 키다. 키 덕분에 와일러의 내리찍는 오픈은 상대 코트에 곧잘 꽂힌다. 블로킹도 마찬가지. 서 있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와일러는 리시브 때문에 기죽지 말고 공격과 블로킹에서 자신감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물론 리시브를 잘 해야 세트가 되고 공격 기회가 생기는 법이다. 특히 공을 리시브하고 세터의 토스를 받아 다시 공격하는 아웃사이드 히터의 특성 상 리시브가 안되면 공격이 잘 될 리가 없다(그래서 어쩌라고?). 나는 다만 와일러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고, 그리고 와일러는 키를 믿고 자신감을 가지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감독이 알아서 하겠지. 나는 배구 수다쟁이 입장에서 소망을 말할 뿐이고).
그런데 지에스칼텍스 팬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와일러 편을 드는 걸까? 아마도 나는 정상적으로, 순리대로 걸어온 사람보다 약간 이단적인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무슨 이런 핑계가!). 와일러의 키가 문제를 해결하는 Key가 되는 순간을 응원한다.
PS> 오늘의 모델은 스테파니 와일러, 오늘도 미드저니 6.1 선생이 만들었다. 미드저니 없었으면 어쨌을까 몰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