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계속 요정 자리에 머무르시오
10월 24일 인천. 흥국생명과 GS칼텍스의 경기. 1, 2세트를 이긴 흥국생명이지만 3세트는 6:13으로 크게 뒤져 있었다. 두 세트를 큰 무리 없이 이긴 흥국생명이어서(뭐랄까, 이 날 경기는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들으면서 흥국생명 선수들의 공격을 슬로우모션으로 보는 것 같은 매우 여유로운 경기었다) 3세트의 반전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1, 2세트에서 주춤하던 실바가 살아났고 와일러와 김주향도 점수를 올리기 시작했다. 흥국생명은 당황했고 코트가 잠시 흐트러졌다. 점수는 7점 차. 이때 아본단자는 김다은을 투입했다. 김다은은 9-15, 13-16, 16-17 상황에서 퀵오픈을 세 번 성공했고 12-16, 21-24, 25-24, 26-24 상황에서 오픈 공격을 네 번 성공해 GS칼텍스에게 뼈아픈 역전패를 안기면서 흥국생명의 승리요정이 됐다.
10월 29일 인천. 이번 상태는 앗 뜨거 페퍼로 변신한 페퍼와 경기. 정말 놀랍게도 페퍼는 개막전에서 보여준 파워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1세트부터 입증했다. 경기 초반 한 점 차이로 리드하던 페퍼는 경기 중반 한 점 차이로 역전을 허용하고 마지막엔 23:23 동점까지 내주기는 했지만 하혜진의 서브 에이스와 장위의 오픈공격으로 23:25, 1세트를 챙겼다.
2세트는 더 치열했다. 페퍼는 자비치가 없음에도 박은서가 자비치 자리를 충분히 메웠고 이한비는 여전히 날아다녔다. 양 날개가 활개치는 동안 장위는 이동, 블로킹, 속공으로 흥국의 코트를 흔들었다. 한 점을 두고 계속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던 두 팀의 대결은 범실과 공격을 주고 받으며 23:22에서 김연경의 공격을 두 번이나 받아낸 이한비의 수비에 힘입어 박정아의 공격이 성공하면서 23:23을 만들었다. 투트쿠의 중앙 백어택이 성공하면서 24:23, 박정아의 퀵오픈으로 다시 24:24, 긴 랠리 끝에 박정아의 시간차가 터지면서 24:25, 또다시 긴 랠리 끝에 투트쿠의 퀵오픈이 터지면서 25:25로 숨막히게 전개됐다.
그러나 박은서의 공격을 김다은이 블로킹하고 그 다음 박은서의 퀵오픈이 아웃되면서 흥국생명이 세트를 챙겨갔다. 김다은의 이름이 여기서 처음 등장하지만 다은은 지난 번 GS칼텍스 전에 이어 오늘도 흥국의 승리요정이었다. 2세트 17:18 상황에서 정윤주와 교체 투입된 김다은은 18:19 상황에서 퀵오픈, 20:20 상황에서 서브 에이스, 그리고 조금 전에 언급한 25:25에서 블로킹으로 26:25를 만들며 세트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세트에서도 유효 블로킹 1위, 디그 1회, 오픈 2회, 퀵오픈 1회, 리시브 정확 4회, 서브 에이스 1회를 기록해 팀의 승리를 견인했고 4세트에서도 블로킹, 오픈, 퀵오픈에서 각 2점씩 올렸다. 이 날 김다은은 57.14%의 공격종합성공률로 총 12득점을 올려 투트쿠 24점, 김연경 20점에 이어 두 자리 점수를 기록한 선수가 됐다.
지난 시즌과 달리 흥국생명이 외국인 선수를 아포짓과 미들 블로커로 선발한 까닭에 아웃사이드 히터 1자리가 국내 선수들의 몫이 됐다. 이 자리를 두고 정윤주와 김다은이 경쟁 중이다. 정윤주는 초반 안정된 모습을 보여 제1선발로 정해진 듯 하나 위기 때마다 등장해서 팀 승리에 기여하는 김다은의 승요 포인트(승리 요정 포인트, 내가 만든 말)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정윤주와 김다은의 활약을 기대한다.
물론 만일 다비치의 부상이 아니었다면, 다비치 대신 들어올 테일러 프리카노(발리박스 2024년 랭킹 1118위, 랭킹은 수시로 변한다, https://women.volleybox.net/taylor-fricano-p14167) 가 있었다면 경기가 어떻게 되었을까. 사뭇 다른 분위기였을 것이다. 나는 이 경기에서 흥국생명을 응원했지만, 페퍼가 이겨도 그렇게 안타깝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페퍼의 다음 번 경기가 어떻게 될까 그것도 역시 몹시 매우 기대하고 있다.
PS> 물론 오늘의 모델은 김다은 선수다. 미드저니 선생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