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 사전 과제로 '가장 행복했던 기억에 대해 써오기'가 주어졌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라니.. 언젠가부터 삶의 색채가 모노톤으로 바뀌어버린 나에게, ‘행복했던’, 그것도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내게 행복이란, 친구네 강아지가 나에게 마음을 연 듯 치댈 때, 우리집에 놀러온 사람들이 내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 제법 선선해진 저녁 공기를 느끼며 산책할 때, 밀린 업무 마치고 혼술하면서 드라마 볼 때, 좋아하는 빵집에서 갓 나온 빵을 시식할 때,와 같은 소소한 찰나의 순간들이다.
그럼에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지나치지 못하는 하나의 장면이 있는데, 2014년 1월 홍콩에서의 기억이다. 당시에 나는 대학시절 활동했던 선교단체에서 중국으로 1년 학생선교사 파송을 받은 상태였다. 파송지는 하얼빈이라는 도시였고, 겨울이 길고 혹독한 지역이었다. 13년도 8월에 입국한 우리팀은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음식, 생활에 적응하느라 지쳐있었다. 무엇보다 10월부터 시작된 겨울을 나느라 체력적으로 힘에 부쳤다. 추위에 약한 나는 하얼빈의 겨울이 유난히 힘들었다. 1월이 되자 ‘춘절’을 맞아 한국인 선교사님 가족을 비롯해 함께 사역하던 현지 대학생 친구들도 고향으로 돌아갔다. 방학 동안에는 사역을 진행할 수 없었고, 남겨진 한국인들은 영하 28도의 혹한을 피해 짧은 홍콩 여행에 나섰다. 홍콩 공항 밖으로 나가자 포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춥고 삭막한 곳을 떠나 따뜻하고 사람 많은 곳에 왔다는 사실이 묘한 안도감을 주었고 이국적인 퐁경 앞에서 들뜨고 설레었다.
여행 둘째 날 저녁, 우리팀은 야경을 보기 위해 빅토리아피크에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다할 여행 경험이 없던 나는 야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도시의 야경에 온 마음을 빼앗겼다. 선선함을 넘어 조금은 쌀쌀하던 저녁 공기, 관광객의 말소리로 가득한 북적임, 반짝이는 수많은 불빛들과 강물, 낭만이나 감상이 있는 야경이라기 보다는 화려함 그 자체로서의 야경이었다. 함께 왔다가 함께 숙소로 돌아갈 팀원들이 있었고, 내일 해내야 할 의무가 없었고, 내일은 또 내일의 여행지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다 갖춰어진 상황이었던 셈이다. 내 옆의 가까운 사람들, 걱정 없는 내일, 아름다운 풍경, 선선한 날씨, 내일에 대한 기대와 떨림...
미래나 진로에 대한 염려도 없었고, 오직 에너지와 설렘과 이름 붙이기 어려운 뜨거운 무언가가 마음 중심에 있던 시절. 걱정이나 예측보다 내 앞에 펼쳐질 계절들을 마음껏 기대하고 상상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속에서 의지할 서로가 있다는 사실은 서로를 더 강하고 끈끈하게 만들어주었다. 어두운 전망대 테라스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모였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외장하드 어딘가에 아직 그 사진이 있을텐데.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 놓고 행복하고 한 없이 설레었던 그 시절의 내가 활짝 웃고 있어 잠시나마 덩달아 행복해진다.
그 곳에 다시 간다고 해도 그때만큼의 행복감은 느끼지 못할 것이다. 10년의 시간 동안 이미 화려하고 빛나는 장면들을 여럿 보았고, 무언가를 처음 경험할 때의 충격과 황홀함을 다시 맛 본다는건 어려운 일이니까. 다만 내가 그리운 것은 이십대 초반의, 순진했던, 꿈꾸기 좋아했던, 내가 믿는 신 앞에서 늘 정직한 양심으로 서기 위해 분투했던, 작은 것에도 크게 행복해하던 그때의 ‘나’일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혹은 스스로 짊어진 삶의 무게로 인해, 나도 모르게 곁눈질 하며 작아지는 습관 때문에, 요즘 내 일상은 냉소와 계산, 고단함 뿐인 듯 하다. 10년 전과 같이 가슴 벅차게 행복하지는 못해도 틈틈이, 야금야금, 부지런히 행복의 순간들을 주워 모아야지..하고 생각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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