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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규 Aug 15. 2018

하마같이 크고 깊게 숨쉬기

긴 호흡으로 내가 하는 일을 그린다면

싱가포르로 이사를 온 뒤로 이따금씩 수영을 하게 되었다. 원래는 물과 친숙하지도 않았었는데 임시 숙소에 있던 세련된 수영장이 아까운 마음에 물장구를 시작했고, 습관처럼 수영장에 가다 보니 물에 뜨지도 못했던 내가 어느덧 호텔 수영장을 누비며 다니게 되었다. 올해 배운 가장 큰 육체적이면서 여유를 주는 활동이다.


혼자서 터득한 일들은 대게 고생스럽게 나만의(?) 유레카를 외쳤음에도 사실은 누군가를 통해서 한큐에 해결되었을 경우가 많다. 수영이 그러했는데, 물에 뜨는 원리를 몸이 터득할 때까지 나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름의 방식을 찾았지만 얼마 전 수영장에 같이 간 친구 왈,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참으면, 폐가 튜브와 같은 역할을 해서 물에 뜨게 돼!"라며 한방에 내가 지금 뜨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줬다. 이 쉬운 원리를 나는 그동안 왜 몰랐을까.. 허무하기도 했으나 풀리지 않던 자물쇠가 드디어 찰칵 열리니 물에 들어가는 일이 더욱 재미있어졌다. 이 숨의 원리를 알게 되니 요즘엔 자연스럽게 뒤로도 누워서 둥둥 떠다니고 있다.



하마는 한번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 약 5분 정도 물속에서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보통의 우리보다 한 번의 숨으로 더 많은 시간을 물속에서 보내게 된다. 숨의 양 자체도 다르지만 특히, 나와 같이 수영을 하면서 아직 숨의 타이밍이 고르지 않은 이들과는 다르게 물속에서의 여유도 다르겠지 싶다. 나는 내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움직이는 방식에 더 집중을 하고, 숨 쉴 타이밍을 찾느라 정신이 없겠으나 안정적인 깊은 숨을 가지고 물속을 다니는 하마는 내가 여유를 찾는 동안 내가 보지 못하는 넓은 물속 세상을 볼 수 있겠지 싶다. 크고 깊은 호흡으로 볼 수 있는 밀도있는 물속 세상을 말이다.




긴 호흡을 가진다면


"시작하고 2~3년 동안은 딴생각 말고 일만 해봐"는 한동안 내가 들었던 조언 중에 가장 무심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생각이라는 건 할 수 없는 기계 취급을 받은 거 같았고, 더욱이 내 잠재력은 이렇게 무시당할만한 것인가 싶은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최근에 다른 뉘앙스로 귓가에 다시 맴돌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업과 내가 속한 산업을 들여다보려면, 크고 깊은 호흡으로 절대적인 시간과 함께 업무 내외적으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너무도 빠른 시대에 살다 보니 순식간에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물에만 떠도 '수영 좀 할 줄 알아'와 같은 이야기인지 알아채지 못했었다. 호흡을 길게 가져가면 물속에 펼쳐지는(물장구치는 나는 모르는 그런) 넓은 세상을 더욱 깊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내가 받은 조언은 다시 말해 물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때까지 호흡을 챙길 때까지 꾸준하게 집중해보아라였던 것이다. 길게 보았을 때 지금은 크고 깊게 호흡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하고, 그러고 나면 더 새롭고 멋진 세상이 펼쳐질 수가 있다는 이야기까지였다.



크고 깊게 우리의 커리어를 찾아가면서 잃지 말아야 하는 건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 중에서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것들을 찾아내야 열정이 따라오고, 물속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수준에 이를 수가 있다. 지금의 회사는 개인의 Strength을 함께 찾아주려고 노력한다. 이 것이 팀에 미칠 긍정적인 퍼포먼스에 대한 믿음이 깔려있겠지만 그 근간을 개인의 호기심과 Strength에서 찾고, 이걸 위해 매니저와 팀이 도와주는 것은 무척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해야 하는 모든 일들이 내 호기심을 자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때론 지루한 일들도, 반복적이고 관습적인 업무도 있겠지만 이 모든 것들은 지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긴 커리어 패스를 그려가는 일에서 크게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처음엔 짜증나도 나중엔 그런 일이 또 간혹 그립기도 하고. 그런 자잘스러운 것들보다 지금 단계의 나에겐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일들을 기대하는 것이 더욱 의미 있게 커리어 패스를 시작하는 일이다. 충분한 호흡이 가다듬어질 때까지 단련의 과정이다 생각하고.


다년간 일을 하면서 열정적이면서 나아가 책임감, 사명감과 함께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을 즐기고 사랑하는 분들을 보면 정말 멋지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내가 당장 멋있는 사람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해보기보다 긴 호흡으로 나한테 펼쳐질 수많은 일들에 의미와 나만의 방식, 흥미들을 찾다 보면 나도 또한 비슷하게 성장하고 있지 않을까. 더 많은 이야기와 자극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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