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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규 May 02. 2020

싱가포르의 낯선 공기

찌뿌둥한 몸을 풀고자 조깅하며 동네를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땀이 엄청나다. 최근 높아진 습도는 사람들의 바깥 활동을 금방 지치게 만들곤 하지만 그보다 6월 1일까지로 연장된 Circuit Breaker는 평범했던 일상을 타이트하게 조이면서 최소한의 숨쉬기만 가능하도록 했다.



싱가포르는 Circuit Breaker를 발표하며 필수 서비스(그로서리, 대중교통, 병원 등)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회, 경제적 활동들이 멈췄다. 동거인을 제외한 외부 사람과의 만남조차 불가한 현실이다.(실제 위반 시 징역 혹은 벌금형에 처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밖에 나갔을 때 느껴지는 분위기가 매우 낯설다. 기본적인 마스크 착용은 여전히 시각적으로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길거리, 공원에서 담소가 불가하다 보니 같은 공간에 있으나 철저히 개인화되었고, 달리는 이들의 거친 숨소리는 생기라기보다 녹슬지 않기 위한 기계의 작동음과 같아졌다.


모든 것이 꺼져버린 싱가포르, CNA




기본에 충실한



제약적인 삶으로 바뀌다 보니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일들을 점검하게 된다. 먼저 몇 차례의 소동으로 생필품 수급을 처음으로 걱정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물자 수급이 가능해졌지만 물, 쌀, 라면, 파스타, 휴지 등 생필품이 한때 동이 나기도 했다. 너무 당연하게 언제든 구할 수 있는 것들이 어느 날 선반에서 사라지고, 마트에서 2시간가량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은 예상 해본 일이 아니었기에 필요한 것들은 눈에 띌 때 미리 구비해두게 되었다.


단순해진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먹는 일이다. 하루의 끼니를 어떻게 챙길 건지,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챙겨 먹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조금 귀찮아지면 같은 음식들을 계속 반복해서 먹거나 손쉽게 라면 같은 인스턴트식품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에 음식에는 조금 더 부지런해지려고 한다. 간식도 이왕이면 과일로 대체하려 하고, 시켜먹을 때에도 한동안 안 먹어본 음식들 위주고 시켜보곤 하면서 부디 이런 행위로라도 다양한 영양 공급이 가능하도록 한다. 최근엔 평일 5일간 점심, 간식, 저녁을 다양한 식단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도 이용해 보고 있다.


생활 반경이 한정이 되다 보니 자연스레 움직임이 적어지고, 활동량도 적어진다. 그러다 보니 억지로라도 매일 적절한 운동을 한다. 동네 산책로를 20분 정도 뛰거나 집 안에서 맨손 운동으로 흠뻑 땀을 낸다. 움직이는 건 몸인데 활력을 찾는 건 정신도 마찬가지다. 맥박수가 빨라질수록 정신적인 활동도 시원하게 재개되는 기분이 들곤 한다. 운동량만큼 중요한 건 수면 시간이다. 잘 때 꼭 애플 와치를 착용하며 수면 시간과 수면 질을 체크하고 있는데, 하루 8시간 수면, 깊은 수면 3시간 이상을 가졌다면 개운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6월 1일 이후에는



많은 이들이 이 시기를 나름의 방법으로 이겨내고 있다. 회사에서는 fUel이라는 콘셉트로 이 시기 동안 서로를 응원하고, 교류할 수 있는 활동들을 독려하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에는 많은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시기를 보내는 방법들을 공유하기도 한다. 와중에 일부는 잠시 혹은 아예 싱가포르를 떠나거나, 거꾸로 싱가포르로의 새로운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이 시기가 지난 후에 있을 주변의 변화들이 감지되기도 한다.





현재까지 발표로는 6월 1일까지 지금과 같은 생활이 이어진다. 앞으로 한 달을 이겨 내고 나면 그 이후엔 어떤 삶이 돌아오게 될까. 싱가포르 생활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건 공교롭게 '이동'이었다. 출장과 인근 국가 혹은 먼 곳으로의 휴식과 여행으로 주로 이동하는 생활이었다. 한 달에 한번 꼴로 왕복 비행기를 탔고, 그것들에 맞추어 업무와 일상을 계획하며 그럭저럭 균형 있는 생활을 이어왔다. 아마도 6월 1일 이후에는 이런 생활 방식에 큰 균열이 있지 않을까.




카톡만 간간히 드렸던 부모님께 오랜만에 전화를 드렸다. 지난 설에 새로 사드린 전기밥솥 밥맛이 좋다며 한국 들어오면 맛있는 거라도 해줄 텐데 내심 아쉬워하신다. 괜히 방해할까 봐 먼저 전화 못했다는데 보름에 한 번은 꼭 좀 전화를 달라고도 한다. 전화가 뭐라고 그렇게 아꼈을까.


원래 계획대로라면 6월쯤 싱가포르에 한번 모셨을 텐데, 효자 노릇에도 이 상황에선 변화가 필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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