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규 Dec 12. 2020

별이 빛나는 밤과 같이

고요했던 2020년은

며칠 전 안경을 새로 맞췄다. 회사에서 Vision Plan으로 지원해주는 덕도 있지만, 이따금씩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다면 나에겐 안경만 한 게 없다.(주로 갖고 있지 않은 프레임으로 안경 포트폴리오의 다양화가 안경 맞춤의 주요 전략이다.)



안경은 주로 한국 출장이 있을 때 미리 안경점이나 브랜드들을 검색해보고 방문해서 구입하곤 했었다. 한국엔 백화점에 있는 프리미엄 안경 편집샵부터 남대문 안경 타운, 동네 안경원 등 안경점들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을 정도로 형태나 취급이 다양하다. 싱가포르에서는 그만큼 매력적인 안경점에 대한 정보가 없었으나 인스타그램 광고를 통해 Katong Shopping Center에 위치한 한 안경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번 안경은 어떤 형태가 좋을지 안경점에 방문하여(방문 인원 제한을 위해 사전 예약한 이들만 방문 가능하다) 추천해주시는 다양한 제품들을 썼다 벗었다를 반복하다 조금은 멋 내기에 좋은 안경을 선택했다. 브랜드도, 색상도, 프레임도 독특한 아이템은 간택되는 날엔 있는 힘껏 멋을 부려야하는 격식까지 요구하는 느낌이지만, 이런 건 자주 사용하지 않더라도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그 역할을 하곤한다. 이 특별함은 그 2020년을 이겨온 내게 주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지적 하늘 시점(?)에서 2020년의 지구는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지 않았을까.


굉음을 내며 하늘을 오고 가던 것들도, 모여서 함성을 지르던 일들도 모두 텅 빈 공간으로 남았으며, 사람들의 흥분, 열정, 성취감과 같은 아드레날린은 마스크 안에서만 부풀었다.


다행히도 고요 속의 외침과도 같이 우리가 창조한 디지털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었다. 19년엔 22번의 비행이 1년살이를 의미했다면, 20년엔 늘어난 구독료와 함께 콘텐츠 플랫폼들이 내 일상을 파고들었고 업무 간 미팅들도 VC Fatigue가 발생할 만큼 빠르게 화상으로 전환되었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힘든 올해를 버텼지만 실제 올해를 살고난 지금의 시점에서는 이 변화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여전히 해결할 숙제처럼 남는다.



전쟁을 치렀던 이전 세대들은 전쟁이 다 끝나고 공허한 순간을 어떻게 맞이했을까. 비교 할바는 아니겠으나 마음만은 그들과 같이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 다른 공간에서 무사히 건강하게 존재하는 가족들, 각자의 삶을 잘 살아내고 즐거움을 찾고 있는 친구들과 모바일을 통해 연결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환경에 힘을 더해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내 직업 또한 5년 전의 나는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큰 행운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2020년의 여정이 곧 2주간의 휴가와 함께 마무리가 된다.


고요하지 않았다면 특별하게 빛나지 않았을 것들을 이번 연말 다시 한번 되새기며, 조금은 더 능동적인 내년을 기대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싱가포르의 낯선 공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