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디자이너가 공유공간을 만든 이유
판교에는 문화와 재능을 공유하며 놀고먹고 이야기할 수 있는 편안한 모임공간이 있다. 동판교에 위치한 이곳은 온라인을 통해 예약하여 서울에서 찾아오는 청년들의 모임부터, 근처 직장인들의 숨은 워크숍 아지트로 알려지면서 판교 테크밸리 뿐만 아니라 서울, 경기 외곽에서도 공간을 이용하기 위해 찾아오는 팬 분들이 되어 찾는 문화공간이다. 신도시로 개발된 분당 동네임에도 펜션에 온 것과 같이 바베큐를 즐길 수 있는 모임공간으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문화공유공간인 '계단밑테이블'이다.
5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문화공유공간 계단밑테이블을 운영하는 박혜진 디자이너는(이하 ‘호스트’) 13년 동안 회사에서 웹툰 디자이너, 브랜드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이제는 회사 일이 아닌 누군가에게 즐거운 경험을 디자인해주는 프리랜서로 활동하고자 작업실을 만들었다. 퇴사 후 첫 번째 작업실로 이 공간을 꾸민 호스트는 회사에서 나름 인정받는 디자이너였는데 회사 밖을 나오자 한 순간에 쓸모없는 잉여 인간이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충분히 가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 쓰이지 못하고 있는' 재능과 주변에 있는 잉여 인간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고, 이전과 다르게 주변 상황의 가치를 새롭게 되돌아보면서 사회적으로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하고자 했었다.
이렇게 호스트의 첫 번째 공간 프로젝트는 ‘잉여쌀롱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비자발적인 잉여들의 가치를 활용해보자는 취지로 다양한 모임과 프로젝트를 하려면 공간이 있어야 했고, 호스트의 작업실도 필요했던 차에 시작한 것이 바로 ‘계단밑테이블’ 공간 프로젝트다. 처음에는 호스트의 개인적인 모임을 주최하면서 테스트를 거듭한 끝에 5년 전에 이 공간을 정식적으로 오픈했다.
2014년, 문화공간, 공유공간이란 개념이 지금보다 더 낯설었던 시절에 작업실이자 모임공간을 시작한 호스트. 당시 호스트의 개인 프로젝트 모임의 이야기만 쌓이던 곳이 이제는 공간을 필요로 하는 많은 이용자들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곳으로 운영되고 있다. 회사에서 나와 프리랜서로 5년 동안 활동한 호스트도 한글 타이포그래피 조명 만들기 클래스를 꾸준히 운영하면서, 창업지원 사업도 선정되는 등 이 공간과 함께 계속해서 성장하며 문화공간으로 동네에서 자리매김 중이다.
호스트는 맨 처음 작업실 공간을 일반 카페로 만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일반 카페보다는 공간 안에 들어가는 콘텐츠 프로그램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콘텐츠가 있는 공간을 운영해보고자 시작한 호스트는 ‘계단밑테이블’을 만들 당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회사에선 아무리 잘해도 다 회사거라 망해도 내 것을 하다 망하고 싶다란 생각을 했어요.’ 호스트의 생각이 이렇다 할지라도 내가 이야기를 나눈 계단밑테이블 호스트는 카페 운영했었어도 분명 지금과 같은 멋진 작업실을 만들었을 것이다. 호스트가 갖고 있던 작업실에 대한 로망들을 실현하기 위해 시작한 지금의 문화공유공간도 벌써 5년이란 운영 노하우와 이야기들이 쌓였다. 이곳에서 먹고, 자고, 놀고, 일하는 호스트가 문화공유공간을 운영하는 특별한 방식과 계단밑테이블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이야기를 지금 공유한다.
“계단밑 공간에 쌓이는 다양한 콘텐츠들... 한 번뿐인 신제품 보고회, 프로포즈 등”
요즘은 많은 기업들이 크레이티브 한 회의를 위해 사무실이 아닌 이색적인 워크숍 장소에서 회의한다는 이야기(or 사례)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 회장도 컨퍼런스홀, 호텔이 아닌 소규모 모임 장소에서 회의를 하는 사례는 접해보지 못했었는데, 계단밑테이블의 이야기는 조금 색다르다. 어느 날 국내 식음료 제조 분야의 대기업에서 회장도 직접 참여하는 신규 사업 발표가 계단밑테이블에서 진행된 적이 있었다. 워크숍 공간을 공유해주었다가 덤으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아 신규 사업 프로젝트 디자이너로 참여했던 호스트의 이야기.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콘텐츠 공간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사례이다.
계단밑테이블 호스트가 생각하는 또 다른 특별했던 콘텐츠는 아프가니스탄 외국인 신혼부부의 프로포즈이다. 특별히 프로포즈 공간으로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프로포즈 공간으로 종종 사용된다고 한다. 평생 한번 있을 법한 프로포즈는 예비부부라면 모두에게 중요한 만큼 호스트는 프로포즈로 예약이 들어오면 일일 서포터가 되어 깜짝 이벤트를 도와주거나 팁들을 공유해주곤 한다. 프로포즈 성공한 커플로부터 ‘이곳을 선택한 게 제일 좋았다’고 문자로 메시지가 올 때 공간 운영자로서 가장 뿌듯하다고 한다.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보람찰 때는 애착을 갖고 만든 공간을 사람들이 잘 이용해주는 모습을 볼 때 일 것이다. 이런 공간을 다른 사람이 기획한 의도와 공간을 같이 예약 시간 동안 잘 이용하고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뿌듯하지 않을까.
요리 촬영, 원데이 클래스, 백일잔치, 브라이덜샤워 파티, 프로포즈, 작가 인터뷰, 기업 워크숍 등 계단밑테이블을 찾는 고객들은 다양하다. 프라이빗한 모임 및 행사를 갖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계단밑테이블은 1회 1팀만 예약을 받기 때문에 독립된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 운영 방식이다. 프라이빗하게 이용할 수 있으면서도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호스트가 직접 꾸민 공간이라 고객들은 다양한 콘텐츠 진행을 위해 예약한다.
“20%는 새것, 80%는 중고제품과 재능 교환으로 채워진 문화공간“
계단밑테이블에 특별히 정감이 갖던 이유는 새것이라 조심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이 다른 공유공간 보다 적어서 였던 것 같다. 아니다 다를까. 호스트는 퇴사 후 이 공간을 오픈할 때, 지금의 모습으로 100% 채우지 않았고 조금씩 운영을 하면서, 예약을 받으면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왔다. 실제로 호스트가 작업하는 공간인 만큼 호스트의 취향이 잘 반영된 공간이었지만 공간의 인테리어 및 사용제품 80%가 중고제품으로 구매하거나 재능 공유로 받은 것이었다.
문화공간이라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공간이라 무언가 만들거나 요리를 할 수 있는 곳이라 다양한 제품이 필요했다. 호스트의 디자인 안목으로 중고 제품으로 저렴하게 가져와서 채웠다고 한다. 식기구 같은 것은 아름다운가게 장터나 고급 레스토랑에선 1,2년 주기로 식기를 바꾸는 것을 알고 해당 레스토랑 행사 시 고급 식기를 저렴하게 가져왔다. 발품과 시간이 들었지만 어설픈 중고로 채우지는 않아서 이용한 사람들이 중고 느낌도 없고 오히려 사람 냄새가 나는 온기 있는 공간으로 좋아한다.
반지하 공간이라 환기시스템이 궁금해서 알아보니 이 공간의 환기 시스템은 호스트의 디자인 재능과 환기시스템을 재능교환으로 맞바꾼 것이다. 환기 공사 하시는 분들의 디자인 일을 봐주시고 공간에 환기 시스템 설치를 한 것이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기한 사례를 경험한 것은 비록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공간을 채우는 것은 정말 운영하는 사람의 애정이라는 것을 계단밑테이블 호스트를 통하여 인사이트를 다시 한번 얻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나머지 인테리어와 제품들은 환기 시스템과 같이 재능 교환과 셀프 인테리어로 완성한 공간이다. 이렇게 해서 채워진 계단밑테이블에는 와플 제조기, 쿠키틀, 감자 으깨는 도구, 사과씨 빼는 도구까지도 있을 만큼 다양한 조리도구들이 깨알같이 준비되어있다.
“도심 속 펜션, 게스트하우스 같은 우리만의 모임공간”
계단밑테이블에는 기본적으로 요리를 할 수 있는 다양한 조리도구를 보유하고 있지만, 특별히 문 앞에 바베큐를 즐길 수 있는 장비들과 테이블이 있어서 고기를 야외에서 구워 먹을 수 있다. 지하에 위치한 공간이지만 입구 앞은 천장이 뚫려있는 재밌는 구조라 자연환기가 되는 야외에서 바베큐를 즐길 수 있다.
호스트가 이 공간을 작업실로 선택한 이유도 숯불로 고기를 만들어 먹는 시설을 꼭 하고 싶었던 로망이 있었다고 한다.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펜션에 가야지만 즐길 수 있었는데 작업실 앞에 세팅하고 사람들에게 예약을 받으니 다들 좋아했다고 한다. 종종 제주도 독채 펜션을 쓰는 느낌이 든다는 피드백도 듣는다.
야외 바베큐 장비 외에도 도마와 칼도 10개씩, 인덕션 외 가스버너도 7개나 준비되어 있는 계단밑테이블에선 여럿이 함께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모임공간이다. 사용 하루 전 필요한 재료 목록을 호스트에게 보내면, 공간에 없는 물품을 체크해서 알려주고 있다. 계단밑테이블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예약팀에게 1회에 한하여 택시비 기본요금을 지원한다. 근처 역과 조금 떨어져 있고 모임에 필요한 준비물이나 요리 재료들을 편하게 들고 오도록 하는 호스트의 특별한 운영 노하우이다.
공간을 만들고 이용자를 받으며 문화를 공유한지도 5년이란 시간이 지난 곳이 흔치 않을 것이다. 호스트의 꿈처럼 ‘계단밑테이블’이 현재의 위치에서 오랫동안 하나의 브랜드로써 계단밑테이블이 이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써내려갔으면 한다. 파티룸 중에 하나가 아니라 계단밑테이블 만에 분위기가 좋아서 찾아오는 분들이 더 많아지고, 이곳만의 개성과 매력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잉여들이 히치하이킹하던 시절은 끝났다. 지금부터 잉여들이 모여 새로운 공유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공간에 가서 지금껏 표출하지 못했던 나의 잉여로움을 마음껏 풀면서 즐겨보자. - 공간노트”
공간정보 "계단밑테이블"
- 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588-6 지하
- 운영시간 : 오전 9시~오전 2시
(4명 이하 | 1시간당 / 3만 3천원, 5 - 9 명 1시간당 / 4만 4천원, 10 - 14 명 1시간당 / 5만 5천원)
- 공간크기 : 20평, 다양한 식기, 조리도구 보유
- 주변특징 : 분당 백현동 카페거리 횡단보도 옆 위치, 주변 공방 작업실, 케이크 작업실 있음
- 홈페이지 : https://nnntable.modoo.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