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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테트 bastet May 07. 2024

빌런이 따로 있나. 어쩌면 나 같은 사람인거지

유럽 캠핑 여행

리옹 가는 비행기 옆자리에 하필이면 계속 기침을 하는 여자애가 앉았다.

우리 모두 코로나 이후 얼마나 민감해졌는지… 이제야 여행 시작 하는 건데 코로나는 아니라도 감기거나 뭐 어떤 다른 감염이면 어쩌냐는 생각에 굉장히 민감 해졌다. 어랏 게다가 이 여자애는 마스크를 하지도 않았다. 연신 기침을 하며 코와 입을 만진 손으로 비행기 안에 있는 테이블 좌석 손잡이를 쓰다듬으며 바이러스 확산에 힘쓰는 행동을 다 하고 있다.

옆에 남자 친구 역시 개의치 않고. 프랑스 사람!

감기보다는 알레르기 같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승무원에게 말해봤지만 마스크를 권할 수는 없는 것이라 한다.

점점 나는 어찌나 불안하고 짜증이 나던지 마스크를 하고 고개라도 돌리도 있었는데 이 아이는 기침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 테이블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심지어 내게 말을 건다. 어디로 가느냐고 얼마나 길게 여행하느냐고.  매우 찝찝했지만 배고프니까 밥 먹은 먹어야겠기에 기내식을 받았는데 내가 시킨 메뉴가 괜찮은지까지. 기침을 하다 잠들도 다시 깨면 또 기침하는 사이 리온까지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서 후식 커피를 마셨다. 너무 뜨거워서 컵에 나눠 식혀가면서 천천히 마시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기침을 멈추고 잠든 여자애 덕에 나도 좀 졸았는데 그사이 커피는 식었던 것 같다. 그래선지 맛이 없고 너무 식었구나 싶어서 그냥 버리려 컵에 따르는 중간에 잠든 여자애 기척에 몸을 돌리다 그만 그 아이 다리에 남은 커피를 쏟아버렸다.

오 마이 갓!

커피가 레깅스로 쏟아져 적시는 그 순간 얼마나 놀랐던지. 다행히도 이미 커피가 다 식어버려서 뜨겁지는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일부러 그런 건 절다 아니지 그럴 리가 있겠어? 그래도 어쩌면 내 온몸에 깃들었던 부정과 거부의 기운이 결국 커피를 쏟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 안 하 다.

당황한 나는 미안하다 연거푸 아임쏘리 하는데 그 여자 아이는 그냥 아무 말 없이 바지를

쓱 만지더니 괜찮다! 고 한다. 여자애 남자 친구까지 걱정 말라고 정말 괜찮다고. 아이는 다시 계속 기침을 시작했는데 아… 기침이 더 이상 밉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하필 그지서야 내 가방에 목캔디가 있다는 게 기억났다. 목캔디를 꺼내 이거 네 기침이 도움이 될지도 몰라. 먹을래?라고 물어보는 게 어찌나 속보이고 민망했는지.

여자애는 연신 고맙다며 사탕을 받았다. 난 미안하다고 하고 여자애는 고맙다고 하고. 사탕을 입에 먾은 아이는 놀랍게도 기침을 멈췄다.

5년 전 내가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던 때가 기억났다. 3월 4월 두 달간쯤 이어진 미친듯한 기침이었다. 병원에선 이상이 없다는데 시작하면 멈추질 않아서 그야 말도 당황스럽고 괴로운 민폐였다. 감기도 바이러스도 아닌 알레르기 기침이 정말 심했다. 공기를 잘못 마셔도, 긴장해도, 입안이 말라도 갑자기 기침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연주회 때 목구멍까지 손수건과 주먹으로 틀어막는 기분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를 죽였던 기억이 있다, 통영음악회에서 내가 엎드려 기침 소리를 막고 괴로워하다 인터미션이 되었는 데 앞자리에 계시던 여자분이 뒤돌아보며 괜찮냐 아픈 건 아니냐 물을 계속 마셔봐라 사탕을 먹어봐라 조언하던 분 얼굴이 떠올랐다. 그분 표정은 성가심이 아니라 연민,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어찌나 고맙던지. 어쩔 수 없이 불편을 일으키는 상대를 성가신 사람이 아니라 괴로운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결국 빌런이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싶다. 옆사람이 계속 기침하면 내게 올지도 모를 바이러스 전에 혹시 아플까?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내가 도울 수 없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게 바로 빌런으로 가는 길이다. 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이는 기내 항공 화면을 켜더니 사는 곳을 보여준다. 리옹에서 좀 떨어진 Bourgoin Jaillieu에 산단다. 사탕 이후 아이는 기침을 멈췄고 난 빌런 되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생각했다. 쏟은 커피는 정말 괜찮다는 그 아이는 18살 마리앤이다. 내 주변엔 왜 이리 마리앤이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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