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에서 나눈 방글라데시 출신 모하마드와의 대화
(본 포스트는 2019-06-17 미주 한국일보 젊은시각 2030에 기고했던 글을 재구성함)
몇 달 전 (2019년 초) 뉴욕 맨해튼에서 동생과 점심을 먹고 리프트(우버의 미국 최대 경쟁자)를 불렀다. 차에 타자 음악 산업에 종사하는 동생이 한국 가요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챘다. 운전자 이름이 ‘Mohammad’로 되어있고, 생김새도 한국 사람이 아니어서 의아했지만, 그냥 한국음악을 좋아하나 보다 생각했다.
그랜드 센트럴(뉴욕의 용산역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을 지날 무렵이었을까? 한국말로 대화하고 있는 나와 동생에게 갑자기 운전기사가 “형님 어디 가요?”하고 한국말로 말을 걸어왔다. 우리가 제대로 들은 건지 순간 어리둥절했지만, 금세 모하마드가 한국말을 잘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와 한국말 대화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방글라데시 출신인 그는 2000년대 초중반 의정부 인근의 염색공장에서 약 7년간 일하면서 한국에 살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한국어는 유창했고, 차 안에서 그가 듣던 한국 가요들도 모두 2000년대 노래였다.
문득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덕 고용주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떠올랐고, 모하마드의 사장님은 어떤 분이었을지 궁금했다. 그가 한국 가요를 들으면서 운전하는 걸 보면 한국을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한국에 못된 사장님들도 많다고 하던데, 한국에서 일하는 건 힘들지 않으셨나요?”라고 물어보았다. 나의 예상과 달리 그는 “우리 사장님 너무 좋았어요, 또 보고 싶어요”라는 대답을 했다.
그는 한국이 좋아서 더 남아 일을 하고 싶었지만, 법적 체류기간이 지나 잠시 불법체류를 하던 중 관계당국에 적발이 되어 쫓겨났다고 했다.
모하마드와의 대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가 언급한 한국인의 ‘정’이었다. 그는 이제 미국에 산 기간이 한국에 살았던 기간과 비슷한데, 미국에서는 지금껏 그 누구도 그를 진정으로 생각해주는 질문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예를 들어 식당 아주머니들이 “어디서 왔어? 밥은 잘 먹고 다녀? 가족들은 고향 집에 잘 있어?”하고 묻곤 해서 한국인의 따듯한 마음을 느꼈다고 했다.
보통 내가 속한 2030 세대는 모하마드가 그립다는 식당 아주머니의 관심과 질문을 개인의 사생활 침해이자 간섭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내 또래가 저런 질문들을 식당에서 받았다면 매우 불쾌하게 느꼈을 것 같다.
최근 미국 땅을 밟은 2030 청년들은 과거 이민세대와 달리 한국의 발달된 여러 서비스와 인프라는 그리워하지만 한국의 사고방식이나 가치는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모하마드와 대화를 나누면서, 다양한 문화가 만나는 미국과 같은 곳에서 한국인 특유의 가치들이 정말 경쟁력이 없고 버려야 하는 것인지 반문해 보게 되었다.
나와 동생이 리프트에서 내리기 전 모하마드는 자신과 비슷하게 한국을 경험하고 뉴욕에 거주 중인 또 다른 방글라데시 친구에게 한국어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차에 한국 손님이 탔다"며 신이 나서 3자 통화를 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맨해튼에서 한국인의 정을 보았다.
한국에서 먹던 김치와 소주가 그립다던 모하마드가 조만간 한국을 다시 방문할 수 있기를, 그리고 지난 10여 년 간 각박한 세상살이 속에서 그가 그리워하는 한국인의 정이 퇴색되지 않았기를 바란다. 코로나 이전의 시대처럼 그가 한국을 방문할 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하면서...
기고 글의 원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음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190616/1253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