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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이호성 Jan 11. 2021

아프리카의 대통령

한 대륙의 대통령이 되는 법

“어디서 왔어요(Where are you from)?”

(미국에서) 우버나 리프트 같은 승차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면 운전자들에게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다. 한국에서 왔다 하면 북에서 왔는지 남에서 왔는지 추가적으로 물어봐서 이북 출신이 아닌 북한 사람을 만나는 게 왜 어려운지 설명하게 된 경험은 한인이라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어디서 왔는가 하는 질문은 궁극적으로 출신 국가에 대한 물음이라는 걸 반복된 대화를 통해 이제는 잘 안다. 그래서 특히 택시를 이용할 때 너무 많이 들어 듣기도 대답하기도 싫은 대표질문이 "어디서 왔어요?" 하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있었다(2019년 6월). 서아프리카 베냉으로 출장 나가기 한 달 전이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리프트 탔는데 조수석 앞 창문에 깃발로 추정되는 빨간색, 초록색 바탕 가운데에 자리 잡은 노란색 별에 눈길이 갔다.


보통 운전자에게 먼저 말을 거는 편은 아닌데, 처음 보는 국기 때문에 이 사람은 어디에서 왔을지 궁금해졌다.


“저 깃발은 어느 나라의 깃발인가요?” 

버키나 파소의 국기, 초록/노란/빨간색은 판아프리카 색이라고 불리며 많은 아프리카 국기의 색으로 쓰이고 있다

“버키나 파소! 제 고향입니다.”

운전자는 내가 국기에 관심을 갖자 급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전에 내가 업무로 버키나 파소 출신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당신 나라가 베냉과도 가깝지 않으냐"라고 내가 되묻자 우리의 대화는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이날 차를 몰고 있던 우스만은 버키나 파소 출신인데, 내전으로 코트디부아르(또래 남성들은 알 드로그바의 나라)와 모국을 오가면서 살다가 미국에 유학 와서 생계를 위해 운전을 비롯한 여러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국가 출신이라 프랑스어가 더 편하다는 그는 이름도 프랑스어 사용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이었다.


내게 버키나 파소는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어 이름 외에 아는 게 없는 나라였다. 베냉 역시 출장이 확정되기 전이라 최대 경제도시인 코토누라는 도시 외에는 아는 바가 하나도 없었지만, 서아프리카 출신의 우스만은 내가 자신의 조국의 이웃 나라 도시를 알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매우 흥분하고 기뻐했다.


그리고는 우스만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당신은 미래에 아프리카의 대통령이 되어야겠어요.”

조금은 황당하지만 재미있고 기분이 좋을 수도 있는 말인데, 우스만이 왜 생면부지의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그건 아마도 내가 우스만에 대해 보인 아주 작은 관심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전에 나누었던 방글라데시 출신의 모하마드의 대화에서도 그랬지만(https://brunch.co.kr/@yeah2o/15), 미국은 한국보다 더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한데, 서로에 대한 호기심 궁금증도 많겠지만 한 편으로는 더 상대방에 대해 무관심하기에도 쉬운 것 같다. 


뉴욕에서 만난 이방인 우스만과 10여분 남짓 나눈 대화를 통해 “당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라는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관심의 표현일 수도 있고, 세상을 조금씩 배울 수 있는 통로일지도 모르며, 말 뿐일지라도 한 대륙의 리더(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힘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날은 내가 질문을 받은 건 아니었지만, 앞으로 "어디에서 왔습니까"라는 질문에 받게 되었을 때 나도 우스만처럼 조금 더 즐겁게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 뿐이더라도 우스만처럼 내가 외국인에게 한국의 대통령직을 주면 대화가 조금 더 흥미로울지 모르겠지만, 이는 나의 대화법이나 성격과는 잘 맞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본 포스트는 2019-08-05 미주 한국일보 젊은시각 2030에 기고했던 글을 재구성함)

기고 글의 원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음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190804/126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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