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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이호성 Jan 26. 2021

워싱턴의 고기장인

맛보다 진심

“바비큐 고민 끝! 고기장인이 오신 답니다.” (박수, 웃음, 엄지 척 이모티콘들)


노동절 주말, 친구가 야외 바비큐 모임에 초대하며 보내준 단톡방 메시지 내용이다. 여름의 끝자락을 기념하며 회사 동료 가족들이 점심을 포함한 등산을 기획했는데, 나도 뒤늦게 합류하게 되었다. 

전날 출장준비로 늦게 잠자리에 들어 모임 당일 조금 늦게 공원에 등장하자 친구들이 ‘고기장인’ ‘바비큐 대가’가 왔다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보통 바비큐를 할 때면 장 보는 것부터 고기를 굽고 써는 것까지 모든 것을 혼자서 했는데, 이날은 칼과 도마만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고기가 상당히 구워져 있어 나는 바로 장비를 꺼내 고기를 썰었다. 

“이건 립아이(꽃등심)네, 이 부위는 기름이 많이 나와서 두께를 반으로 줄여 구웠으면 겉을 덜 태우고 속도 더 잘 익었을 텐데” -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스테이크를 익힘 정도에 따라 부위별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아이들을 위한 고기는  완전히 익혀야 할 것 같다는 주문이 있어, 덜 익은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더 구워 달라고 부탁했다.

모임에 참여했던 지인들이 오전 등반으로 허기가 졌는지 고기를 써는 나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채끝살을 썰면서 “오늘따라 뉴욕 스트립이 더욱 맨해튼 섬을 닮은 것 같지 않나?”라고 이야기하니 건축을 하는 동현이가 “동서 방향의 스트리트는 났으니, 이제 가운데 5번 애비뉴를 만들어야겠네요”라고 답을 하며 즐겁게 스테이크를 나누어 먹었다.

어느 정도 먹고 난 시점에 구울 거리가 남아 그릴로 돌아가 소시지, 아스파라거스 등을 구우면서 문득 내가 어쩌다 이런 ‘고기장인’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회상해 보았다.

6년 전(이젠 8년 전) 워싱턴 DC로 이사와 아는 사람이 없을 때, 비슷한 시점에 일을 시작한 회사 동료
들을 아파트로 초대해 바비큐 자리를 마련했던 것이 시발점이었다. 내가 바비큐에 5명을 초대하면, 초대받은 사람들이 한 명씩을 더 데려와 매번 십여 명이 모일 정도로 바비큐 모임은 처음부터 인기가 높았다.

“회사 일은 부업이고, 본업은 바비큐 아니냐”는 농담을 한 동안 자주 들었을 정도다 (그때는 지금같이 바쁘지는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다).

빽빽한 콘크리트 빌딩 숲 속의 뉴욕에서 야외 수영장과 정원 옆 그릴이 있는 워싱턴의 아파트로 이사와 이런 시설들을 이용해 고기가 먹고 싶은데 혼자 스테이크를 구워 먹기는 어렵고, 새로운 친구들도 사귈 겸 시작한 것이 바비큐였다 (2013년 여름 이사를 왔을 땐 직장 상사 한 분을 제외하고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2013년 여름부터 시작된 나의 바비큐 모임은 보통 퇴근 후 평일 저녁에 진행했는데, 모든 걸 혼자 준비하자니 신경 쓸 것도 많고 여러모로 품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바비큐가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나중에는 지인의 집으로 까지 ‘출장 바비큐’를 여러 번 할 정도로 한 때 바비큐에 빠져 살았다.


왜 그랬을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주최한 바비큐를 다녀간 사람들의 칭찬이 나로 하여금 꾸준히 바비큐 모임을 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요새 같이 집에서 요리를 많이 하는 시기에 과거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유튜브나 요리책을 보면서 스테이크를 어떻게 구워야 할지 더 연구한 것도 아니었기에, 내 구웠던 고기들이 그렇게 맛이 있었을까? 살짝 드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특히 바비큐 초기에 구웠던 고기들에 대해). 


그래서 요새 드는 생각은 사람들이 초창기의 내 고기 맛 자체 보다도 아름다운 환경에서 즐겁게 사람들과 음식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나에게 '고기장인'이라는 타이틀을 준 게 아닌가 싶다. 


2015년 하반기 그릴이 없는 집으로 이사를 가고도, 틈틈이 지인들 집으로 출장? 바비큐를 다니기도 했지만, 회사 업무로 해외 출장이 잦아지면서 바비큐 모임도 뜸해졌다. 작년부터는 코비드로 인해 모임 자체가 거의 없어졌는데, 올 하반기엔 다시 새로 이사 온 집 옥상에서 사람들을 초대해 DC에서 제2의 바비큐 모임들을 열고 싶다. 


시간과 공중보건 상황이 허락한다면 칼과 도마를 들고 우리 집 옥상으로 사람들을 초대하여 ‘DC 고기장인’의 과거 명성을 띄어 넘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을 위해 고기를 굽고 썰어주고 싶다.


2021년 초 우리 집을 방문한 첫 손님과 함께 나눠먹은 립아이 스테이크


(본 포스트는 2019-09-09 미주 한국일보 젊은시각 2030에 기고했던 글을 재구성함)

기고 글의 원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음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190908/126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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