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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이호성 Aug 15. 2021

프로라는 착각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에서

현 직장에서 7년째 근무 중이다. 커리어 고민은 평생 한다고 하는데, 가끔 회사 동료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호성이는 행사 전문가!”라고 말하면 ‘내가 지금 맞는 일을 하고 있는 건가’ 생각을 하게 된다.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도시 부서에서 일을 시작해 현재 인프라개발기금을 관리하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본래 직무와는 멀어 보이는 ‘행사’가 나의 주 업무 같을 때가 있다.


‘행사’는 나의 전공이나 커리어 관심사와는 거리가 있지만, 내 업무를 지원하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다. 이 일을 4년 이상 하고 있으니 처음에는 ‘아마추어’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프로페셔널’이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개발도상국가에서 요청하는 인프라 사업의 초기 사업 개발단계에 기금을 주고,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기금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지만, 개도국에서 선진사례 벤치마킹이 필요한 경우 여러 나라의 사례들을 제시하는 방법 중 하나가 ‘행사’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진입하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한국은 놀라운 발전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적원조 수령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세계 유일무이한 국가다.


이에 세계 곳곳의 개도국에서 한국의 분야별 성장모델에 대해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고, 나도 우리 기금을 받는 개도국 사람들을 안내해 한국으로 출장을 자주 간다.

지난달에도 서울에서 우리 기금 최대 규모로 연례행사를 개최했다. 1주일 간 외국에서 150명을 초대해 약 20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각 분야마다 정부부처, 공공기관 그리고 민간기업들을 찾아가 100여 건의 미팅과 현장견학을 진행했다.


연례행사의 정점은 3일간의 기관 방문 후의 콘퍼런스였다. 우리 팀이 약 1년 전부터 공을 들여 준비한 행사였는데, 예상치 못한 대형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250명의 청중이 행사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개막식 축사 영상이 나가야 하는데 대형 화면 5개가 모조리 청색으로 바뀌면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영상 진행이 불가하다 판단되어 다음 세션으로 급히 넘어갔다. 그런데 파워포인트 화면도 뜨지 않고 심지어 마이크도 하나 둘 먹통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특단의 조치로 커피 브레이크를 먼저 진행했다. 그동안 이번 행사를 위해 고용된 전문 행사업체 (PCO, Professional Conference Organizer)에 문제를 고치게 했다. 정말 모두를 당황하게 만든 큰 사고였다.


보통 큰 행사를 하게 되면 PCO를 고용해서 행사 등록, 영상, 음향 등 업무는 외주를 준다. PCO와의 행사 전날 밤 리허설 때 영상과 마이크와 관련된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고, 3일간의 빡빡한 기관 방문 일정에 지치기도 했던 터라 우리는 아마도 마지막 행사의 기술적인 부분은 PCO가 ‘잘 알아서 할 거야’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결국 행사 당일 최종 확인을 하지 않는 실수를 범했다. 다행히 사고는 일단락되었고 이후에는 큰 문제없이 행사를 마무리했다.

매우 성공적이었던 저녁 행사 (실내 포장마차 컨셉)

‘행사’라는 업무가 나의 주된 커리어가 되진 않겠지만, 관련 일을 오래 하면서 스스로 도가 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큰 착각이었다. 커리어 고민 속에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한 사건이자 섣불리 ‘프로’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경험한 사건이었다.


(본 포스트는 2019-10-14 미주 한국일보 젊은시각 2030에 기고했던 글을 재구성함)

기고 글의 원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음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191013/127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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