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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이호성 Mar 12. 2023

신과함께 질주

어디로 어떻게 질주할 것인가

2016년 10월 미북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의 단풍을 보러 뉴욕과 워싱턴에서 온 두 청년의 짧은 여행. 목적지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뉴헤이븐시 소재 예일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직도 꿈꾸는 것이 많은 우리 둘에게 대학 캠퍼스의 에너지를 받아 신과함께 질주.




나는 어린 시절부터 혼자 상상 속의 세계에 빠져 살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기에는 레고들을 가지고 나만의 우주전쟁, 중세 봉건시대 영주들 스토리를 만들면서 놀았고, 미국에서 중학교 시절 육상을 접하면서 운동화 그리고 브랜드에 눈을 띄게 되어 그때부터 브랜드와 관련된 상상의 나래를 많이 펼쳤다. 예를 들면 중학생 천재 디자이너가 되어 밀리언 셀러 옷과 신발을 만드는 그런 몽상 같은 생각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던 것 같다.


운동화로부터 시작된 브랜드 마케팅에 대한 관심은 한국 고등학교 시절 혼자서 월간 디자인, GQ, Esquire 같은 잡지를 탐독하고 온라인으로 마케팅 글들을 많이 찾아보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대학생 시절에는 TBWA라는 유명 광고회사에서 Junior Board로 불리는 대학생 광고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기도 했다.


지금은 광고와는 거리가 먼 일을 하고 있지만, 2009-2010년 겨울 즈음 예비 광고인들 사이에서는 나름 유명인사였던 적도 있다. TBWA JB 활동들을 블로그로 남겼는데 2012년 뉴욕으로 대학원 유학을 떠나기 전 뉴요커로 살고 있던 중학교 동창 훈석이와 전화를 통해 당시 본인이 뉴욕에서 만났던 한국인 관광객으로 부터 내 블로그를 마케팅 관련 괜찮은 리소스라고 소개받았다는 일도 새삼 다시 생각이 난다. (TBWA 관련 글들은 개점휴업 중인 네이버 블로그에서)


Nike Air Pegasus 89 Tech

신과함께 한 질주 사진에 대한 포스팅에 왜 이렇게 옛날이야기들을 하나? 그건 내가 지금까지 어디로 어떻게 질주했는지 짧게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육상을 향한 열정은 운동화로 브랜드/마케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2016년부터 결혼/팬데믹 전까지 일 외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신발사진 찍기는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지 한 때 폭발적으로 질주하던 그 에너지는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잠시 생각해 본다.

Nike Air Pegasus 89 Tech과 카메라는 내가 매고 있는 필라 가방 안에, 예일대 메인 도서관 앞에서

뉴잉글랜드 단풍여행

사실 2016년 가을 장성형과 왜 단풍 여행을 뉴잉글랜드로 떠났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아마 형과 오랜만에 연락을 주고받다가 형의 여행 계획에 나를 스스로 초대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나는 이런 방법으로 멕시코, 인도, 브라질 등 지인들의 여행에 함께한 경우가 많다). 다만 여행 중에 형이 뉴욕 삶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하려고 한다는 나누었던 이야기는 잘 기억난다.


뉴욕은 2008년 연초 교내 공모전의 일환으로 안암학사 사생회 친구들과 함께 약 3주간 방문했던 것을 계기로 2011년 다시 석사공부로 가을부터 살았던 곳이다. 나의 짧은 대학원 시절 또한 명확한 목표가 부족해서 조금은 샛길 아니 완전히 삼천포로 빠졌다고 할 수도 있을 정도로 원래 계획했던 석사 공부보다는 뉴욕 생활 그리고 학생회 삶에 빠져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나는 2년 안 되는 뉴욕 생활을 정리하고 디씨로 도피하듯 2013년 이사가게 되었다. 당시 급히 결정해서 이사 간 디씨에서 10년을 주된 삶의 터전으로 살게 될 줄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는 1년 뒤도 내다볼 심적 여유가 없었던 때다.


나의 신발사진 컨셉은 내가 방문한 도시와 어울리는 신발사진을 찍는 것인데, 이때만 해도 어디를 가든 새로 구입한 스니커즈와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White Mountain 일대에서

뉴잉글랜드에도 나름 단풍과 어울릴 것 같은 Nike Air Pegasus 89 Tech와 함께 여행을 떠났지만, 역시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간이 만든 신발이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깨달음만 얻고 돌아왔다. 글의 흐름과는 조금 무관한 내용이지만, 인도 사람들이 단풍을 좋아하던가 아니면 White Mountain이 인도인들 사이에서 꼭 한번 방문해야 할 곳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2016년 10월 이곳을 방문했을 때 인도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신기하다고 성이형과 이야기했던 것도 다시 생각난다.


결혼 후 아내와 디씨에서 가을을 3번 맞이했는데, 아내가 단풍이 들면 항상 뉴잉글랜드 지역의 화사한 색깔과 비교가 안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몇 년 만에 다시 사진들을 찾아보니 정말 디씨의 단풍 색과는 차이가 크다는 것을 실감한다.


나는 결혼 전에는 단풍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만끽할 여유가 없던 사람이었나 보다. 정말 좋은 것을 보고도 그 아름다움의 가치를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역시 사람은 누구와 함께 하는가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게 아닐까. 아내를 만나기 전 미국 추구감사절 연휴에 성호가 나에게 결혼에 대한 엄청난 예찬을 했는데, 당시에는 별로 와닿는 말이 아니었지만 막상 가정을 꾸려 살게 되니 왜 성호가 결혼에 대해 입에서 침이 튀길 정도로 장점을 늘어놓았는지 알겠다.


나도 아내를 만나고 콩깍지가 씌어서 3주 만에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사실 흔히 사회에서 말하는 결혼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딱히 결혼을 할 생각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막연히 회사에서도 자리 좀 더 잡히고, 내 신발사진 취미도 뭔가로 더 이어지고 누구를 만나도 늦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다른 포스트로 더 써보고 싶다. (포스팅 가제는 XX 공주와 바보 YY)

보통 신발사진 작업은 혼자서 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는 여행을 떠나도 내 모습이 사진에 등장하는 경우가 적은데, 이때는 여행을 함께 한 성이형이 찍어준 사진들 덕분에 귀한 사진 몇 장 남아있다.


형이 한국에 귀국한 이후에도 나도 출장으로 한국을 올 때 짬을 내서 계속 인연을 이어나갈 수 있어 감사하다. 원주로 한우 먹으러 원정대를 꾸려 같이 다녀왔던 것도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다. 겨울에 먹는 한우 숯불구이와 된장찌개 식사는 생각할 때마다 잠 못 이루게 만드는 추억이다.    

올해 결혼을 앞두고 있는 성이형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림

많이 돌아다녔고, 팬데믹 때문에 잠시 주춤했지만, 앞으로 살면서 갈 곳이 더 많을 것 같다. 가정이 생겨 이제 혼자서 마구 달릴 수 없겠지만, 꿈을 향해 질주하고자 하는 마음만은 흔들리고 싶지 않다. 2016년 가을 내가 가지고 있던 신발과 관련된 질주의 에너지를 다시 소생시키고 싶은 2023년에.


신과함께 질주

사진 관련 최초 포스팅은 https://www.instagram.com/p/BMIqeprj1fz/?hl=en




덤: 꿈을 향해 질주하는 청년


마지막으로 이 신과함께 사진 작품명에 영감을 준 한 친구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2023년 연초부터 싱가포르, 발리, 그리고 국내 여러 곳을 돌면서 본인의 한반도 미래에 대한 꿈을 나누면서 질주하고 있는 김지수를 응원한다. 지수는 2021년 본인의 삶과 생각을 정리한 "나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을 집필한 저자이기도 하다. 통일 한국의 꿈을 향해 질주하는 이 청년의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싶다면 https://jisoo.stibee.com/. 이번 포스팅의 마무리는 한반도 꿈돌이 김지수와 함께한 사진으로 매듭짓겠다. 평양에서 같이 평양냉면 먹을 미래를 상상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질주해 보자.

서울 종로구 류경회관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 김지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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