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서울로
유럽의 멜팅팟
다양한 문화 속 각국에서 온 사람들
런던은 매력적이다 그리고 비싸다. 학생 때와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런던은 또 참 새롭다.
석사를 하던 시기를 돌아보았을 때 가장 후회하는 것은 인턴쉽이든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을 하며 학업을 병행하다 보면 프로젝트에 투자할 시간이 줄어 들것이고 그것은 곧 성적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에 시도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석사를 시작하기 전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던 경력이 있다는 것에 내심 안도하며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대단한 실수였다.
2018년 1월 석사 졸업 전, 막차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지원했다. 학생 비자가 만료됨에 따라 2년간의 런던에서의 삶을 고이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셀 수 없는 각국의 유명 브랜드에 입사지원을 했다. 그중 몇 곳과 전화 인터뷰, 스카이프 인터뷰도 하며 해외 취업의 꿈을 꿨다. 하지만 항상 마지막 면접에서 미끄러졌다. 워킹 홀리 데이 비자를 받았지만, 바로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서 지원해서 어느 한 곳이라도 나를 받아 주는 곳이 있으면 비빌 언덕이라도 만들어 놓고 출국을 하자는 것이 내 목표였다. 석사 졸업 후, 벌어둔 돈이 없었던 나는 더 이상 부모님께 손 벌릴 수 없었다. 하지만 평생에 한번 받을 수 있는 영국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날리고 싶지도 않았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한국에서의 경력을 살려서 이곳에 다시 한번 정착을 해야 할까 아니면 영국 취업시장에 정면으로 부딪혀 승부를 봐야 할까. 당시의 상황으로는 생각을 하겠답시고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집안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고 나는 돈을 어떻게든 벌어야 했다. '그래, 돈을 벌면서 생각해보자. 일하다 보면 또 생각이 바뀔지 몰라.' 내 마지막 결단이었다. 한국으로 귀국 한 2018년 1월 말부터 나는 6년 만에 다시 한번 한국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한 달의 구직 기간 동안 원했던 면접이 잡혔고, 첫 면접을 바로 통과했다. 그리고 마지막 임원 면접까지 순조롭게 통과하며 다시금 대한민국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왔다.
구직 활동은 비교적 순조로웠으나 한국에서 다시 시작한 디자이너의 삶은 그리 순조롭지 않았다. 런던에서 공부하면서 한국 패션 디자이너의 업무환경을 잠시 잊고 있었던 나를 야단이라도 치듯 입사 첫날부터 시작된 야근은 과거의 모든 기억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3월 초 입사를 하여 모 벤더 회사에서 RND 디자이너로 근무 하기 시작했다. 입사 후에도 틈틈히 주말마다 전 세계 각국에 이력서를 뿌리며 글로벌 취업 전쟁에 참전하였으나 좋은 소식을 전달해 주는 비둘기는 만나지 못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 후, 지옥철을 타고 한강을 횡단하여 8시 30분에 디자인실에 도착했다. 때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 생리현상도 참아가며 일했고 매일 10시, 11시 지속되는 야근에 집에 오면 자정이 넘는 시각. 바이어 미팅이 있거나, 급한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해야 하는 기간이면 새벽 1시 또는 2시까지 일해야 했다. 부모님은 항상 나를 기다리다 주무셨고, 늦게 귀가하는 딸 서운하지 말라고 항상 방에 불을 켜 두셨다. 그렇게 6개월을 버텼고, 정말 일만 했다. 당시 유일한 낙이라면 주말에 동생과 한강에 나가서 산책하고 치킨을 먹는 것이 다였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 생활을 계속한다면,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써의 삶을 이어 나간다면 과연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너무 숨이 막혔고 밤마다 울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런던으로 돌아가자.'
일하기 시작하면서 결심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어떻게든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말자. 월급의 2/3을 저축할 것, 나를 위한 쇼핑은 하지 말 것. 정말 호되게 나를 다그쳤다. 더 이상 부모님께 금전적으로 짐을 지어 드리고 싶지 않았다. 여윳돈이 필요할 땐 주말에 포트폴리오 과외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내가 필요한 돈을 마련했다. 부모님께 돈을 받아서 쓸 땐 몰랐는데, 내가 돈을 모으려고 하니 왜 이렇게 들어가는 돈이 많은 지, 좀처럼 돈이 모이지가 않았다. 가장 기본적인 교통비, 식비, 통신비, 생활비부터 시작해서 워킹 홀리데이 비자 진행 비용, 치과 진료비용, 갑작스레 입은 화상으로 인한 피부과 진료비용 거기다 한 번씩 겹치는 경조사 비용까지 훅훅 빠져나가는 지출에 잔고는 줄어들고 마음은 조급했다. 그동안 부모님은 어떻게 이 모든 것을 내게 부족함 없이 주셨을까 하는 감사한 마음에 더 독하게 돈을 모으려고 노력했다. 비자를 완전히 발급받기 위해서는 출국일 지정을 해야 했고, 마지막으로 출국 가능한 달은 2018년 11월이었다. 이성적으로 그리고 후회 없이 판단해야 했다. 8월 휴가기간이 끝나면 영국은 다시 취업시장이 열릴 것이고, 아마 그때가 가장 출국하기에 좋은 시기가 아닐까 판단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10월까지 일을 하고 돈을 모으면 런던으로 돌아가서 초기 정착 시 좀 더 여유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갈팡질팡 하던 찰나에 석사 시절 가장 친했던 스웨덴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회사에서 단기로 디자인 어시스턴트를 구하는데 내가 너를 추천했어. 혹시 관심 있으면 인터뷰 보지 않을래?" 그 친구는 영국의 유명한 하이스트릿 브랜드에서 디자인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있는 친구였다. 런던으로 돌아가자마자 단기로 라도 유명한 브랜드에서 디자인 어시스턴트로 일한다면 그것은 나의 이력서에 긍정적인 한 줄이 될 것임이 틀림 었었기에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정말? 내게 이런 기회를 주어서 너무 고마워! 바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보내줄게." 그녀는 내게 상사들이 나의 이력과 포트폴리오를 인상 깊게 평가했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어 한다고 언제 런던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물었다. 더 이상의 고민은 필요하지 않았고 나는 말했다. "9월 둘째 주에 돌아갈게." 그녀는 좋은 타이밍인 것 같다며 런던으로 돌아오면 연락 달라고 말했고, 나는 그날 바로 런던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