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짜샤 Nov 13. 2018

감옥으로부터의 사춘기

넷플릭스 리뷰.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은 리치필드 여성 교도소 이야기를 담은 긴 호흡의 드라마다. 이야기는 주인공 ‘채프먼’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주인공만큼 중요한 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군상극에 가깝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면서 각자의 죄목이 조금씩 드러날수록 그들이 범죄자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렇다. 그들은 범죄자다. 강도, 마약, 그리고 때로는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 하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시즌 1 첫 에피소드에서 느껴졌던 무시무시함이 옅어지는 건 왜일까. 그들과 같이 웃음 짓고 키득거리다가, 마침내 함께 눈물지으며 꿈꾸게 되는 것은 대체 왜일까? 


감옥으로부터의 사춘기


사춘기라는 것이 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 학교가 만드는 우울증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학교는 작은 집단이지만 그곳에는 모든 것이 담겨있다. 힘을 믿고 남을 괴롭히는 사람부터, 겉과 속이 다른 사람, 다름을 배척하는 사람, 착하기를 강요하는 사람까지.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이야기가 괜한 말은 아닐 것이다.

크기가 줄어들어 한눈에 담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모든 요소를 하나하나 살펴보게 된다.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들, 나를 방치한 사람들. 가장 소중한 무언가와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 이 모든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외부의 것만이 아니다. 소심하지만 폭력적이기도 한 내 안의 모든 요소들을 생생하게 마주한다. 그래서 멀리 보면 아무것도 아닐 작은 것들 때문에 우리는 괴로워하기도 하고 반대로 엄청나게 행복해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거쳐 왔을 그 시절. 의도치 않게 마주해야 했던 모든 것들이 극대화되어 어색하고 불편했던 기억들. 이것이 바로 사춘기의 진상이 아닐까. 그리고 이 드라마는 분명 그때 그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그 순간이 아니다. 모든 건 어느 순간 ‘이미’ 시작되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전개 속에서, 나는 인물의 과거가 나오는 부분을 더 좋아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드라마가 인물의 과거를 보여주면서 범죄의 순간만을 조명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범죄를 저지르거나 검거되는 순간은 잘 다루지 않는다.


그 대신 언뜻 보면 범죄와 무관해 보이는, 그 조차 잊고 있던 시간들을 보여준다. 아주 어린 시절 부모님과 나눈 대화, 듣고 싶었지만 결국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 혹은 강요받은 정체성처럼 드라마가 조각내어 보여주는 한 인물의 옛날을 겹겹이 쌓아야만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을 가장 쉽게 설명하고 싶다면 서류에 적힌 죄목을 읽으면 된다. 하지만 지금의 그들을 만든 건 죄를 짓던 한 순간이 아니다. 언제라고 정의할 수 없는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현재는 시작되었다.


번번이 꼭 필요한 것을 받는데 실패한 이들은 그 대신 마음의 구멍을 얻었고, 그 결핍은 오래도록 채워지지 않았다. 성인이 된 이들은 빈 곳을 채워보려 하지만 이 역시 실패한다. 그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로운 잘못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교도소에 도착해 자신의 빈 곳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사람들. 그곳에서 그들의 사춘기가 다시 한번 재현된다. 제한된 시공간 속에서 그들의 결핍은 극대화되고, 그들은 어색하고 불편한 감정을 각자의 방식으로 소화한다. 때로는 외면하고, 받아들이고, 분출하면서 달랜다. 


이상하게 내 얘기 같더라니.

내 열일곱 사춘기는 어땠는지 더 이상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생겨난 불편한 감정은 여전히 나를 어쩔 줄 모르게 만든다. 사춘기를 훨씬 지난 온 지금에도 과거의 어떤 때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그 어색하고 불편한 감정이 떠오른다. 마음의 구멍은 해가 지나도 여전하구나, 생각보다 깊을지도 모르겠다, 하고 깨닫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다. 여전히 다루기 어렵다.


머리로 이해할 뿐, 마음으로는 나아진 것 없는 여전한 사춘기.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더 공감하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었다. 친구의 별 뜻 없는 말 한마디에 우울해하거나 굴러가는 나뭇잎을 보며 까르르 웃던 그때처럼 말이다.


+
시즌 4 에피소드 7에서 힐리와 롤리가 함께 타임머신에 앉아있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힐리는 정신질환을 앓는 어머니와의 기억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가진 교도소 상담사이고, 롤리는 누군가가 자신을 해할 것이라고 믿는 수감자다. 롤리가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며 세탁실에 만든 엉터리 타임머신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나누는 대화를 듣다가 나는 눈물이 핑 돌아버렸다. 영영 채워지지 않을 서로의 빈곳이겠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오고 가는 것이 느껴져서 슬프고 따뜻했다.


짜샤팟 인스타그램 @ggassa.yamnlos
짜샤팟 구독은 @apple podcast @podbbang
작가의 이전글 살아내어 버리겠다, 는 의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