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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정 Sep 20. 2015

느려도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을 테니까-



                                                                                                                                                                                                                                                    

흔들리면 뿌리째 뽑혀버릴 것 같아서 혹여나 떨어뜨릴 새라 품에 꼭 안고 왔던 다육이.


작고 여려서 언제 크겠냐며  반신반의하며 데려오던 아이였는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한 달이 지나자 처음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자랐다.

신주단지 모시듯 꼭 안고 오는 내게 시장의 반찬가게 아주머니가 장난스레 언제 다 키울래? 하기도 했었던 녀석이다.

화분을 갈아줄 때에도 무식한 내 손길에 상하기라도 할까 봐 어찌나 조바심쳤는지. 



물을 매일 줄 필요는 없지만  내 손으로 들인 생명체인지라 매일 아침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 보았는데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했는지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 커간다.


어느 날 갑자기 스웨터 보푸레기 만큼 작고 작은 얼굴들이 스르르 올라오더니 저마다의 힘으로 오동통해졌다.

매일 통통해지는 이 녀석들이 어찌나 사랑스럽고 신기한지. 



한참 바라보고 있다가, 손가락 끝으로 톡톡 만져보기도 하고 조심스레 쓰다듬어 보기도 하는 시간이 늘어간다. 


제 힘으로 쑥쑥 키를 키우는 다육이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엄마미소가 지어진다. 

처음의 내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 녀석은 티 나지 않아도 매일 조금씩, 조용히 제 속도대로 꼬물꼬물 자라고 있었던 거다. 



무언가를 돌보고 키우면, 키우는 이는 자란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만을 알던 이가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빠르게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은 사람이 식물을 키우면서, 당연해서 잊고 사는 이치를 다시 배우기 때문이다.



다육이가 천천히, 제 속도대로 자라면서 내게 매일 아침마다 알려준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 나날들인 것 같아도 올바른 방향으로 매일 뚜벅뚜벅 성실히 걸어가기만 한다면, 어제의 내가 서 있는 자리와 오늘의 내가 서 있는 자리는 분명히 다를 거라고.




느리게 싹 틔울지라도, 오늘 뿌린 씨앗은 자라기 마련이다. 

보듬고 물 주고 관심주는 일을 멈추지 않는 한은 말이다. 

그러니까 내게서 시나브로 자라날 새싹을, 그리고 그 새싹이 어느 날 문득 피워낼 꽃을 기대해보기로 한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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