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성큼 길었다.
처음으로 머리카락을 싹둑 잘랐던 이후로 약 2년 만에 가슴 길이의 머리카락을 갖게 되었다.
긴 생머리가 갖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미용실이라는 곳이 수선스럽고 귀찮으며 예상치 못한 지출을 하게 만드는 장소이기에 부러 가는 횟수를 줄이다 보니 이만큼이나 기르게 된 것이다.
일부러 기르는 것이 아님에도 머리카락을 기르는 일은 혹독한 견딤의 시간이었고 지난 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겨우겨우 어깨까지 길렀을 때 어중간한 길이가 주는 불안정한 느낌은 확 잘라버리고 싶은 마음을 끊임없이 충동질했고, 그렇게 나는 자신을 다스리는 시간을 보냈다.
도대체 언제 머리는 기는 거냐며, 아무리 손질을 해도 멋이나 지 않는 머리에 괜히 심통을 내기도 하고
더 빨리 자라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이,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은 시간이 가야 한다.
그 시간을 인위적으로 당길 수도 없고 늘릴 수도 없다.
때가 되면 오는 것이고, 안달한다고 그 순간을 더 빨리 맞이하는 것도 아닐 터.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천천히, 느긋하게.
매일 좋은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고, 잠을 자다 보면 결이 고운 머리카락을 가질 수 있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니.
어렸을 적 복도식 아파트에 산 적이 있다. 키가 한창 자라던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그 아파트에서 보냈다.
처음 이사를 갔을 때, 키가 채 자라지 않았던 나는 복도의 난간을 넘어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없었다.
의자를 가지고 와 올라서거나, 발 뒤꿈치를 들어 콩콩 뛰어야 겨우 바깥을 내다볼 수 있었다.
키가 조금씩 자란다는 건 내게, 난간 너머 내가 볼 수 있는 바깥 세계가 조금씩 커지는 것을 의미했다.
얼른 키가 크고 싶었다. 의자가 필요 없고 발 뒤꿈치를 들며 낑낑대지 않아도 엄마 아빠처럼 당연스레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때가 빨리 왔으면 하며 매일을 그 난간에 기대어 서서 키를 재보곤 했다.
조금씩 조금씩 자라는 키가 티가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매일 실망하고, 또 내일 쑥 자라 있을 키를 상상하며 안달했었다.
그토록 원하던 키가 쑤욱 자란 걸 인지한 순간은 더 이상 그것에 집착하지 않았을 때였다.
이처럼 시간이 가면 저절로 되는 것들이 있다.
아등바등하거나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화선지에 먹물 스미듯 시나브로 되는 일들.
어차피 시간이 지나야 해결되는 일에 안달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일 터.
따라서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처럼,
키가 자라는 것처럼,
매일매일 한 움큼씩 자라고 있다.
비록 성장의 속도가 느리고, 병아리 눈곱만큼의 양이어서 티 나지 않을 뿐.
자연스레 될 일들은 자연스레 되도록 내버려 두기로 한다.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것에 더 마음을 쏟기로 한다.
하등 도움될 것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당장 해결하야하는 문제를 구분하면 마음의 결은 한결 부드러워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훌쩍 자란 머리카락을 발견할 수 있고, 훌쩍 커버린 키로 손에 닿지 않던 수납장에서 물건을 꺼낼 수 있는 날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