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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윤형 Jun 08. 2015

메르스 취재 후기,
그리고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글: 장윤형 기자(국민일보 쿠키뉴스)

"카톡 카톡"


지난 5월 28일 저녁. 출처를 알 수 없는 메르스 감염 관련 정보가 [긴급]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한 지인을 통해 카카오톡 메시지로 전달됐다. 한 종합병원에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였다. 사실 지난 5월 메르스 확진 환자가 처음 발생했을 때만 해도 메르스 감염 확진 환자가 이렇게 급속도로 불어날 것이라고는 정부도, 의료계도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괴담으로 퍼지고 있다는 SNS 등의 문자는 당시만 해도 괴담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괴담이 아닐 것 같다는 일종의 '촉'이 왔다. 가끔씩은 취재할 때 이성적 판단보다 ‘감’이 더 들어맞을 때가 있다. 물론 문자 내용이 근거 없는 소문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감을 믿어보기로 하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병원에 알아보기로 했다. 아직 어느 매체를 통해서도 기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


문자 메시지가 사실일까. 지체할 시간도 없이 병원에 문을 두드려 알아보았고, 결국 모 병원에 확진환자가 발생한 사실까지 파악하게 됐다. 정부가 ‘근거없는 허위사실 또는 소문’에 불과하다는 그 문자 메시지는 몇가지 불확실한 내용을 제외하곤 99.9% 팩트(Fact)였다. 이 기사는 ‘[단독] 여의도 도심까지 메르스 환자 발생...수도권 공포 확산’으로 출고됐다. 안타깝게도 기자가 취재한 메르스 확진 환자는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며칠 후 새로운 소식을 전해들었다. 삼성서울병원에 확진환자가 발생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취재는 계속됐다. 해당병원에 문의를 해보았지만, 당시만 해도 병원 관계자는 철저히 함구로 일관했다.

아시면서 뭘 물으세요. 대외적으로는 공개하지 말아주세요. 정부의 지침입니다.

이후 이 병원에서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가 메르스 확진자임이 밝혀졌고, 그와 직접 접촉한 사람들을 비롯해, 같은 응급실에 있던 의료진들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정부가 언론에 정보 공개를 미루는 사이, 수십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현재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 확진을 받은 환자는 의료진, 환자 등을 포함해 34명에 이른다. 10대 청소년도 확진 판정을 받아 부모들의 걱정도 커져만 가고 있다. 정부가 병원명 비공개 방침을 밝힌 사이, 많은 잠정적 피해자가 발생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1941년 1월 미국 32대 대통령인 루스벨트는 연두교서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자유가 4가지가 있다는 점을 밝혔다. 첫 번째가 언론과 의사 표현의 자유, 두 번째가 신앙의 자유, 세 번째가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바로 네 번째가 '공포로부터의 자유'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인간의 근본적인 자유 중 ‘공포로부터의 자유’도 중요한 가치로 꼽았다.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러한 권리가 정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고 여길 때 국민들은 분노할 권리가 있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기본이다.


최근 메르스 사태를 보면 대한민국의 안전 시스템이 엉망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병원 내 감염이 지역 감염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적다는 점, 공기로 바이러스가 전파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의료계와 정부의 해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정보를 받지 못한 시민들이 보이지 않는 공포인 ‘메르스’와 스스로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부천시에서 발생한 메르스 확진 환자는 대표적인 문제적 사례다. 경기도 부천시가 중동호흡기 증후군(메르스) 첫 1차 양성반응자가 나온 데 따른 주민 불안을 고려, K씨의 남성의 구체적인 동선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서울 강남의 대형병원 응급실에 입원 중인 아버지를 병문안했다. 이후 부친이 장례식을 치르고 직장에 출근한 뒤, 사우나를 들르기도 했다. 이후 고열 등의 증상으로 심해진 K씨는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지역 확산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K씨와 접촉한 사람들이 있다면 혹여라도 메르스 감염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배제할 수는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메르스로부터 보이지 않는 공포에 국민들은 전염되고 있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메르스의 경우 더더욱 국가와 대통령이 나서 국민들에게 투명한 정보 공개와 안전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의무가 있다. 병원 내 감염이 지역 감염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작다고 해도, 정부는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혹시모를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납득이 어려웠던 정부의 비밀 유지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수호할 책임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정보를 알리지 않는 것이 정부의 의무일까. 기자도 알고 국민도 다 아는 사실을 왜 공개하면 안 되는 것인가. 참으로 이상한 ‘비밀주의’였다. 도대체 왜 병원명이 공개가 되면 안 되는 것인가. 납득할 만한 이유는 한 개 밖에 없었다. ‘병원 운영’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것이 주요한 이유였다. 그러나 메르스가 급격하게 확산되는 상황에서 환자와 국민들의 알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 특히 주요 대학병원에서 확진환자가 발생할 가능성은 필연적으로 많아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 만성질환자, 암환자, 중증 질환자를 비롯한 메르스 의심환자가 국내에서 알려진 종합병원으로 갈 확률이 높다. 동네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발열 등의 증상이 있어 의심환자로 판명되면 의사들이 3차병원인 종합병원에 보내기 때문이다. 어차피 밝혀질 것이면, 투명하게 밝혀져야 했다. 왜냐고? 바로 국민의 ‘안전’ 때문이다.


이후에도 정부의 비밀유지는 계속됐다. 지난 6월 1일 병원 내부 자료인 것으로 알려진 약 10개의 병원명과 확진 환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외래 진료 및 입원 기간, 방문 병원 경로 등이 나온 자료를 입수했다. 이후 병원명만 적힌 한 문서가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됐다. 당시 기자는 보건복지부 대변인실에 이 문서에 출처, 그리고 사실여부를 확인하고자 전화를 걸었다. 문건에 나와 있는 ‘병원들’이 확진환자가 발생한 병원이 맞느냐는 질문에 복지부 관계자는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문건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알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도, 대변인실의 한 관계자는 “이 문건은 정부가 만든 자료가 아니다. 병원명은 공개 불가한 사안이므로 구체적인 내용은 말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답답했다. 국민들도 알고, 기자도 알고, 병원도 다 아는 사실인데, 정부와 청와대만 모른단다.이제야 말하지만, SNS에 떠도는 병원은 일부 잘못된 정보도 많았지만, 상당한 내용은 사실에 기반했다. 이러한 사실을 기자들도 알았다.하지만 정부는 공개 불가방침을 유지했다. 어떤 병원은 병원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환자들 진료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이유로, 또 정부의 방침을 따른다는 이유로 각 언론에 병원명 공개 불가방침을 준수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정부의 늑장대응은 미국 등 외신에서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는 대목이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지만, 우리 정부의 이상한 비밀주의, 안전불감증 등이 메르스 병원 내 확산에 불을 지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4일자 신문 1면을 통해 “메르스에 대한 한국 정보의 대응이 지나치게 느리다”고 보도했다.


어찌 되었건, 시간이 흘러 어제(7일) 결국 정부는 병원명 공개에 나섰다. 오전 11시 정부세종청사 국무총리실에서 결국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부총리는 “국민안전 확보 차원에서 확진환자가 나온 병원 명단을 공개한다”고 발표했다. 국가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7월 미국 방문을 준비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일부 네티즌들은 “나라의 수장이 국민의 안전은 뒷전으로 하고 다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연이어 비판하고있다.




국가 위기 상황 시, 대통령의 역할은.



국가가 재난 위기 상황일 때, 대통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법에 명시돼 있듯이, 대통령의 중요한 직무상 의무 중 하나는 국가의 '보전' 의무다. 대통령은 국가가 계속적으로 존속할 수 있도록 직무를 수행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지닌다. 결국 대통령은 국민이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직무를 수행해야 할 가장 큰 책임을 지닌 인물이다. 국민 불안 해소를 위해 정부가 ‘보이지 않는 메르스 공포’에 대한 좀 더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더 이상의 국민 불안을 잠식시키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나라의 리더로서, 책임 소지를 분명히 하고, 안심시킬 수 있는 대응 마련이 제일 앞장 서야 한다. 더 이상 '아 몰랑' 식의 대책으로는 국민을 공포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성별, 지역,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안전'과 관련된 사안 '생명'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치사율 40% 육박? 메르스 '오해와 진실'


메르스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이 쏟아지고 있다. 메르스가 치사율이 40% 육박한다. 더불어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무서운 바이러스라는 점에서 국민들의 공포는 더욱 커지고 있다. 메르스와 관련된 궁금증을 정리해보았다.

1) 메르스가 공기로 전염될 가능성이 있나.
- 지금까지의 학계의 의견은 ‘공기 간 전염’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보건복지부도 ‘공기 감염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공기 감염이라는 것은 침의 수분이 증발된 뒤 침 속 바이러스가 살아남아 공기 중 떠돌다 감염을 일으키는 경우를 일컫는다. 특히 의료계는 공기 전파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김성한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발열 등의 별다른 증상이 없다면  사람대 사람이 접촉했다고 해서 바로 감염될 수 없다”고 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메르스는 환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나오는 침 가래 등에 포함돼 있는 바이러스가 주변 2m 이내에 있는 사람에게까지만 전파된다. 만약 공기 전파가 감염 경로라면 현재 환자 수보다 수백 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했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메르스의 감염 전파력은 2003년 사스 또는 2009년 신종플루에 비해 낮다는 게 학계의 의견이다.

2) 메르스 치료제가 있나.
- 메르스가 위험한 것은 40%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강한 일반인은 4%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하지만 메르스가 무서운 것은 높은 치사율 뿐 아니라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메르스 증상이 있다면 전문의가 고열 증세 완화, 혈액 투석 등의 보조 치료를 통해 증상을 완화시킨다. 환자들을 진료하는 감염내과 전문의가 경우에 따라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다고 입증된 치료제를 처방하기도 한다. 메르스는 고열 등 증상이 없어어지는 잠복기(14일)의 2배인 28일 동안 재발하지 않고 이후 진단검사 등에서 메르스 바이러스가 더 이상 검출되지 않을 경우 완치 판정을 받는다.

3) 메르스 예방법은?
- 세정제를 이용해 손을 자주 씻어야 한다. 씻지 않은 손으로는 눈, 코, 입을 만지지 않아야 한다. 또한 사람들이 많은 곳에 다닐 때는 마스크를 쓴다. 기침할 때는 입과 코를 휴지로 가리고, 발열이나 기침이 있는 사람과는 접촉을 피해야 한다.



* PS: 메르스와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독자 여러분을 대신하여 취재를 통해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또한 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 이메일: vitamin@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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