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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앨린 Aug 06. 2018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기 위해서

달라진 것들, 달라져야만 하는 것들

문득 어디론가 나들이를 가는 듯 싶은 차들 사이에 함께 놓여진 주말의 강변북로 위에서, 나는 낯선 나를 발견했다. 복잡한 차선들 사이사이 끼어드는 차들까지 더해져 정체가 가중되고 있었지만 분주한 마음 대신 느긋한 마음이 들었다. 늘 해야할 많은 일들을 앞에 둔, 한 번에 여러 개의 역할을 잘 해내고 싶은 나였기에 워라벨은 고사하고 '바빠보인다'는 말을(실제로 바빴기도 했고) 듣는 것도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의 난 느긋하다. 게을러진 것인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삶이 달라진 것인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열망이 크다. 어느 도시에 가도 번화가의 큰 건물 외벽에서 'Do what you love'라는 Wework의 캐치프레이즈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선험자들로부터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는 것에 대한 장단점들도 많이 듣게 되고, 누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그는 일과 삶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 같아 부럽다.

하지만 그도 잠깐인가 싶다. 분명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단물빠진 껌처럼 뱉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함부로 뱉지도 못 한다. 내가 좋아해서 시작했기 때문에.  


누군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면 그 시작 자체로 큰 성취이고 기쁨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열정으로, 더 큰 성취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진다. '좋아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더 그렇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것은 너무 가혹하다.

무언가를 좋아하기 위해서는 좋아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더 정확히는 '충분히' 좋아할 시간이 필요하다. 물리적 시간과 마음의 시간을 포함하여. 시간을 갖고 충분히 좋아하는 것 만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시작하게 됐을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시작이 아닐까.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해 매진하기 위해 나의 많은 것을 스스로 갈아넣은 날들이 있었다. 그것이 내가 그 일을 좋아하는 방식이라고 믿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우월감과 많은 사람들이 열망하는 희소한 기회를 얻었다는 감사함을 동력으로 시작했지만 줄곧 그 과정이 행복하거나 즐겁지는 않았다. 사실 제대로 좋아할 틈 없이 이미 가속도가 붙은 페달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 페달을 더 잘 굴리는 것이 잘 좋아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는 것을 그 때는 잘 몰랐다.


진짜 마음 껏 좋아하는 그 시간 속에 머물고 싶다

그리고 얼마 후 '이제 좋아하는 것들을 하겠어!'라고 다시 선언하게 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잖아. 같은 일을 좀더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게 하겠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만 나는 '진짜 마음 껏 좋아하는 그 시간 속에 머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시간 속에 머물러 충분히 좋아하며 즐기려고 하자 자연스럽게 시계를 보지 않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가끔 오늘 못 다하는 일들이 생겨 어떤 일은 미뤄지기도, 다음 날 조금 더 많은 일을 해야할 때도 있다. 그러면 어떠랴. 그저 오늘, 이 순간, 나는 진정으로 좋아하는 시간에 머물렀는 걸. 눈깔사탕을 입에 넣은 것처럼 바쁨이 누그러진다.


좋아하는 일로부터 의미를 찾는 것, 좋아하는 어떤 구체적인 이유나 상황을 충분히 즐기는 것. 모두 느려진 나의 시간으로부터 오더라. 어쩌면 강제적으로 여유를 부려야할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느려진 나의 시간이 예기치 않았던 좋아하고 싶은 새로운 것들로 나를 데려다 주기도 한다. 이 대목이 가장 빅잼이다. 혹 이 단물이 빠져버린다 해도 기꺼이 뱉고 새로 씹을 수 있게 말이다.


시계가 없는 공간에서 오늘도 나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좋아하는 것들을 충분히 좋아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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