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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림 Dec 06. 2020

권력의 맛, 우화의 맛

#9. <동물농장> + <감기 걸린 물고기>

조지 오웰, <동물농장>, 민음사
  "한마디로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오. 인간은 우리의 진정한 적이자 유일한 적입니다. 인간을 몰아내기만 하면 우리의 굶주림과 고된 노동의 근본 원인은 영원히 제거될 것이오. (중략)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간과 인간의 방식에 대한 여러분의 적개심을 버리지 마시오. 두 발로 걷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입니다.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모두 우리의 친구입니다. 인간에 맞서 싸우는 데엔 우리 동물들이 결코 인간을 닮아서는 안 된다는 점도 기억하시오. 여러분이 그를 정복하더라도 절대로 그의 악한 짓거리들을 모방해선 안 됩니다. (중략)  인간의 모든 습관은 사악합니다. 무엇보다 동물은 동족을 폭압 해서는 안 됩니다. 힘이 세건 약하건, 똑똑하건 않건 간에 우리는 모두 형제입니다. 동물은 어느 누구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됩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합니다."


  메이저 영감의 연설에 마음을 움직인 동물들은 혁명을 일으켜 <동물농장>을 세운다. 그들의 바람대로 모든 동물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메이저 영감의 연설 내용을 바탕으로 동물 주의 7 계명을 벽에 기록한다. 인간의 속박에서 벗어난 동물들은 행복해졌을까. 안타깝게도 결론은 불행하다. 동물들을 이끌었던 돼지들은 하나 둘 ‘예외’ 조항을 만들었고, 인간의 모습을 모방하며 동족들을 폭압하고 죽이는 일은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에서 혁명을 통해 이룩한 이상적 공동체가 변해가는 과정을 우화로 보여준다. 구소련의 역사적 상황을 대입하면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메이저 영감은 마르크스, 인간 주인 존스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 독재자 나폴레옹은 스탈린, 나폴레옹과 대립하다 축출되는 스노볼은 트로츠키로 각각의 인물이 매칭 된다면, 동물 학살이나 외양간 전투는 스탈린 시대의 대숙청과 연합군의 침공을 떠올리게 한다.      


  <동물농장>이 여전히 우리에게 유의미한 이유는 과거의 역사 속 우화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의 맛에 물든 ‘독재’가 있는 곳이라면, 권력형 돼지들과 무지한 민중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동물농장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복서의 죽음이었다. 동물농장에서 가장 성실하게 일했던 노동자 복서는 두 가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힘든 상황일수록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과 나폴레옹 동지는 항상 옳다는 것. 나폴레옹에 대한 맹목적 믿음은 병에 걸린 그를 폐마 도살장 마차에 떠나보내는 그의 마지막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동물농장이 이상적인 공동체를 유지할 수 없었던 연유가 권력에 맛을 들인 독재자 나폴레옹만의 문제였을까? 더 큰 문제는 현실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권력의 앞잡이인 스퀼러의 말에 쉽게 속고 믿는 무지한 민중들이다.      

박정섭, <감기 걸린 물고기>, 사계절

 우리에게 비슷한 상황이 닥친다면, 과연 속지 않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까? 그림책 <감기 걸린 물고기>는 세상의 거짓 뉴스에 쉽게 휘둘리는 우리의 모습을 담고 있다. 다양한 색깔의 작은 물고기들은 하나의 큰 물고기로 무리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배가 고픈 아귀는 똘똘 뭉친 물고기들을 어떻게 잡아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빨간 물고기가 감기에 걸렸대.”라는 거짓 소문을 낸다. 빨간 물고기가 빨간 이유는 열이 나기 때문이며, 같이 있으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물고기 공동체는 그 소문에 분열을 일으키며 빨간 물고기를 공동체에서 내쫓는다. 내쫓긴 물고기는 아귀의 입으로 들어가고 아귀는 신이 나서 계속된 거짓 뉴스로 물고기 사회를 위협하고 무너뜨린다.     


 왜 물고기들은 아귀의 거짓 소문을 믿었을까? <동물농장>의 동물들이 스퀼러의 말을 신뢰하고 믿었던 이유와 같다.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언급한대로 ‘선전과 폭력이 동전의 양면처럼 상보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위험에 빠질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과 공포심을 자극하면 소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받아들인다. 복서가 ‘나폴레옹 동지의 말은 항상 옳다.’라고 믿게 만든 것은 오류적 진실 효과(Illusory Truth Effect)였다. 확실하지 않은 진의에도 불구하고 선전의 반복 효과는 진실처럼 세뇌된다. 스퀼러가 알려 준대로 순한 양들은 끊임없이 반복해서 읊어대고, 중요한 순간마다 대중의 눈과 귀를 막는 세이렌이 되었다. 나폴레옹의 곁에서 으르렁대는 개의 존재, 잡아먹으려고 입을 벌린 아귀의 모습은 나약한 민중들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잡아먹힌 아귀의 뱃속에서 다시 만난 작은 물고기들은 우연히 아귀의 재채기로 탈출하게 된다. 죽다 살아온 물고기들은 다시 뭉쳤다. 현실을 직시한 물고기의 위세는 사뭇 당당하다. 아귀는 꽁지를 내리고 도망간다. 세상에는 스퀼러들이 많다. 언론뿐 아니라 SNS를 중심으로 한 각종 매체들이 활개 치는 세상이다. 그 뒤에 나폴레옹이 있다. 우린 그것을 알고 있을까. 동물농장에서 당나귀 벤자민은 유일하게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말하지 않았고 알고 있는 것을 나누지 않았다. 행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물농장의 결말은 비극이다.      


우화로 포장된 권력의 맛은 달콤하고 쌉싸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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