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레이 Dec 19. 2017

통근일기: 19. 타인의 의지로 움직이는 삶

수요일 아침 8시 30분, 그는 홍대입구역의 출구로 이어지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가 있다. 갑자기 웬 3인칭이냐고? 일기가 3인칭 시점이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 않나. 그런 일기는 본 적이 없다고? 그냥 있다고 치자. 알 만한 사람은 다 눈치 챘을 것이다. 아마도 십중팔구 직장인일 텐데, 어쩌면 당신은 그의 뒤에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홍대입구는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행렬이 밀물과 썰물처럼 오가는 곳이니 말이다. 그 또한 직장인이고, 당연하게도 출근 중이다. 홍대입구역에 도착했으니 이제 다 온 셈이다. 파주 운정에서 서울 연남동까지, 마을버스와 지하철로 한 시간이 조금 넘는 경주의 결승선에 거의 가까워졌다. 결승선에 도착해봐야 그를 기다리는 것은 한가득 꽃다발과 기자들의 관심과 관중들의 함성이 아니라 또 한 달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 누렇게 바랜 출근부와 먼저 자리 잡고 앉아 후배의 도착 시간을 체크하는 상사가 있을 뿐이지만 말이다. 

 그는 오늘따라 발걸음이 무겁다. 양쪽 다리를 앞으로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 움직임을 반복하지 않아도 알아서 출구 방향으로 밀어 넣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있으니 무거운 것은 발걸음이 아닐 게다. 아무튼, 뒷모습만 봐서는 초로의 노인이라고 착각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다. 그는 이제 회사생활 1년을 막 넘긴, 이른바 사회 초년생이다. 여기서 그가 매가리 없는 꼴이 된 이유를 한번 추측해보자. 그저께 여자친구와 헤어진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했거나, 지금 다니는 회사에 비전이 없음을 깨달았거나, 소위 매너리즘이라고 하는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회의감에 사로잡혔거나, 어제 마신 술에 머리가 깨지도록 아프거나, 대략 이 정도가 떠오른다. 훌륭한 소설가라면 이렇게 누구나 예측 가능한 설정은 첫 번째로 제거하겠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건 일기다. 현실의 이야기란 뻔하디 뻔하다. 그는 그저 회사에 출근하기 싫을 뿐이다. 별다른 이유 없다. 


컨베이어벨트 유감

 이참에, 회사를 안 갈 구실을 이런 방향 저런 방향으로 궁리해보지만 마땅한 구실이 떠오르지 않는다. 간신히 쥐어짜낸 핑계가 다행히 통한다고 해도 이미 근처에 와버린 터라 결과적으로 서울까지 나온 게 헛걸음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미 성실하게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탄 상태다. 컨베이어 벨트를 뒤로 돌릴 수도 없고. 지금이라도 반대로 걸어갈까? 그것만큼 우스운 꼴도 없을 것이다. 

 출근하기 유독 싫은 날,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그런 날 그는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하지 않는다. 대단한 목표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저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을 늦추기 위해서, 그래서 회사에 있게 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다. 소심한 저항이다. 명상하듯 아주 느리게 걷는다. 괜한 시비로 흠씬 맞은 뒤 “그래도 정통으로 한 방 날렸어”라고 웅얼거리는 것만큼 소용없고 오히려 더 비참해질 뿐이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밖에 없는 것을. 

 어떻게 보면 그는 우리에 갇힌 닭이나 돼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물론 그곳의 사정이 꽤 괜찮을 가능성도 있다. 너른 벌판에서 평화롭게 지내는 가축도 있지 않은가. 또한 가축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는 주인이라면 우리를 깨끗하게 관리해주며, 일주일에 몇 끼는 특식으로 별미의 먹이를 주고, 그리고 가끔은 바깥 구경을 시켜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꽤 괜찮은 안식처일지도 모른다. 야생의 맹수에 쫓길 걱정도, 애써 식량을 구할 필요도 없다. 주변의 다른 동물도 비슷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러한 조건들이 그들이 갇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바꿔주지는 못한다. 우리 안의 닭이나 돼지에게 허용된 움직임의 범위는 딱 그 우리의 크기와 같다. 

 그의 행동 역시 회사와 출퇴근이 쳐놓은 경계선 밖으로 넘지 못한다는 점에서 닭과 돼지와 큰 차이는 없다. 아침이면 알람 소리에 일어난다. 머리를 감고 양치질을 하고 얼굴을 씻는다. 욕실에서 나와서 몸을 말린 뒤, 적당한 옷을 골라 입는다. 그다음으로는 냉장고를 열어 간단한 먹을거리를 꺼낸 뒤 입으로 욱여넣으며 집을 나선다. 이 모든 행위의 목적은 출근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남는 것이다. 그 시간이 자신의 소유라고 볼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그 스스로의 의지대로 행동했다고 볼 수 있을까. 몸을 움직인 것은 제 자신이지만 자유로운 행동이라기보다는 출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머리를 먼저 감을지 양치질을 먼저 할지, 허기를 채울 만한 먹을거리로 무엇을 택할지, 신발을 어떤 걸 신을지 정도다. 


Cindy Sherman, Bus Riders


 그가 밖에 나와 회사까지 가는 길 역시 마찬가지다. 덥거나 춥다고 해서 피할 수 없다. ‘화창한 봄날이니 아지랑이를 보러가야겠군.’ 어림없는 소리다. 버스와 지하철이 오는 대로 타고 안 오면 기다린다, 그뿐이다. 여기서도 그가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 있는 자유는 그 안에서 가장 편한 자세를 찾을 수 있는 자유, 빈자리가 어디 없나 찾아보고 운 좋게 자리가 생기면 그곳에 앉을 수 있는 자유뿐이다. 또 몇 가지가 있다면 책을 볼지, 잠을 잘지, 음악을 들을지, 가만히 넋 놓고 있을지 등등. 회사에 있는 동안은, 말을 말자. 선택지는 훨씬 줄어들고, 통제해야 하는 사항은 훨씬 늘어난다. 퇴근길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퇴근 후 집에 온 뒤의 사정은 조금 낫지만, 50분의 수업 뒤에 잠깐 주어지는 10분의 쉬는 시간이나 마찬가지다. 다음 수업, 즉 다음 날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날카로운 아침 

거울 앞 얼굴을 문지르는 사람 

분주한 기분은 

차창 밖을 느낄 순 없어 

평안은 그저 화면 안에 

멈춘 시계 예민해진 감정 

경계를 늦출 순 없어 

TV로 마취되는 자아 

타인의 의지로 또 다시 잠이 든다 

잊혀진 꿈은 어디 처박혀 있는지 

지난밤 꿈 속엔 무엇이 보였는지 

오늘도 술잔엔 변명만 가득한지 

또 쓰러진 채로 후회만 반복할지

타인의 의지로 움직이는 삶      


 밴드 라이프 앤 타임(Life And Time)의 노래 「타인의 의지로 움직이는 삶」의 가사 일부다. 후렴으로 계속해서 반복되는 “타인의 의지로 움직이는 삶”이 귓전을 때린다. 결국에는 눈을 뜨고 다시 눈을 감을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이 타인의 의지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얘기를 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진지한데다가 우울함으로 가득한 구렁텅이로 빠져버렸다. 사실 해야 하는 일을 하느라, 그러한 과정에서 타인의 이해와 목적에 맞춰 행동하느라 우리 자신이 놓치는 것은 아주 사소하고 기본적인 것들이다. 물론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대학교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다가 그만두고 대리기사로 일하며 겪은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을 이야기로 풀어낸 김민섭의 『대리사회』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일하는 도중에 배가 너무 아팠다. 백화점 화장실에 가려다가 상가 건물의 화장실이 의외로 개방되어 있어서 들어왔다. 깨끗하다. 대리운전을 하기 위해 조절해야 할 게 많다. 물을 마시고 싶어도, 배출하고 싶어도 조절해야 한다. 내 신체도 나의 것이 아니고 이미 타인에게 대리를 주었다.”⁑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다. 면접관 앞에 선 지원자, 사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한 사원, 운전 중인 버스기사, 모두 그 상황이 별 탈 없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다리고 참는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똑같은 처지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는 간단한 한 마디로 자신을 고용한 변호사의 요구와 부탁을 뿌리치는 바틀비의 행동에 묘한 쾌감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의 쓸데없는 고민이 있고 며칠이 지나서였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그는 홍대입구로 향하는 지하철을 타고 있다. 자리를 잡은 지 20분 정도 지났을까. 표정이 심상치 않아지더니 갑자기 문 앞에서 선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가 내린 곳은 홍대입구역까지는 아직 몇 정거장 모자란 강매역. 아니나 다를까 그는 화장실로 향한다. 이 시점에서 이 글은 소설이 아니라 일기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가는 게 좋겠다. 소설에서는 어떤 치부와 치욕, 실패와 수치도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지만 일기이기 때문에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 부득이하게 난처한 상황에 처한 당사자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자. 

 그는 시험장을 나온 수험생처럼 시원한 표정이다. 생리현상으로 인해 지각을 예약해둔 상태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라도 한 듯 당당한 표정이다. 그리고 역으로 평화롭게 다가오는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그는 잠시, 조금 전의 풍경을 떠올린다. 다급하게 내린 자신을 뒤로하고 유유히 떠나가는 지하철과 지하철에 몸을 의지해 각자의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유리창으로 설핏 비치는 그들의 표정과 자신의 표정을.                



* 제목은 라이프 앤 타임의 노래 제목에 빌려옴.

⁑ 김민섭, 『대리사회: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와이즈베리, 2016, 39쪽.           


매거진의 이전글 통근일기: 18.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당신도 나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