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 번은 어김없이 국정감사가 열린다. 정부에 대한 국회의 감시 및 교정이 그 목적이다. 국회의원은 공격수, 정부관료는 수비수가 된다. 한쪽에서는 미세한 허점이라도 찾아내어 공격을 퍼붓느라 분주하고, 다른 한쪽에는 물 한 방울 샐 틈 없이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여념이 없다. 설사 한쪽 방어벽이 무너지더라도 당황해서는 안 된다. 재빠르게 대처하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논리와 객관성을 상실한 채 막말이 오가는 이전투구의 장으로 변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그에 못지않게 감사라는 말이 무색하게 수박 겉핥기식으로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넘어가거나 언제 서로 감시하는 사이였냐는 듯 ‘위 아 더 월드’로 끝나는 경우도 많아 과연 의미가 있는지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내 생애 국정감사에 말 한 마디 얹을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이란 다시 태어나게 될 확률보다 낮아 가당치도 않겠지만, 아주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손을 번쩍 들고 하나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경의중앙선은 왜 이렇게 연착이 잦은 거죠?” 경의중앙선 앞에서는 열차 시간표가 무의미하고 실시간으로 열차의 위치를 알려주는 첨단의 어플리케이션이 무용지물이다. 정확한 것은 출발 시간 하나다. 경의중앙선 노선의 한복판에 있는 홍대입구역, 공덕역, 용산역에서는 그저 언젠가는 오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갈팡질팡하게 되는 발걸음
규칙성이 없으니 예측이 불가능하고 예측이 불가능하니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이리저리 갈팡질팡하기 일쑤다. 이를테면 문산행 열차가 홍대입구에 오후 6시 30분에 도착한다고 쳐보자. 물론 시간표상으로 말이다. 몇 번은 도착 시간에 맞추기 위해 부랴부랴 역으로 향한다. 그런데 보기 좋게 헛물을 켠다. 10분이 지나도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네 개의 정거장이 더 남았다고 역 안의 전광판이 친절하게 알려준다. 다음부터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다. 시계가 6시 29분을 가리키고 있어도 여유만만. ‘오호, 급하게 뛸 필요 없겠군, 천천히 40분에 들어가야지.’ 화장실도 들르고, 편의점에 들러서 음료수도 사 먹으며 한가롭게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어차피 늦게 올 게 뻔하니까.
알량한 잔꾀를 부리는 모습에 열차의 심사가 뒤틀린 걸까. 어찌된 일인지 열차가 올 생각을 않는다. 10분 여유를 부렸다가 원하지 않을뿐더러 감당하기 힘든 30분 동안의 붕 뜬 시간이 생겨버린다. 열차는 이미 지나가버리고 없는 것이다. 이런 걸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는 건가. 여기서 짚고 갈 것은 경의중앙선의 배차 간격이 다른 지하철에 비해 듬성듬성하다는 점이다. 보통 15분 간격이다. “저녁에는 좀 쉬고 싶어요!”라고 맘먹고 사장에게 말했다가 “그래, 이참에 아예 푹 쉬어”라는 대답이 돌아온 꼴이다.
Cindy Sherman, Bus Risders
그럼 이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시간표에 쓰여 있는 대로 맞춰서 가자니 연착된 열차를 멍하니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고, 어차피 예정된 시각보다 늦게 올 테니 열차 시간을 무시하고 천천히 갈라치면 하필 그 열차는 정시에 도착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어김없이 노심초사.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다. 마치 금요일 밤에 택시를 잡는 일과 비슷하다. 언제 온다는 보장이 없다. 일찍 나간다고 해서 택시를 바로 타게 되는 행운을 잡을 가능성이 높은 것도 아니고 반대로 늦게 나간다고 해서 반드시 택시 잡는 데 한참 걸리는 것도 아니다. 예측이 불가능하니 모든 게 운에 달려 있다고 믿고 어떤 상황이 일어나든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놓치면 ‘아 내가 덕을 더 쌓아야 하는구나’, 바로 타면 ‘앞으로도 열심히 덕을 쌓아야지’. 성인군자, 위대한 현자라면 답을 알고 있을까. 어이없게 열차를 놓치고 헛헛한 기분에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지하철 어플리케이션을 켜보지만 아무리 뚫어지게 본들 지나간 열차가, 예정에 맞춰 도착해 진즉에 떠난 열차가 갑자기 연착을 할 리는 없다. 가장 허탈한 상황은 다음 열차가 연착을 하는 때다. 엎친데 덮친격은 아마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하지만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것을 누굴 탓하랴.
다시 국정감사 현장으로 돌아가자. 경의중앙선을 관리하고, 직접 열차를 운행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억울한 심정이 크다는 걸 안다. 그들을 책망하려는 건 아니다. 출퇴근 시간에는 탑승객이 많으니 정거장에 도착할 때마다 열차의 문을 오래 열어둘 수밖에 없고, 그렇게 짧디 짧은 십 초 이십 초가 모여서 삼 분 오 분으로 늘어 연착이 되는 부득이한 상황이 벌어지니 말이다. 또한 모르긴 몰라도 만원 열차인 경우에는 작은 흔들림과 충격도 객차 안 승객에게 큰 불편을 줄 수 있으므로 속도를 제대로 내기 힘들 것이다.
길고 또 긴 경의중앙선
아마 근본적인 문제는 경의중앙선의 노선이 너무나도 길다는 점일 게다. 경의중앙선은 이름 그대로 경의선과 중앙선이 연결된 노선이다. 끝과 끝에 놓인 문산역과 지평역 사이의 거리는 시간으로 따지면, 이럴 수가, 무려 2시간 45분이다. KTX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이다. 노선 위의 역은 53개인데다 파주, 일산, 서울, 구리, 양평, 거치는 시 단위 행정구역만 해도 다섯 개에 이른다. 이 기나긴 노선 위를 오가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설 때마다 승객이 안전하게 탔는지, 멀리서 뛰어오거나 다급한 맘에 닫혀가는 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야 하는 기관사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이제 화살은 굳이, 하필이면 경의선과 중앙선을 연결한 이유로 향하게 된다. 승객은 불편하고 기관사는 힘들다. 물론 이는 내 영역 밖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부분은 내 선에서 해결 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푸념과 하소연을 늘어놓는 일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건 없다.
다시 연착과 정착 사이를 널뛰듯 제멋대로 오가는 경의중앙선 홍대입구로 돌아가자. 하소연에는 엄숙한 국감 현장보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지하철역이 더 어울린다. 그래,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성토의 장을 마련해보자. 한 사람 한 사람 붙잡고 물어보자. 매일 경의중앙선을 타고 출퇴근하는 김 대리. “지금, 30분이나 기다렸어요. 가뜩이나 화나는데 귀찮게 하지 마세요.” 아,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서울에 놀러 나온 일산의 중학생. “능곡역 근처에 사는데 그 역에는 스크린도어가 없어요, 위험해요!” 네, 그것 참 문제로군요. 만약 그 자리에, 공항에서 머무르며 글을 썼던 알랭 드 보통이 있다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여행자가 도적, 비바람, 찌는 듯한 더위, 파도와 싸웠다면 현대의 여행자는 열차 시간표와 출퇴근 기록표와 싸웁니다. 이 자리에서 기술과 과학의 발전이 과연 여행자의 마음을 더 풍요롭게 했는지 묻게 됩니다.” 네, 그러시군요.
미워도 다시 한 번!
“미워도 다시 한 번.” 결국에 손에 쥔 카드는 이것뿐이다. 경의중앙선을 미워하게 만드는 수백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럼에도 경의중앙선이 예쁘고 고맙게 느껴지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한 시간에 한 번 다니던 기차에서 15분의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경전철로 바뀐 지 어언 10년이다. 고마워할 수밖에 없다. “경의선과 중앙선이 합쳐진 지금이 싫다면 예전으로 돌아갈까?” 하고 묻는다면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았던 지난날을 눈물로 사죄해야 할 것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고?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고양이 쥐 잡듯 남편의 수많은 단점을 사정없이 내려치는 데 도가 튼 아내도, 불량품을 골라내는 정교한 기계처럼 아내의 숱한 결점을 열거해 표로 만들 정도인 남편도 결국에는 몇 가지 대체 불가능한 장점과 오랜 애정으로 서로 맞춰가며 살아가듯이 경의중앙선에 불만이 있어도 가능한 한 좋은 모습만 보려 하며 지낸다. 그래도 막차는 늘 칼 같이 정확하다. 막차는 가끔 늦게 도착해도 좋으련만. 이러쿵저러쿵 구시렁대는 건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