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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Nov 25. 2022

왜 제주에는 길의 곳곳에 무덤이 있을까?

- 제주에서 만난 무덤 이야기

제주에 내려와서 길의 곳곳을 거닐다 보면

종종 무덤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그것이 다소 낯설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무덤이 있어야 할 산소나 묘지가 아니라, 길 옆의 귤밭, 오름의 중턱, 올레길 모퉁이 등등, 일상의 곳곳에서 불현듯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우리는 죽음을 불길한 것, 혹은 기피할 것으로 외면하며 살아온 게 아닌가 싶다.


도심에는 아파트나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묘지가 남아있을 자리가 없었고, 너무도 바쁘게 살다 보니 멈춰서 죽음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치원에 다녀오던 아이가 물었다.


"아빠, 저게 뭐야?"


제주의 길에서 소소하게 만날 수 있는 무덤


마을회관과 귤밭 옆에 작은 무덤이 있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어서, 그간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


"저거, 무덤. 사람이 죽으면 저렇게 묻히는 거야."


전에도 공원이나 유적지에서 같이 본 적이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일상 속에서, 그리고 집 앞에서 무덤을 보니, 그것은 더더욱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들이 다시 묻는다.


"아빠, 그럼 우리도 죽어? 죽으면 같이 못 살아?"


나는 아들의 물음에 뭐라고 답해줘야 할지 몰라서 한참이나 할 말을 골랐다.


"그게 말이야. 천국에서 다 같이 살 수 있데."


해줄 수 있는 말은, 나도 잘 모르는 얘기뿐이었다.


"이 돌담은 뭐야?"


올레 8코스에서 만난 산담


그제야 나는 오며 가며 주워들은 얘기를 해주었다.


"제주 사람들은 죽어도 혼이 돌아다닌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담을 쳐주었데, 그리고 무덤을 산, 그리고 저렇게 쌓은 돌을 산담이라고 불렀데. 그러니까 이건 세상을 떠난 이들의 집이야."

"무서워."

"무섭기는 우리 모두가 돌아갈 집인데."


막상 무덤을 집이라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번 생에서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큰 아파트에 살아도 결국 우리가 돌아갈 곳은 이 작은 집 하나뿐.


그러니까 아등바등 살다가도, 좀 더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고, 좀 더 자주 사랑을 표현하고, 좀 더 자주 돕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집?"

"여기 봐봐, 옆에 작은 문도 있지? 이걸 '신문(神門)'이라고 한데, 왼쪽에 있으면 할아버지, 오른쪽에 있으면 할머니래."


신이 드나드는 문.


제주 사람들은 그래서 무덤을 소중히 여겼고, 이웃에게 터가 없으면 자신의 논밭 한쪽을 흔쾌히 무덤 자리로 내주었다.


그래서 제주에는 어디를 가든, 어떤 관광지에 가든 그곳과 어울리지 않게 산담이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제주에 살다 보니 무덤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라산과 논짓물 앞바다


우리 모두가 돌아갈 그 집...


그렇게 생각하니 산담도, 오름도, 바다도 집처럼 느껴졌다.


"다 우리 집이야."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고 싶은 사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자연 속에 있으면 이렇게 편안한 것일까.


바다 위 우리집


오늘도 우리 가족은 마라도와 가파도가 내려다보이는 빈 집에서 지는 해를 바라본다.


제주의 산담은 우리의 일상에 쉼표를 찍어주듯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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