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하 Dec 01. 2022

전업 작가의 길을 묻는 그대에게

- 지속 가능한 글쓰기를 위하여

안녕하세요? 답변이 좀 늦었지요?


OO님은 소위 '글먹', 즉 ‘전업 작가’의 삶에 대해 질문 주셨는데요.


저 역시 이 질문을 받고, 얼마간 고심을 했습니다. 어쩌면 글을 쓰는 이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 아닌가 싶어요. 결국 글에 집중하고, 계속 써나가려면 어느 정도 생계도 뒷받침되어야 하니까요.     


먼저는 작가가 된 이후의 제 삶을 돌아보았고, 선배들, 그리고 후배들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성공한 작가도 있고, 저처럼 실패한(?) 작가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먼저 시를 썼습니다. 2005년에 한 문예지에 시를 발표했고, 이후 7년에 걸쳐서 쓴 시를 묶어서 2012년에 첫 시집을 냈는데요.


나름 의욕적으로 3년여간 중국을 다니며 취재도 하고, 이야기시뿐 아니라, 산문시, 등 다양한 시를 실험했습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였습니다.     


그러나 시집을 내고, 전업 시인으로서 출사표를 냈지만 철저히(?) 주목받지 못하였습니다. 시집은 팔리지 않았고, 평론가들은 제 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제 실력은 부족했고, 독자들은 제 책을 선택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나자 원고 청탁도 들어오지 않았고, 두 번째 시집을 내자는 출판사도 없더군요. 이대로 시인으로 살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선택해야 했습니다. 조금 배를 곯더라도, 누가 봐주지 않더라도, 발표하지 못해도 계속 시를 써나갈지, 아니면 시를 다소 더디게 쓰거나 유예하더라도 일단은 밥벌이를 먼저 신경 써야 할지. 저는 결국 후자를 택했습니다.     


잠시 다른 작가 얘기를 먼저 하자면, 공교롭게도 당시 같이 습작을 했던 동료와 후배들은 첫 시집으로 크게 성공을 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J는 시를 참 의미 있고, 예술적이며, 특별하게 써내는 친구였어요.

당시 우리는 J의 시를 보고 탄복하면서도 ‘사랑시 좀 그만 쓰라’며 놀리기도 하였답니다.


그러나 J는 다른 사람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시를 만들어갔고, 결과적으로 첫 시집이 크게 주목받으면서 전업 시인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낸 산문집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방송 출연도 많이 했고, 지금도 각급 기관 및 학교에 강연자로 나서고 있지요.     


또 한 친구는 대중적인 성공은 다소 아쉬웠지만, 자신만의 시 세계가 인정을 받으면서 두 번째 시집을 계약하자고 국내 유수의 출판사들이 경쟁을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문학성이 인정받으면서 평론가들의 선택을 받았고, 그 때문에 대학에도 강의를 다니지요. 몇 가지 행사나 문학 관련 일들을 하면서 역시 전업 작가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첫 책이 주목받지 못한 저는 다른 두 친구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걷게 되었습니다.


전업 시인보다는 ‘투잡 시인’, '투잡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지요. 시는 물론 소설 습작도 시작했습니다. 산문도 썼고, 프리랜서 기자를 자처하며 잡지사나 출판사를 쫓아다니며 일거리를 달라고 졸랐습니다.


사실 열에 일곱, 여덟, 아니 아홉은 저처럼 다른 일을 병행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도 일단 책을 내면 출판사나 문화단체, 또는 재단 등의 관련 기관에서 일할 기회가 생기기도 합니다. 저 역시 주목받지 못했음에도 한 출판사의 편집자 자리를 제안받기도 하였지요.      


또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예술가 등록’을 할 수 있습니다.


문단이나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는 것 못지않게, 책을 출판하는 자체로도 작가로 인정받을 수 있거든요.


예술인복지재단에 등록이 되면, 예술가와 기업을 이어주는 프로젝트나, 도서관에 작가를 파견하는 사업 등 여러 지원사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제가 다른 두 친구와 달리 첫 시집이 주목받지 못했음에도, 지금껏 입에 풀칠(?)할 수 있었던 것 중 하나가 이러한 예술인복지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사업에 매년 참여해왔기 때문입니다.      


또 프리랜서 작가로서 글쓰기와 관련한 다양한 외주에도 도전해볼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책을 낸 이력으로 여러 지자체의 취재일이나 스토리텔링 과업에 부지런히 참여하여 지금껏 밥벌이를 해왔으니까요.      


한편 제가 존경하는 소설가 선배 S는 책이 팔리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어느날 자신을 '작가계의 다이소'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작가계의 다이소라니, 이 얼마나 유쾌하고 신박한지요! 그분은 누가 주목을 하든 말든, 인기를 끌든 말든, 한 달에 한 권씩, 꾸준히 책을 써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작가로서 자신을 '다이소'로 칭하는 일은, 어찌 보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작가라면 단 한 권을 써도 대중들에게 인정받고, 또 학생들에게 존경받고 싶을 테니까요.


그러나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그런 사람들은 매우 극소수입니다. 실력도 행운도 타고나야 하지요.


선배 작가 S는 자신에게 천재적인 예술성이 없다는 것을 진작 인정하고, 그 대신 오로지 열정과 노력으로 승부를 보기로 하였습니다. 쓰고 또 쓰고, 또 쓰고, 또 썼습니다.


소설, 청소년 소설, 추리 소설, 엔솔로지, 동화, 스토리책, 그리고 오디오북까지.


십 수년간 쓰고 또 썼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껏 100여 권이 넘는 책을 냈고, 각계각층에서 인정받는 작가로서, 또 수많은 후배와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선생으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바빠졌습니다. 원고 청탁도 상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S는, 그런 것에 아랑곳 않고 지금도 한 달에 한 권씩 소설을 써내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진정한 천재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써나가는 그 뚝심과 집념이 아닐까. 그래서 S는 전업 작가의 길을, 자기 스스로 개척했고, 또 개척해나가고 있습니다.


반면 또 다른 선배 K는 첫 책은 소위 대박이 났지만, 그다음 책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으면서 크게 실족하였고, 지금은 회사에 취업한 후, 더 이상 글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자, 여기 이렇게 전업 작가를 시도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냥 희망적인 말이나, 마냥 어두운 면만 보여드릴 수 없어서 이렇게 여러 작가들의 모습을 보여드립니다.      


OO님께서는 어떤 길을 걷고 싶으신지요?     


아직 OO님의 글이, 책이 대중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알 수는 없지만, 제가 지금껏 지켜봐 온 바로는 결국 그 책이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중요한 것은 작가 자신이 글을 계속 쓰느냐, 아니면 포기하느냐, 둘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왜 아직 무명작가인데도 글을 포기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습니다. 제가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사실 이것입니다.


전업 작가의 삶은, 결국 책 출간의 성공 여부를 떠나 작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라는 점.


당장 인기를 끌지 못하고 주목받지 못해도 계속 글을 쓰는 이들이 있고, 그러다가 소위 가수들처럼 ‘역주행’을 경험하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반면 처음에 반짝했다가 이내 반응을 얻지 못해 사라진 이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주목은 받지 못했어도, 시집이든 소설이든 끝까지 펜을 놓지 않고, 그래도 계속 밀고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손에서 펜을 놓지 않으니, 그래도 입에 풀칠할 일들이 생기고, 그럭저럭 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비록 저는 엄밀하게 말해서 '전업 작가'라기보다는 ‘N잡 작가’이지만, 저는 프리랜서로 사는 덕분에 전업 작가 못지않은 자유와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제주 서귀포에 내려와서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답장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주목을 받지 못했어도 계속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인기를 끌지 못해도, 시집이 실패해도, 누가 봐주지 않아도, 그저 꾸역꾸역, 꾸물꾸물 계속 글을 써나갔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다른 대안이 없었거든요. 그러나 대안이 있는 작가들은, 진작 각자의 길을 찾아나가더군요.


아마도 OO님은 첫 책을 준비하면서 기대도 되고, 한편 불안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 마음,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글을 쓴다는 것은,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글쓰기 이상의 무언가를 일구어나가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의 언어를 통해 독자들에게 위로를 주고, 희망을 주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잠시나마 쉼이 되어준다는 사실. 그보다 더 값지고 귀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그 또한 귀한 선업(善業)으로 남을 것입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나갈수록 OO님의 글은 더 깊어질 것입니다.     


결국 작가는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이가 아닐까요?


말이 길었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OO님도 충분히 전업 작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게 어려워진다면 ‘투잡 작가'로도 살 수 있습니다. 결국 어떻게 할지는, OO님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번 선택했다면 과감히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OO님을 응원합니다. 지금도 잘 쓰고 계시고, 앞으로도 잘하실 것입니다.


작가의 길은 외롭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면, OO님의 글은 더 많은 독자들에게 닿을 것이고, 그들은 반드시 진심을 알아볼 것입니다.


부디 건승을 빕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 책을 낸 후배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