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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업 Nov 29. 2024

J-팝은 한국 대중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 본 기사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하는 웹진 N콘텐츠매거진 34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KOCCA N contents magazine



현실이 된 J-팝 붐


평론가 이전에 일본 음악 마니아인 필자에게 지난 11월 첫째 주에 열린 <원더리벳 2024>의 광경은 사뭇 감격스러웠다. J-팝 중심의 페스티벌이라는 것은 여태껏 시도된 적 없는 전무후무한 이벤트였다. 현장의 관객들은 이 비현실감에서 비롯된 흥분을 공유하고 있었고, 필자 또한 일면식이 없는 이들임에도 일종의 연대감까지 느꼈다. 그에 부응하듯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형태의 참여 팀이 개성적인 무대를 선사했고, 일본어에 익숙한 관객들은 아티스트가 놀랄 정도의 격렬한 반응으로 화답했다. 생각해보면 애니메이션 타이업 곡을 직접 듣고 싶어 온 이도 있었을 것이고, 긴 시간 응원해 온 우타이테(노래를 커버해서 창작 플랫폼이나 SNS에 올리는 아마추어 가수) 신의 영웅을 직접 보고자 방문한 이도 있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내한한 밴드와의 재회를 염원한 이도, 새로운 취향을 발굴하고자 하는 이도 공연장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을 테다. 이 모든 사람이 J-팝 팬으로서 서로의 존재감을 확인했다는 사실 자체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뜻깊기도 했다.


그곳에 있던 대부분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J-팝 페스티벌’의 한국 개최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소수만 즐기는 분위기였으며 이를 바라보는 외부 시선 또한 좋지 않았다. 나 역시 편견을 걷어내고 ‘일본 음악만의 매력’을 알리고자 노력해 왔지만, 무력감 또한 적지 않게 찾아왔다. 그러던 중 재작년부터 서서히 양상이 바뀌더니, 마침내 <원더리벳 2024>와 같은 행사가 실현되고야 말았다. J-팝 붐의 실체를 검증하고자 일종의 쇼케이스와 같이 3일간 펼쳐진 이 ‘한 가을밤의 꿈’은, 내년 개최를 확정 지으며 ‘지속 가능한 현실’로 정착했다. 일본 음악 팬들이 직접 이 신에 대한 수요가 있음을 양국 관계자에게 증명한 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2~3년전만 해도 이런게 가능할줄은...


2024년, 일본 음악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이처럼 ‘일본 음악’이라는 서브컬처는 최근 2~3년간 한국 대중음악 신으로 빠르게 유입되었다. 2022년 하반기부터 SNS 숏폼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관심은, 우선 2023년 한 차례 정점을 찍었다. 요아소비의 ‘아이돌(アイドル)’은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의 인기와 K-팝 그룹들의 챌린지 영상에 힘입어 유튜브뮤직 한국 주간 차트 1위를 차지한 바 있고, 이마세의 ‘나이트 댄서’는 소셜 미디어 유저의 취향을 저격하며 J-팝 최초로 멜론 톱 100에 오르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더 퍼스트 슬램 덩크>나 <스즈메의 문단속>의 흥행과 함께 텐-피트의 ‘제0감(第ゼロ感)’이나 래드윔프스의 ‘스즈메(すずめ, feat. 十明)’ 역시 높은 인기를 구가했고, 내한 공연 또한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이 외에도 유우리나 아이묭, 후지이 카제와 같은 아티스트의 팬덤이 수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이 지나 도래한 2024년의 일본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은 살짝 엇갈리는 듯하다. 이 현상을 지속해 취재해 온 기자들은 필자에게 작년만큼의 임팩트는 없는 것 같다며 그새 그 거품이 사라진 것은 아닌지 묻곤 한다. 작년과 달리 대중적 성과 측면에서 살짝 미미했던 것은 사실이다. 대신 저변 자체가 넓어지고 단단해졌다는 것은 확실하다. 여기엔 새롭게 이 서브컬처에 흥미를 느끼고 유입된 이들과, 자신의 취향을 숨기고 조용히 좋아해 오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체감되는 전체 파이가 커졌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그 수요에 부응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었고, 덕분에 일본 음악을 누리기엔 최적의 환경을 보여준 해였다는 것이 개인적인 결론이다.


가려고 했는데 못감 ㅠ




다양한 형태로 J-팝을 즐기다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해 보자면 우선, 내한 공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이들만 해도 30팀이 훌쩍 넘어간다. 티켓 파워가 검증된 ‘네임드’들은 물론, 현지 시장과 별개로 한국에서 서사를 구축하려는 비교적 신인급 뮤지션 역시 소규모 공연장을 중심으로 대거 방문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성적도 훌륭하다. 후지이 카제의 고척 돔 공연은 거의 모든 표가 팔려나갔고, 그 외 몇천 석 단위의 단독 콘서트 역시 매진 행렬을 이뤘다. 12월에는 오피셜히게단디즘과 요아소비, 3월에는 많은 이들이 고대했던 요네즈 켄시의 공연이 기다리고 있는 등 그 열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일본 음악 관련 인플루언서들이 늘어났다는 점도 주목하고 싶다.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J-팝 전반이나 특정 아티스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하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점은, 더 이상 일본 음악을 즐긴다는 사실 자체를 숨길 필요가 없어졌음을 증명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윤사의 J-POP(yoon_sa_jpop)’이나 ‘내한이(nahanie_jpop)’, ‘트랙 J-POP(track_jpop)’ 등의 계정을 언급할 만하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최신 내한 소식과 후기를 공유하고 추천 트랙을 숏폼으로 지속 콘텐츠화 하는 등 해당 필드의 커뮤니티성을 공고히 함과 동시에 새로운 지지층의 유입을 돕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특이하고 별난 음악’이었던 J-팝은 서서히 대중들에게 영미 팝과 같은 하나의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선택지로 정착하고 있는 셈이다.

저도 자주 찾고 있습니다.


국내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살리는 J-팝


그 흐름은 국내 대중음악 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온전히 일본 음악의 영향만이라고는 하긴 어렵겠지만, 국내에서 밴드 뮤직이 주목받음과 동시에 명확한 선율을 중심으로 한 기승전결 구조의 곡이 과거에 비해 인기를 얻고 있는 현상에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다고 본다. (여자)아이들의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의 역주행이나 데이식스와 QWER을 비롯해 일부 인디 팀들을 중심으로 한 밴드 붐 등을 통해, K-팝의 주 소비층인 10~20대의 일부 층에게 J-팝이 이전보다 익숙해졌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음악 페스티벌의 라인업 속 일본 아티스트의 비중도 늘어났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과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은 물론, 한·일 밴드 간의 교류에 의미를 둔 ‘라우드 브리지’, 아시아의 다양한 음악을 콘셉트로 한 ‘아시안 팝 페스티벌’과 앞서 언급한 ‘원더리벳 2024’까지. 그 안에서 일본 아티스트는 다양성 확보의 교두보 역할을 함과 동시에 페스티벌 경험이 없는 이들을 불러 모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공연 시장에서의 활약은, 그 영향력이 적지 않음을 업계 관계자들이 한발 앞서 체감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이와 함께 보컬로이드(일본 야마하 사가 개발한 음성 합성 엔진 소프트웨어이자 캐릭터)나 우타이테, 버추얼 유튜버가 연계된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의 서브컬처 신이 유입되며, 이세계아이돌과 플레이브라는 새로운 형태의 아이돌 탄생을 견인했다. 버추얼 아이돌을 표방하는 플레이브는 최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이틀 동안 단독공연을 진행하며 여느 ‘현실 보이그룹’에 뒤지지 않는 팬덤 화력을 증명한 바 있다. SNS 시대 속 국적과 언어에 상관없이 ‘취향’을 찾고자 하는 Z세대의 문화 소비 성향을 바탕으로, K-팝과 J-팝은 격렬한 상호작용을 통해 그 거리감을 더욱 좁혀가고 있다.


잠실실내체육관 이틀 공연 아무나 하는거 아니다~


새로움을 찾는 제작자들에게 희소식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이 반갑게 다가온다. 어쨌든 우리나라는 문화적 쏠림이 상대적으로 강한 나라다. 지금 지면을 통해 언급하고 있는 J-팝 붐도, 어떻게 보면 K-팝 일변도에 대한 대중들의 피로감이 일정 부분 작용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서브컬처의 영향력이 커져 지금과는 다른 것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 이는 당연하게도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루트로 이어진다. 이것은 K-팝 외 다른 음악 분야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수많은 음악가들에 대한 관심으로 환원되고, 제작자들은 차별화된 콘텐츠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갖고 이전에는 본 적 없던 것들을 만들어내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지금의 대중음악 신에 지친 이들이 대안을 모색하고, 그것이 일본 음악에 대한 인기로 어느 정도 가시화된 만큼, 그 니즈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기획/제작자들의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되지 않을까.


내년 한국 내 일본 음악이 보여 줄 움직임이 어떨지는 알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이보다 더 풍족할 순 없는 해를 보내고 있지만, 너무 한 번에 몰려온 만큼 일시에 사그라들 수 있다는 가능성 역시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럼에도, 요 몇 년 간 자신의 취향을 새롭게 발견한 이들이 있었다면, 혹은 더욱 풍성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처럼 J-팝이라는 서브컬처의 호황은 ‘다양성의 중요함’을 보다 많은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시사점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주류문화는 하위문화와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태어난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발견하지 못했던 거구나’라는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 결국 각기 다른 취향을 공유하고 존중하는 과정에서 소외된 자 없는 대중문화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한국 대중음악 신 속 일본음악의 인기를 통해 재차 절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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