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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May 28. 2024

프로 한 달 살기 여행러 맨날 공짜로 여행 다니는 비법

호텔 방에서 한 달 동안 살아봤더니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작년부터 일 년에 몇 달씩은 집을 나서 떠돌아다니며 글을 쓰고 있다. 원래 이런 삶을 사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이루어졌다. 애초에 들었던 생각은 유명한 작가가 되어 돈 걱정이 없이 집을 렌트하며 여기저기 살아보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대한민국에서 작가로 살아가다 보니 ‘작가 레지던스’라는 글 쓰는 공간을 제공받기도 하고, 각 지방에서 운영하는 ‘지자체 한 달 살기’ 프로그램들의 덕도 보고 있다. 그러니까 일 년에 몇 달씩은 ‘공짜로’ 여행하며 사는 셈이다. 이것은 좋은 프로그램의 덕을 본 것 반, 마침 시와 때가 맞은 나의 운도 절반의 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내가 회사원이거나 어느 곳에 묶여있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언감생심 생각도 못했겠지. 보통의 젊은 사람들은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선뜻 참여하기를 어려워한다. 그러므로 이렇듯 자유롭게 일하며 살도록 나의 외도를 허락해 준 함께 사업을 하는 선배들에게 몹시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떠돌이 생활을 하며 글만 쓴다면 압박감도 많았겠지만, 회사 일을 하며 카드값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니 글도 수월하게 쓰는 편이다. 또한 유명 CEO들이 한다는 ‘먼 곳으로 떠나 머리를 비우고 사색을 하기’와 같은 그 비슷한 것을 하는 느낌이기도 해서 이 시간을 백분 누리는 중이다. 원래는 집 떠나는 것을 원체 싫어하는 내가 그래도 요 몇 년은 작정하고 여기저기를 다녀보고자 마음이 먹어지지만 변덕이 심한 나의 열정이 언제 꺾일지 모르니 다닐 수 있을 때 최대한 다녀보자는 마음으로 하루를 허투루 쓰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이번엔 호텔로 떠난 것이다. 지방 여행만 해 왔던 것에 이어서 서울 중구 명동 중심가에 위치한 프린스호텔에서 한 달을 머무르게 된 것이다. 이곳에는 ‘소설가의 방’이라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데 일 년에 단 열두 명의 소설가를 뽑아 한 달씩, 호텔방 한 칸을 내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위치나 조건을 보아서 경쟁이 치열했는데, 아마도 아직 소설집 한 권 제대로 묶어내지 못한 내가 덥석 선정된 것은 지방에 사는 작가에게는 가산점을 준다는 프로그램의 취지에 부합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었나 한다. 나는 귀촌 4년 만에 다시 서울로 가서 사는 것에 대해 설렘 절반, 걱정 절반의 마음을 안고 서울로 떠났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다. 차를 주차해 놓을 수 없었기에 가지고 가는 짐을 최소화했다. 게다가 그곳은 서울, 그중에 명동, 뭐가 모자라다면 필요한 건 사면되지. 그리고 호텔에 사는데 필요한 게 뭐가 그리 많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에 내가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닌 짐 중에는 이불과 베개, 청소 대걸레까지 포함되어 있었는데, 평소보다 확실히 절반 이하의 짐을 싸들고 호텔 로비에 발을 들여놓았다.


 서울은 애증이 많은 곳이다. 지방에서 나고 자란 나는 이담에 크면 무조건 대도시로 가서 살리라 다짐했다. 스무 살 때 정말 자이언트 한 규모에 사람까지 빽빽했던 베이징에서 7년을 살았다. 긴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로 도망치듯 떠났다. 서울에 가야 큰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서울에서 10년을 내리 살았다. 그동안 창업을 했고 사업을 키웠으며 작가의 꿈도 키웠다. 어떤 이는 인프라가 좋고 모든 것이 편리한 서울생활을 여전히 좋아했지만 오래 살아보니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었다. 게다가 지방에 살았어도 시골이 아닌 중소도시에 살아온 나는 평생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와 신호등, 차와 건물에 막힌 ‘도시’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생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도시만 떠돌며 살았던 것이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궁금한 것이 많았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왜 같은 자리에서 계속 살지?’ 서울에서 산 지 10년 차가 되던 해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살 만큼 살았다. 좀 더 여유로운 경기도로 이주를 해볼까?’ 그러다 마침 회사가 시골로 이전을 하면서 처음으로 시골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지인들의 우려와는 정 반대로 생각보다 시골에 너무나 잘 적응을 한 것이다. 도시에서 37년을 살았고 시골에선 겨우 3년을 살았어도 ‘이제 나는 시골사람’이라 칭하며 시골생활에 푹 빠졌다. 시골에 살며 가끔 서울에 가면 반갑고 그리울 줄 알았는데, 낯설고 정신없고 소란스러운 환경에 다시 시골의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번에 감행한 서울에서의 한 달이 나에게는 약간의 도전이었다. 어쩌면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시골로 내려갈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인간은 모든 것을 직접 겪어보기 전에 섣부르게 판단을 하면 안 되나 보다. 호텔에서의 생활은 예상외로 너무너무 좋았다. 서울행 차를 타고 가면서도 나는 고민했다. 나는 왜 호텔로 들어가는가, 시골의 넓은 내 집에서는 창밖의 풍경도 아름답고 차 소리, 오토바이 소리 없이 조용하며 누구 하나 터치하는 사람 없이 세상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굳이 몇 평 남짓한 호텔방에 갇히려 하는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그간 내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를.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빨래를 하고, 개밥을 주고 개산책을 시키고, 사무실과 체육관을 왔다 갔다 하며 얼마나 의미 없는 시간을 많이 소비했는가. 집이라는 곳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 멍 때리고 가만있고 싶어도 손 가는 일도 많고, 누워서 넷플릭스도 보고 싶고, 동영상 편집도 하고 싶고. 그런데 호텔에 들어오자 그 모든 할 일들이 다 사라지고,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 까딱 할 필요 없이 노트북 부여잡고 글만 쓰면 되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게다가 호텔에서는 하루에 한 번 청소를 해 주었고, 아침마다 잘 차려진 조식을 먹을 수 있게 배려해 주었으며, 점심과 저녁마저도 호텔 직원들이 가는 지정식당으로 배정을 해 주었기 때문에 하루의 많은 시간을 모두 세이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왜 사람들이 호텔 호텔 하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평소보다 매일 몇 시간을 더 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또 한 번 놀랐던 점은 바로 옷 세 벌로 한 달을 버틸 수가 있었던 점이다. 외출복 세 벌, 실내복 한 벌, 속옷 세 세트면 한 달을 나는 것이 충분했다. 사실 중간에 친한 친구가 자신이 입지 않는 원피스 몇 벌을 가져다주긴 했다. 그래도 자동차를 놓고 갔더니 혹여나 필요할까 봐 바리바리 짊어지고 다니던 짐을 다 내려놓고 살게 되었다. 그래도 살아졌다. 예상치 못하게 맞이한 미니멀리즘 삶이었다. 매번 여행을 한다고 자동차 뒷트렁크를 가득 채워 가던 번거로움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나니 삶이 정말 심플해졌다. 시골에 살며 사무실 마당에 키우는 대형견들이 부비부비 한다고 매일 빨던 옷을 이틀에 한 번씩 빨게 되었고 호텔 식당과 라운지바를 이용하지 않으면 군것질도 거의 하지 않았다. 생활비로 지출하는 돈이 없었다.

 물론 한 달 동안 식당 밥만 먹기 아쉬워 맛집도 많이 찾아다녔다. 서울 사는 친구와 친동생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호텔에서는 시간이 아주 많았다. 아침, 저녁 일정한 시간에 글을 썼고 하루 8시간씩 회사 업무를 보았다. 잡고 있던 장편소설 한 권의 초고를 마감했다. 그에 만족하지 않고 초고를 마감한 바로 다음 날 다음 장편소설에 착수했다. 그랬더니 쓰고 있던 장편 소설의 1/2과, 새로운 장편소설 1/2를 완성하게 되었다. 책 한 권의 초고를 뚝딱 들고 나온 셈이다. 글을 쓰기로 작정한 이후 이렇게 짧은 시간 집중해서 많은 양을 써낸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서울은 역시 좋은 점이 많았다. 곧 떠난다고 생각하니 더 아쉬운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밤늦게 까지 불이 켜진 거리를 누비는 것을 좋아했던 20대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간 적도 여러 날이었다. 한 달을 도둑맞은 것처럼 빼앗겼다. 마지막 날이 되어 퇴실 직전까지 글을 쓰고 나왔다. 글을 붙잡고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정말 인생을 재미나게 살 수 있다.

 서울에 사는 동안 명동역 근처를 바삐 오가는 사람들을 호텔 창문으로 내려다보며 생각을 많이 했다. 인생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하루의 24시간 중, 잠은 겨우 8시간 밖에 자지 않는데, 남은 16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우선순위로 할 것인가 그 생각을 매일 하니 확실히 많은 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다. 최소한의 물건으로 최대한의 시간을 살았던 한 달이었다. 마당이 있는 시골 집도, 모든 인프라가 갖추어진 호텔도 모두 나름의 장점이 있다. 변화하며 사는 삶은 옳다. 그러니 아무것도 단정 짓지 말고 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겠다. 더 많은 여행을 하고 새로운 것들을 더 많이 접하며 아직 더 많은 경험을 해 보아야겠다. 그러니까, 다음번엔 또 어디로 가지?     




https://youtu.be/8l3Jw6ExQm4?si=EC2QyiH1qB0dmU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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