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한 달간 <글을 낳는 집>이라는 담양의 작가 레지던스에 머물게 되었다. 이곳의 숙소는 5명의 여성 작가들이 주택 한 채에 살며 거실과 주방을 공동으로 쓰는 곳이었다. 화장실은 총 3개였는데 짬이 낮은 내가 단독 화장실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가장 구석방을 자처해서 거의 짱 박혀 있었다. 그나마 쪽문이 있어서 거실을 거치지 않고서도 밖으로 나갈 수 있어서 편했다. 거실을 거쳐 대문 밖을 나갈 때마다 나의 움직임이 노출되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얼마만의 단체 생활인가. 그전에 머물렀던 원주의 레지던스 <토지문화관>에서도 화장실이 딸려 있는 원룸 하나를 배정받았고, 서울 명동에 위치한 <소설가의 방>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담양의 레지던스는 오기 전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정보가 많이 없었다. 만일 화장실을 눈치 보며 써야 하는 줄 알았다면 신청을 망설였을지도 모르겠다. 함께 화장실을 쓰는 작가님께 피해가 가지 않도록 나는 샤워할 때마다 화장실 청소를 했고 세면대나 변기에 뭐가 묻지는 않을까, 머리카락이 떨어지지 않을까 매번 신경을 써야 했다. 공동 주방과 거실 사용도 마찬가지였다. 마음 넓은 작가님들이 그러지 않으실 것 같지만 혹시 내 짧은 생각으로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불편을 드렸다면 뒤에서 흉을 보실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습관은 운동선수 시절 겪었던 숙소 생활에서 비롯되었다. 22살, 어렸던 나는 처음으로 선배들과 함께 방을 쓰게 되었는데 그때 배운 것이 많다. 선배들을 대하는 법, 알아서 눈치 챙기는 법과 같은 것 말이다. 그러니까 막내일 때는 청소며 빨래, 심부름과 허드렛일, 하다 못해 식당에 가서 음료수를 떠 오는 일까지 모조리 나의 담당이었다. 선배들에게 욕 처먹지 않기 위해 했던 그 모든 일들이 몸에 배어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선배들 앞에선 자동이 되었다. 사회생활은 운동할 적만큼 경직되어 있지 않았기에 알아서 척척하는 모습이 되려 예쁨을 받았고 나는 몸을 움직여 청소 한 번 더 하고 커피 한 번 더 타는 일이 노동력 대비 매우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비단 선배들과 함께 있을 때만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있을 때 직원들과 있을 때도 넋 놓고 앉아있는 대신 바지런 바지런 움직이는 편이다. 그렇게 했을 때 욕먹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꽤 영리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한다.
그 후로 십몇 년 동안 마주할 일이 없는 선배 작가님들과의 단체생활이었다. 운동을 할 적에도, 강사 생활을 할 때에도, 사업을 해도, 심지어 이번엔 글을 쓰러 나와서도. 우째 이렇게 만년 막내생활을 벗어나지 못한단 말인가. 후임이라는 것을 두어 본 예가 없다. 단체생활에서는 전화 통화도 조용조용해야 했고 음악도 크게 틀지 못했다. 원래 시끄러운 무언가를 틀어놓고 귀를 혹사시키는 편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이런 상황이 오니 뭔가를 크게 틀어놓고 싶어졌다. 속박된 생활을 벗어나고 싶어 하루에 한 번은 차를 타고 나갔는데 운전대만 잡으면 음악 소리를 최고로 높였다. 전에 없는 행동이었다. 아, 나의 이 청개구리 본능아......
레지던스에 들어간 지 5일째 되던 날이었나 보다. 3개의 방에 입소할 작가님들은 아직 입주 전이었고, 옆방에 살던 작가님은 하루 외박을 나가게 되었다. 레지던스의 원장님과, 외박을 나가는 옆방 작가님은 나를 엄청 걱정해 주셨다. 이렇게 큰 집에 나만 덩그러니 남는 것이 괜찮냐는 것이었다. 옆 방 작가님은 무슨 일 있으면 전화를 달라며 쪽지를 남기셨고, 원장님은 혹시 무서우면 옆 방에 와서 주무시겠다고 하셨다. 우리 엄마도 혼자 지내는 나를 전혀 걱정해 주지 않는데, 나는 작가님들의 감성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그리고 두 손을 크게 내저으며 말씀드렸다. 전혀 무서울 일 없다고.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집이 몽땅 빈 것을 확인하고 지드래곤 노래를 선곡해 최대치로 올려 들었다. 일부러 부엌에서 달그락거릴 때도, 샤워를 할 적에도 노래를 틀었다. 그리고 일부러 방문도 쾅쾅 닫아버렸고, 앞으로 없을 자유를 만끽했다. 속이 시원했다. 혼자 사는 것이 이렇게 편한 일이었던가.
20살 이후로 혼자 산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 방 한 칸짜리 집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집들을 거치며 혼자 지내는 습관에 매우 익숙하다. 현재 우리 집은 작지만 방이 3칸이나 된다. 그 방 3칸을 나 혼자 몽땅 다 쓴다.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렇기에 레지던스를 전전하며 글 쓰러 다니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의아해했다. 쪽방에 비해 궁궐 같은 집을 놔두고 뭐 하러 집 나가 고생을 하냐고. 하지만 또 이 떠남이 좋고 돌아옴이 좋아서 짐가방을 너 다섯 개씩 싸 짊어지고 일 년에 몇 번씩 집을 떠나 있는다. 떠남과 돌아옴은 일상을 리셋시키기에 정말 좋다. 집안 대청소를 하게 되고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하기도 좋고 가방 너 다섯 개에 들어갈 짐만 가지고서 간결하게 사는 삶을 배우게 해 준다.
아마도 작가님들은, 원장님은 오랜 시간 누군가와 함께 사셨을 것이다.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은 자식들도 역시 가족들과 사는 삶을 사는 것을 지켜보셨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염려되어 자꾸 물으시는 것이다. 혼자 사는 것이 무섭지 않냐고. 혼자 살아도 괜찮으냐고.
괜찮다마다. 몹시 편안하다. 무섭냐고? 하나도 안 무섭다. 특히 커다란 레지던스에 혼자 남겨졌을 때 말이다. 이게 약간 MBTI로 따지자면 T적인 성향일 수도 있는데 무섭지 않냐는 말을 들었을 때 첫 번째로 든 생각은, ‘과연 무엇이?’였다. 혹시 나쁜 놈들이 쳐들어올까 봐?(레지던스는 5명이 거주하는 주택 옆에 촌장님 내외가 기거하는 본채, 그 옆에 2명이 거주하는 주택까지 총 3채가 연결되어 있다.) 만일 장기밀매업을 하는 납치범이 올 거라면 홍대 클럽이나 강남 번화가에만 가면 혼자 사는 여자를 쉽게 찾을 수 있을 텐데 굳이 담양 레지던스까지 와서 잠복하고 있다가 내가 혼자 남겨질 때를 노릴까? 혼자 남을 시간이 있을지 어떻게 알고? 가성비가 너무나 떨어진다. 두 번째는, 왜? 귀신이라도 나올까 봐? 였다. 귀신 이야기를 하자면 최근 핫한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의 지평좌표계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고, 만일 레지던스에 혼자 남겨진 밤, 귀신 한 마리 정도가 나와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글감 하나를 공짜로 얻게 되는데 작가로서 마다할 이유가 없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가. 상상만 하던 귀신을 직접 마주한 무시무시한 공포를 글로 옮겨 담을 수 있으면 이득 아닌가. 또한, 가수가 녹음하다 귀신을 만나면 대박이 난다는 전설과 같이, 혹시 글을 쓰러 들어온 나 같은 사람이 귀신을 만나게 되면 책 한 권 대박 나는 것 아닐까? 만일 귀신을 마주한다면 나는 그를 붙잡고 당부할 것이다. ‘언니, 나 다음 작품 좀 잘 되게 도와줘요. 응? 제사라도 한 판 치러 드려?’ 그런데 카더라에 따르면 나같이 기 센 애는 귀신을 잘 만나지 못한다고 한다.
나는 천생 공상가라서 24시간 중 23시간을 재미난 이야기를 생각하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맨날 오만가지 상황을 가정하면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를 생각한다. 혼자 지내면 무섭지 않냐는 주변의 염려에 이렇게까지 생각을 뻗쳐가 본다.
하루 외박 후 돌아오신 작가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아휴, 무섭지 않았어?’하고 인사를 건네셨다. 만일 혼자 지내면 뭐가 무서우실 것 같냐고 여쭤 봤더니 집이 너무 커서 공간감이 무섭다고 한다. 거실에 갔다 창문을 닫고 나왔더니 뒤에 누군가 서 있을 것만 같고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 재빨리 방으로 들어가셨다고 했다. 나는 까르르 웃었다. 아. 역시 작가님이란, 이런 소녀 감성을 지녀야 하는 거구나 싶었다.
나오지도 않은 귀신대소동이 지나가고, 이번엔 나에게 혼자 살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냐는 질문을 받았다. 아마 그것에는 물리적인 것을 포함해, 혼자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것에 대한 삶을 선택해 보지 못한 언니들이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질문이었다. 작가들이 원래 모이면 이런저런 질문과 답을 많이 한다. 상대방의 대답이 내 작품에 나오는 어떤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에 성심껏 답을 해 주는 것도 예의라 여긴다. 나로 말하자면 혼자 사는 것은 정말 하나도 무섭지 않다. 30대가 되고 난 후로 혼자 살며, 내 뜻대로 선뜻 물건을 구매하는 것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게 된 것에 대한 자유에서 오는 장점이 무서움보다 더 크다.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긴다는 부담감 대신 나 한 몸만 잘 살면 되니까. 나는 물건을 오래 쓰기로 유명해서 12년 된 차를 끌고 있고, 11년 된 노트북을 쓰고 있으며, 첫 번째 스마트 폰도 6년을 썼고 지금 쓰는 휴대폰도 5년째다. 이러한 성향상 하나를 사더라도 가성비 보다는 가장 좋은 것을 사는 것이 유리한데, 뭔가를 살 적에 진짜 내가 갖고 싶은 것에 가격을 보고 고민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혼자 살아서 무서운 것이 아니라 혼자 살아서 오히려 무서운 것이 없어졌다.
그럼에도 정말 오랜만의 숙소 생활은 많은 영감을 주었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할 일이 거의 없는 자유인인 나에게 모종의 소속감이 들게 해 주었고 문학처럼 개인적인 활동 영역에 작가님들을 알고 지낼 기회가 거의 없다시피 한데, 레지던스를 꾸준히 다니면서 작가님들을 알게 되고 연락하게 되고, 마주치지 않더라도 ‘오, 거기 저도 갔었어요’ 하는 유대감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매력에 레지던스를 찾게 된다.
언젠가 내가 나이가 들면 혼자가 정말 적적할 때가 온다면, 저렴하게 나온 고시원 시설이 된 산속의 암자를 하나 얻으면 어떨까. 그리고 레지던스를 열어 젊은 작가님들이 오갈 수 있도록 서포트해야지. 밥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고 심심하거나 외로울 겨를이 없겠지? 내가 만든 요리를 먹는 사람들이 과연 먹어줄까? 그러려면 요리 실력부터 늘려야 하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혼자 사는 것이 정말 하나도 무섭지 않아 졌다.
https://youtu.be/myj572Xm8wo?si=_gyx6Bktzz63PN-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