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mi Lee Sep 22. 2024

가장 큰 고비는 좋지 않은 내 기분을 극복하는 일

 평화로운 화요일 오후, 체육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상무님이 오셔서 회사에 일이 생겼다며 사무실로 가 보라고 했다. 얘기를 좀 길게 해야 할 거란다. 그 순간 심장이 철컹 내려앉았다. 노견 뚱이가 죽었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심각하게 얘기할 리가 없는데.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큰 일들, 그중에서 내가 가장 많이 흔들리는 일들은 대체적으로 개들에게 일어난 일이었으므로.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다. 차를 몰고 회사로 들어가자 마당에서 뚱이가 누나 차를 발견하고 꼬리를 흔들며 뛰어나왔다. '어라?' 나머지 개들을 살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 마리 모두 멀쩡했다. 그제야 마음이 놓여 무슨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다. 과연 사람들이 겁을 주었던 문제는 감정을 배제하고 생각하니 내 손발을 조금만 더 부지런히 쓰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해결을 보기로 했다. 사업하면서 몸 힘든 게 하루 이틀이냐. 그냥 내가 일 좀 더 하면 되지. 그뿐이었다. 아직 사랑하는 강아지 다섯 마리가 멀쩡하고, 식구들 모두 무탈하고. 나머지는 그냥 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사업의 가장 큰 고비는 좋지 않은 내 기분을 극복하는 일이다. 이것 말고 다른 것은 다 두 번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진짜 어려운 일은 그 상황에 부닥친 나의 감정이다. 감정을 걷어내고 사건에 집중하면 일이 훨씬 쉬워진다. 사업을 하다 손해를 보더라도, 언짢은 말을 듣더라도, 다치더라도, 사고가 나더라도. 정작 무서운 건 그 상황이 아니라, 그로 인해 요동치는 내 마음이다. 아, 이걸 어쩌나. 큰일 났네. 우쉬, 망했어. 과격한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일한 지 오래되어 가니, 어떨 땐 육성으로 이런 말이 터져 나올 때도 있다. 아, 시바 Jot 됐다.     


 어릴 적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일 자체보다는 그 일로 인해 엄마가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이 가장 무서웠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니 더 이상 엄마는 나의 일에 관여하지 않게 되었고, 대신 내 마음속의 엄마 같은 존재가 불쑥 튀어나와 '아이고, 어떡해' 하고 곡소리를 내곤 한다. 나는 그 마음을 짐짓 못 본 척 무시한다. 그리고 또 다른 나를 끌어내어 이렇게 말한다. '다음에 벌면 되지, 미친놈 지는 잘 났나, 다쳤다고? 안 죽었으면 됐어. 큰 사고가 아니라 다행이다.' 대개는 며칠이 지나면 잊히는 일들이고 죽지 않은 이상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문다. 며칠이 지나면 요동치던 감정도 좀 잦아들기 마련이다. 그러니 내가 죽지만 않는다면 그 힘 빠지는 기분의 시간을 최대한 축소시키는 것이 살 시간을 버는 방법인 것이다.   

  

 우리 사업은 잘 가고 있다. 바다 한가운데서 뒤집어지지 않았으니 살아남은 셈이다. 그런데 인생사가 그렇듯 이 사업체도 크고 작은 일들에 흔들리며 크고 있다. 만일 이런 일상이 힘들게 느껴졌다면 사업을 못 할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안전하고 평온하게 사는 것보다 이리저리 부딪치며 가는 것이 재미나다.

 그러니까 나까지 함께 흔들리면 안 된다. 한낱 감정 때문에 큰 일을 그르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산다. 그렇게 살다 보니 사는 것이 점점 무던해진다. 나도 한 때는 사소한 일에 까르르 웃고 타인의 의미 없는 한 마디에 상처받고 수줍어하던 한들한들한 소녀였단 말이다. 그런데 세월이 나를 이렇게 나를 담금질하여 무뎌지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진짜 높은 곳을 찍어본 운동선수들마저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가장 중요한 신체능력보다 더 필요한 덕목은 다이아몬드처럼 강한 멘탈이라고. 저 높은 어딘가 서 있는 사람은 냉혈한처럼 이성적으로 사고한다고. 만일 그렇다면 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살면서 만나는 지지부진한 상황 앞에서 까무룩 해진 적이 있다. 운동을 하며 국가대표가 되기 바로 직전에, 희망 없이 엄마 일을 도우며 젊은 사람이 이렇게 살아도 되나 생각할 적에 그랬고, 사업을 하며 기본급도 나오지 않던 시절 거실에 배를 깔고 누워 손님들에게 손 편지를 쓰며 나는 언제 바빠보나 고민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나는 엄청나게 바빠지며, 인생을 한탄하며 심심해하던 그 시간이야말로 유일하게 여유를 즐길 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기분이 조금 좋지 않았을 뿐, 걱정이 좀 많았을 뿐, 그런 마음만 극복을 하면 된다는 것을 말이다.


 버티고 즐기면 다음 단계로 곧 넘어가는데 그 시간을 버티면서 머리로는 한 번 해 봤다고 아는데, 자꾸만 마음이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질 때가 있다. 사업을 이렇게 오래 했는데 왜 아직도 특별한 한 방이 없는 거지. 글을 이만큼 열심히 썼는데 왜 아무것도 손에 쥔 게 없는 것 같지. 그리고 더 이상 20대와 같이 어리지 않아서 이런 의문도 든다. 과연 내 인생의 정점은 어디까지인가. 나는 이 사업을 과연 어디까지 키울 수 있을까. 고만고만한 좃소기업으로 끝나는 걸까.     


 어떻게 다음 단계를 나가야 하나, 과연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몇 번 겪으니 분명하게 보인다. 모든 상황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겪으며 지나가는 것이고, 버티고 즐기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고. 나를 점검해 보며 내 노력과 내가 가는 방향은 옳다고,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토닥여줘 본다. 위대한 성취도 처음에는 한낱 목표였다고. 내가 컨트롤해야 할 사람은 단 한 사람, 나 자신의 기분이고, 기분 좋게 한 주를 시작하며 열심히 일을 해가면, 노력은 정직해서 그 작은 하나하나를 모아 결실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어쩌면 내가 가질 수 있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손에 쥔 후에도 인간의 욕심이란 끝을 몰라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굶주린 기분으로 갈지 모르지만 그래도 현재 잘하고 있고 잘 가고 있다면, 그대로 쭉 잘 가도 되지 않을까.


 좋지 않은 내 기분을 극복해 내려 마음을 글로 정리해 본다. 됐다. 글과 함께 오늘의 나빴던 기분도 이미 날아갔다. 오늘 밤엔 청양고추 잔뜩 넣은 떡볶이를 먹겠다. 군침이 돈다.     





뚱이는 길동이의 밥그릇이나 탐내고...... 너희가 건강하면 됐다!


이전 05화 어차피 꿈의 직업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