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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미현 May 14. 2019

[열여덟 여행]08. 일본에서 춘천 닭갈비

이틀째에 향수병은 없는데

그러나 그것은 실수였다. 밤에 돈키호테 쇼핑을 가지 않으려고 나는 그 드럭스토어에서 필요한 약을 장바구니에 담아서 빨리 계산을 하고 나올 계획이었다. 계획이란 그렇게 원활하게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될 리 만무하다. 여권까지 들고 줄을 서서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약속시간이 가까이 오고 있었고, 앞에 계산하고 있는 중국 관광객은 가서 약장수를 할 참인지 수 백가지 상품을 계산 중이었다. 나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장바구니채 던지면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어쩔 수 없이 밤에는 혼돈의 ‘돈키호테’를 가야 한다.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혀왔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대표님과 헤어진 후 두 시간 만에 만났는데 대표님과 일행은‘라면 스테이션’에 가서 ‘이치렌 라멘’을 드셨다고 했다. 다행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우리(C와 나)는 먹고 싶은 걸 먹지 않았어도 괜찮다. 캐널시티 내에 치즈케이크를 먹지 않았어도, 맛있는 디저트 카페를 지나쳤어도 괜찮다. 음식에 대해 미련이 많은 대표님과 남자 직원들은 라멘이나 우동으로 만족했다면 괜찮다. 


그러나 정작 저녁상을 마주하고 나서 ‘라멘을 먹을걸, 아까 치즈케이크를 먹었어야 했어. 왜 디저트를 지나친 걸까?’라는 후회의 도미노가 시작되었다. 가이드는 대표님의 불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캐널시티 앞에서 우리를 데려간 곳은 겉보기에는 맛집처럼 보이며 근사했는데 막상 지하로 내려가니 단체손님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미 다른 패키지 손님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가게의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고, 샤부샤부 같은걸 먹고 있었다. 그들을 지나 안내를 받은 곳은 또 이상하게 차별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인덕션 위에 닭갈비와 치즈는 낯설다


이럴 때는 통일감을 주어도 괜찮을 텐데 말이다. 다른 게 차려져 있었는데, 자꾸 가이드가 오후 내내‘치즈 퐁듀’라고 말해서 나는 사실 믿지도 않았다. 이미 그 전날 ‘복어요리’로 학습을 했으니 기대를 1도 하지 않았다. 나는 데이터가 많이 필요한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 한 번의 경험으로 앞을 내다볼 수 있다. 치즈가 나오겠거니 그러나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치즈 퐁듀’는 아니겠거니 내려놓았다. 그러나 역시나 예견하지 못한 것은 ‘녹아있는 치즈’에 무엇을 찍어먹는 것인가. 다시 생각해도 그 음식은 괴음식이다.


인덕션에 불판이 올려져 있었는데 닭갈비 형태였고, 고기는 닭이 맞았다. 근데 그 앞에는 라면사리가 나와 있었으며 그걸 넣고 익히고는 치즈에 찍어먹으라는 네에?? 이건 치즈 닭갈비 아닌가요?

그러나 맛이 있으면 그것도 용서가 될법한데 춘천 닭갈비처럼 매콤한 것도 아니고, 볶음밥을 해 먹을 수 있을 만큼 양념이 찰지고 쫀쫀하지도 않았으며 그 중간에도 미치지 못하는 맛으로 젓가락을 어디에 둘 곳은 없었으나 역시 ‘시장이 반찬이다’라는 속담이 격하게 떠오르며 먹게 되었다. 원래는 '모츠나베'라는 후쿠오카 대표 저녁이 나와주었어야 하는데 이 정체불명의 것으로 나는 나중에 블랙컨슈머로 등극하게 된다. 검은 오오라를 뿜으며. 


버스에 다시 탔다. 원래는 돈키호테에 쇼핑할 사람을 내려다 주고 호텔로 가는 이들을 내려다 주기로 했는데, 야박한 건지 유도리가 없는 건지 기사 아저씨는 안된다고 못을 박았고. 결국 호텔에 돌아갔다가 혼돈의 대명사 ‘돈키호테’를 걸어가기로 한다. 앞사람을 따라가면서 혼자서 돌아올 것을 생각했어야 하는데 줄레 줄레 따라가기만 한다. 혼자 여행과 여럿 여행의 차이점. 


후쿠오카의 밤은 역 주변을 빼고는 매우 한적했다. 이미 연말 분위기가 나고 있어서 그런지 관광객도 우리뿐인 것처럼 대로변에는 사람이 없었고, '돈키호테' 쪽으로 커브를 트는 순간 젊은이들은 모두 그 길 위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돈키호테 | 일본의 대표 쇼핑상점. 우리나라에서 벤치마킹한 '삐에로쇼핑'이 있지만,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로 세상 모든 물건들이 모여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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