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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미 Nov 05. 2019

아이만 잘 키우면 될 줄 알았는데,
나도 키워야 하더라

아이에게 화가 날 때 기억해야 할 것-부모 편

아이만 잘 키우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 걸
아이를 키우면서 깨닫게 된다.



11살 첫째 소풍날.
엄마가 아침에 김밥 속재료를 준비하면 아빠가 김밥을 말기로 했다. 맞벌이 부부로 바쁜 아침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자 업무분장을 한 것이다.

당일 아침.
엄마가 일어나서 김밥 속재료 만들고 있는데 아빠는 계속 자고 있다.
남편한테 일어나서 얼른 하라고 소리쳐서 겨우 깨웠는데, 일어나서는 씻으러 가버린다.
큰애는 밥 달라고 식탁에 앉아 있기에, 엄마는 얼른 도시락 싸갈 것을 챙기고 첫째 먹을 것만 먼저 만들어서 내준다. 그리고 부글거리는 가슴을 안고 7살 둘째한테 가서 어서 일어나라고 소리친다.
이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덧붙인다.
“넌 아빠 닮아서 이렇게 낭창해서 어떡해. 당장 일어나!”
이제 남편이 씻고 나와서 마저 김밥 만들기를 한다. 엄마는 씻으러 가면서 식탁 위에 만들어 놓은 김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없어 못 먹으니 짜증이 난다.
남편에게 또 한마디를 하게 된다.
“둘째가 당신 닮아서 낭창하다고. 어휴~”

큰아이가 밥 먹고 학교 갈 준비 다 하고 TV 만화 ‘도라에몽’ 보고 있는데(이 집은 할 일 다 하면 만화를 볼 수 있는 규칙이 있다. 아이들이 만화를 보기 위해 빨리빨리 알아서 움직이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아빠가 큰아이한테 소리친다.
“TV 당장 꺼. 네가 TV 보고 있으니 동생이 밥 똑바로 안 먹잖아!!”
첫째는 동생이 밥을 제대로 안 먹는 건 자기 책임이 아니고, 자신은 할 일을 다 하고 정당하게 TV를 시청하고 있는데 아빠가 혼을 내니 억울한 마음이 가득하다.
하지만 언성을 높이며 말하는 아빠가 무서워 순순히 TV를 껐다.

자, 모든 게 마무리되고 이제 다들 집을 나설 때.
이번에는 첫째가 현관 앞에 서서 둘째한테 빨리 나오라고 소리친다.
엄마가 “너 왜 동생한테 소리쳐?”라고 하니 “쟤가 꾸물대서 늦어지잖아”라고 한다.
엄마는 정신 사나워서 “그냥 너 혼자 먼저 내려가!”라고 소리치고 큰 아이가 엘리베이터를 먼저 타고 내려가면서 상황이 일단락 지어진다.




평범한 4인 가족의 어느 아침 풍경이다.

엄마가 아빠에게 짜증을 내고, 아빠가 첫째에게, 첫째는 둘째에게...

소리치며 한 번 발생한 화는 없어지지 않고 상대를 옮겨가며 돌고 있다.


감정은 밖으로 드러나 표현되려는 성질이 있다.

특히 화는 불편한 감정으로써 밖으로 표출되고 싶어 한다. 불편한 감정을 빨리 밖으로 내 보내 편안해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짜증과 화가 발생되면 우리는 우리 주변의 나약한 대상에게 화의 에너지를 쉽게 분출하게 되고 그 에너지를 넘겨받은 대상은 자신보다 더 나약한 상대에게 그 에너지를 다시 전가시킨다.

이렇듯 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특성이 있다. 화는 위에서 아래로 전염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빠가 회사에서 힘든 일을 겪고 집에 들어온다며 그 영향이 가정 내에 미칠 수밖에 없다. 아이가 학교에서 많이 힘든 일을 겪고 집에 들어온다면 그 분위기가 집안 공기에 뒤섞여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심리적 분위기와 정서는 가족 관계에서 교류되며 영향을 미친다.


이때, 아이의 축 쳐진 분위기를 감지하고 누군가는 “무슨 일이야? 기운이 없어 보이네.”라고 아이를 위로하려는 말을 건넬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사내자식이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얼굴이 그 모양이야!”라고 보기 싫다며 타박을 줄 수도 있다.


우리가 힘들 때 힘든 것을 편안하게 내색하고 지지와 격려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다 좋을까?

우리는 감정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될 수 있다. 서로 연결되어 끈끈해진다.



엄마와 아빠, 부모는 한 가정의 정서 관리자다.

부모의 정서, 분위기가 밝으면 아이에게 가장 좋은 성장 환경이 된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는 학습을 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욕구 중 하나가 바로 관계의 욕구인데,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갈등을 건강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그쪽으로 주의가 쏠리게 된다. 친구와 다투고 풀지 못한 감정이 남아 있다면 수업시간에 이따금 친구와의 문제로 내 마음이 복잡해져 학습에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주의란 한정된 에너지 자원이기 때문에 친구 문제에 80%의 마음을 쏟고 있다면 학습에는 20%밖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정서적인 부분이 안정적으로 인지적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작용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고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야 학업성취도 높아지고 창의력도 높아진다.



수도권의 한 대학에서 창의력이 높은 아이를 대상으로 그 아이들의 공통점을 분석한 적이 있다. 창의력이 높은 아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정서적 안정’이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이 대학에서는 명상이나 감정조절과 관련된 여러 비교과 프로그램들을 개설하기도 했다.
이처럼 감정은 아이들의 학습과 창의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부모들은 아이와의 관계에서 갈등과 문제를 하소연하며 화가 난다고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닌 경우가 많다. 잘 살펴보면 결과론적으로 마지막에 화를 내는 것은 아이가 대상이 되고 그 화를 끌어낸 것이 마지막 아이가 한 행동에 자극을 받아서일 경우가 더 많다. 그전에 쌓이고 묵혀둔 감정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을 때 아이의 행동 하나가 시발점이 되어 부모 안의 분노를 작동시키는 스위치를 켜게 될 뿐이다.



특히 부부관계가 부모-자녀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서로 간에 노력이 필요한 관계가 바로 부부다. 부부가 냉전 상태이면 그 기운은 가족 전체에 퍼진다. 아무리 연기력이 좋다 해도 차가운 분위기까지 숨길수가 없다.


아이를 낳고 나서 부부관계의 위기-신세계-를 경험하는 커플들이 많다.

몸과 정신의 피로가 상당해지면서 신경이 예민해지고 서로에 대한 배려보다는 알아서 잘해주기를 원하고, 조금만 거슬리는 상황이 생기면 큰 자극이 되어 감정싸움이 되곤 한다. 아이에게 에너지가 집중되다 보니 배우자를 품을 마음의 여력을 내기가 힘들어진다. 아이가 어릴수록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탓하는 갈등 상황이 빈번히 발생했다.


나는 아이가 어릴 때 주말부부로 지냈던 터라 남편이  매주 금요일 밤 9시 무렵 집에 도착하곤 했다. 저녁도 먹지 않은 채 퇴근하자마자 달려온 것이 저녁 9시다. 그 무렵이면 평상시 나는 아이를 재우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었다. 당시 아이가 작은 소리에도 반응해서 깰까 봐 노심초사하며 아이를 재우곤 했던 나는 남편의 현관문 여는 소리, 또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그릇과 숟가락을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모두 거슬렸다. 힘들게 집으로 온 남편에게 좀 조용히 하라고 짜증을 내며 예민하게 반응했다. 아이가 깨면 남편에게 보라고 하면 그만일 것을, 한참 지나고 나서야 힘들게 집에 온 남편을 좀 더 따뜻하게 대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지만 당시에 나는 그렇게밖에 반응하지 못했다.


남편에게 너무 미안하고 정말 달라지고 싶은데도 그러지 못하는 나를 바라보며 나는 큰 위기감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남편의 말과 행동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것처럼, 아이가 크면 아이에게 내가 그대로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변화에 대한 절실함이 생겼다.


지금은 아이가 어려서 건강하게 크는 것 말고는 별다른 기대가 없기에 큰 갈등이 없지만, 아이가 클수록 새로운 기대들이 생길 테고 특히 학습이 시작되면 부모-자녀관계에서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되는 만큼 ‘남편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그대로 아이에게 옮겨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남편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대한 근본 원인을 찾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존재인 가족에게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함부로 대하는 태도를 점검하고 달라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남편에 대한 나의 반응은 곧 아이에 대한 나의 반응으로 그대로 이어지거나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가정의 정서와 분위기는 가정 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가장 취약한 아이에게 어쩌면 그 영향이 가장 클 수밖에 없기에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가깝고 친밀한 관계에서 늘 미안하면서도 반복적으로 화를 내는 패턴은 결국 상대가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상황을 바라보고 사람을 대하는 익숙한 방식이 재현되는 것이었다.

마음으로는 이해하지만 행동으로 배어 나오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가깝고 친밀한 사이일수록 우리는 상대에게 나처럼 생각하고 내가 가진 기대대로 행동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래서 상대를 고치려고 애쓰게 된다. 상대의 가치체계를 인정하거나 이해하려는 시도보다는 나의 가치체계로 바꾸기를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또 다른 나,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나를 만나게 된다. 나의 부족하고 나약한 면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어려운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아이만 잘 키우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 걸 아이를 키우면서 깨닫게 된다. 관계에 미성숙한 혹은 미해결 된 과제를 가진 나 스스로 인정하고 다독이는 숱한 시간이 필요하다.




글쓴이: <오늘도 화내고 말았습니다.> 저자 박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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