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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d Silence Jul 11. 2023

대학가면 뭐든 다 해라

어릴 때 본 드라마 중에 기억에 남는 드라마라고 한다면 '불멸의 이순신'이 떠오른다. 김명민 배우가 주연을 해서 조선 최고의 장군으로 뽑히는 이순신 장군을 연기하여 매우 히트를 쳤었다. 특히나 조선의 군함과 일본의 군함이 전투하는 장면들이 꽤나 잘 표현되었었던 것 같다. 조연들의 연기도 참 잘 어우러져서, 지금도 동영상 사이트에 당시 애드립이 업로드되어 돌아다니면 조회수가 높은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이유는, 그 드라마가 시험기간과 겹쳤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공부나 시험이 굉장히 중요한 분위기였고, 그런 드라마 따위보다 내 시험점수가 훨씬 중요했다. 그래서 드라마도 항상 시작만 보고 들어가거나 아예 관심없는 척 안보는 연습을 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드라마 중간에 공부하러 들어가거나, 아예 안보고 방에 들어가는 나를 보고 엄마가 칭찬을 해서 그게 좋은 건 줄 알았고, 그런 내 모습이 되게 어른 스럽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된 이후, 넷플릭스가 나온 직후에는 드라마 정주행이 습관화 된 것은 아이러니 하다. 진짜로 어른이 되었는데, 그 당시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행동은 그저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대학 졸업 후, 첫 출근 직전에는 다시는 없을 이 시간,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장기여행,번개여행과 드라마 정주행을 즐겼다. 어린 내가 보면 기가 찰 노릇이지만, 그때는 공부가 인생의 전부였고, 20대 후반이 되면 공부의 템포가 한 숨 쉬어가는 시기가 왔었다고 생각한다.


첫 직장을 다니면서 일을 하고, 많은 고민 끝에 이직도 하고, 지금은 이직하고 나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경제 성장률은 나의 학창시절보다 많이 낮아졌고, 그 상황에서도 나의 월급은 성장해야했다. 5년후, 10년후를 생각하면, 이 월급이 적어도 2배,3배가 되지 않으면 나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았다. 월급이 오르지 않으면 다른 부업을 생각해봐야 하는데, 적당한 동기없이 움직이지 않는 나는 참으로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OTT 구독을 모두 끊은 상황이다. OTT를 돌아다니면서 무엇을 볼지 고르다가, 추천작품을 말해주는 인플루언서를 찾아다니다가, 몰아보기로 잠깐 맛을 봤다가, 이리저리 헤매는 내 모습에 회의감이 들었더랬다. 그래서 잠깐 구독을 중단하자 라고 생각하고 중단했는데, 지금까지 재구독은 하지 않은 상황이다. 간간히 생각나는 영화같은 것들이 있을 땐 조금 아쉽지만, 그때마다 그냥 브런치에 들어와서 글 몇 개 읽는 것이 더 괜찮다고 느껴졌다.


어렸을 땐,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고 살으라는 말을 믿었다. 그러나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인생은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무한정으로 허락하지 않는다. 시간이든, 돈이든, 심적여유든, 무엇이든 나의 게으름은 지속될 수 없다. 나이가 들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져야 하고, 도와주는 사람은 적어지며, 끊임 없이 달려야 하는 압박이 느껴진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에 대해 미련이 없어지는 것도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나 해야하나. 차라리 커서도 잘 못 볼테니, 지금부터 보지 말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어린 아이에게 너무 가혹했을까.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할 수 있는 그 시기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일까. 여전히 나는 그때 보지못한 드라마의 한 장면이 궁금하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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