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게 젤 좋아
‘감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영화감독이다. 영화감독은 영화 제작을 감독하는 사람으로, 영화를 제작할 때 연기, 촬영, 녹음, 편집 등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총책임자라고 한다. 영화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아무래도 감독과 주연 배우를 가장 많이 언급하게 되는 것 같다. 주연 배우가 연기라는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면, 감독은 연기뿐 아니라 촬영과 녹음 등 전 분야를 살펴야 하는 제너럴리스트가 아닐까 싶다.
내 인생의 모든 학교를 졸업하고 막 취업 활동을 시작할 때였다. 한 면접장에서 내 이력서와 자기소개를 보던 누군가가 쉽게 뱉은 말 때문에 괜히 더 위축되었던 것 같다. 당신은 제너럴리스트는 되어도 스페셜리스트는 되지 못한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이제 막 졸업하고 첫 직장을 구하는 사회 초년생에게 딱히 이력이라 할 것도 없을뿐더러, 어떤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어 있을 리 만무하고, 앞으로 될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판단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 어른도 사실은 그 두 가지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야기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이후로 어떤 일을 하게 되든 스페셜리스트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지금까지 그 무엇도 되지 못했지만.
영화감독은 영화 제작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제너럴리스트라고 할 수 있겠지만, ‘영화’라는 더 큰 틀에서 보자면 감독 역시 그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제너럴리스트면서 동시에 스페셜리스트가 아닐까.
일반적인 의미의 감독이란 ‘일이나 사람 따위가 잘못되지 아니하도록 살피어 단속하거나 또는 일의 전체를 지휘하는 행위’라고 한다. 이제껏 나는 내 삶의 감독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이 잘못되지 않도록 살피는 것도 감독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는 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제대로 되지 않은 적도 많지만, 그래도 큰 탈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잘 살아왔으니.
지금 나는 또 외부의 요인에 의해 새로운 진로를 고민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약 5년째 다니는 직장이 갑작스럽게 문을 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표님이 개인 사정으로 이번 달 말로 사무실을 정리하기로 했다. 적지 않은 나이, 이제 젊다고 하기도 살짝 애매해진 오늘까지 어떤 전문 지식이나 기술도 없이, 명확하게 하고 싶은 일도 찾지 못하고 그때그때 환경과 상황에 떠밀리듯 살아왔기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또 무엇을 할지도 아직 모르겠다.
필립 글래스는 자서전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은 곧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기회이기도 하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일단 딱 한 달만 퇴직금 까먹으면서 탱자탱자 놀고 나서 다시 생각해 봐도 될까. 작년에는 휴가도 못 갔단 말이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