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행의 기록 #3
아침 일찍 기요스미 정원 가기 전에 근처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려고 카페를 찾았다. 우연히 발견한 이키 에스프레소 도쿄.
매장 앞에 사람들이 벌써 줄을 서 있어서 흠칫했는데, 잠깐 기다리면 직원이 나와 줄줄이 데리고 들어가서 직접 자리까지 안내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앉은자리에서 큐알 코드로 주문하고 결제까지 되니 편함!
따뜻한 롱블랙 한 잔과 파니니로 든든하게 배 채우고 정원으로 이동.
오리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잉어와 자라들이 맞짱 뜨고 있는 평화로운 기요스미정원. 도쿄에 이렇게 조용한 곳이 있었나 싶다.
어쩐지 우리 동네 정릉과 창경궁 연못이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다들 여행 가면 시장 구경하는 게 그렇게 재밌다는데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외국인이 바글바글한 츠키지 어시장 한 바퀴 돌았지만, 해산물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금방 나와서 우동 먹으러 감.
웬 말차라떼 가게에 줄을 엄청 서 있길래 밥 먹고 한 잔 사 먹을까 했더니 일찍 마감해서 결국 못 가봤다. ㅠ
시장 입구 식기 판매점에 진열되어 있는 귀여운 부엉이 모양 술잔과, 인스타그램에서 본 교토의 한 절에 있던 돼지 모양 모기향 걸이 만이 내 눈길을 끌었다.
구글 리뷰가 너무 극단적으로 갈려서 잠시 고민했지만 일단 찾아가 본 글릿치 커피 긴자. 한 팀 정도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그 뒤에 줄을 섰다.
곧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친절하기만 하고만!
에스프레소보다는 강력하게 추천한다는 드립 커피를 골랐다. 다음은 원두를 고를 차례.
아무래도 게이샤를 위주로 하는 곳이라 가격대는 좀 있는 편이다. 대신 추가 주문 시에는 200엔만 더 내면 된다고.
냅다 가장 비싼 파나마 게이샤를 찍었더니 어쩐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다소 말리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살짝 절충해서 에티오피아 게이샤(허니 프로세싱)로 최종 선택.
스페셜티 커피에서도 가끔 느껴지는 눈이 찡긋해질 정도의 과한 신 맛이나 거슬리는 쓴 맛이 전혀 없다. 식을수록 과일스러운 풍성한 단 맛의 여운이 길다.
다른 카페보다 가격이 두 배 이상 비싸긴 하지만 그만큼 값어치를 한다. 왜 그렇게들 게이샤 게이샤 하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지인의 댓글을 통해 스누피 뮤지엄 도쿄의 존재를 알게 되자마자 바로 일정에 추가하고 온라인으로 예약을 했다. 한데 당일 아침 쓰쿠바 익스프레스 대폭 지연으로 완전 패닉! 우왕좌왕하다 택시까지 잡아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예약한 시간이 지나도 당일 안에만 가면 되는 것이었다. 엄청난 멍청비용 지출. ㅠ
어쨌든 행복해졌으니 되었다... 전시 규모는 제주도 스누피 가든보다 작은 것 같은데 샵이 개미지옥이다. 광란의 쇼핑 후 피너츠 카페에서 식사로 마무리. 밥도 맛있다.
이것만으로도 다 이룬 하루!
스누피 뮤지엄에서 나왔더니 숀더쉽을 테마로 한 샵과 카페가 또 있었다.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시선 강탈. ㅠ
위험한 지역이다.
여행의 중간쯤, 빨랫거리도 제법 쌓여 코인 세탁기용 동전도 만들 겸 숙소 근처에서 가벼운 아침 식사로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1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옛날 다방 분위기의 카페. 모닝 세트를 시켰더니 쟁반 하나에 토스트와 샐러드, 삶은 달걀까지 아기자기하게 차린 한 상이 나왔다.
아직도 실내 흡연이 가능한 전형적인 일본 동네 카페라 살짝 걱정했는데, 담배 피우는 손님도 별로 없고 와이파이도 잘 되고 생각보다 괜찮다.
참, 토스트가 진짜 맛있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야들야들한 따뜻한 토스트~
아 먹고 싶다... ㅠ
요전날 왔다가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했던 우동집 긴자 사토요스케. 평일 오후겠다 비도 오고 거리도 한산하고 구글맵에도 평소보다 덜 혼잡하다고 떠서 갔는데 그래도 한두 팀 정도 기다리고 있었다.
20분 정도 기다려서 자리를 안내받고 따뜻한 덴뿌라 우동 주문. 일반적인 우동보다 면발이 얇고, 국물이 굉장히 시원하고 깊은 맛이다. 국물 떠먹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아~ 하고 속 풀리는 소리가 자꾸 나옴. 술도 안 마셨는데...
덴뿌라에 오징어가 없는 것이 조금 아쉽다.
밥 먹고 숯불로 로스팅한 커피를 파는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제법 예스러운 고즈넉한 분위기.
원두를 꺼낼 때마다 고소한 냄새가 난다. 스트롱 블렌드로 주문. 그렇다고 너무 진하거나 쓴 건 아니고, 반쯤 남았을 때 설탕 타서 마시면 뭔가 자양강장제 같기도 하고 좋다. 이렇게 오늘도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