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행의 기록 #5
신궁 외원 은행나무길에 있는 카페에서 늦은 아침 식사. 11월이면 노란 은행잎이 절정이라 인산인해라고 한다. 단풍철은 아직 멀었다.
제법 야외에서 식사하기 좋은 날씨가 되었다. 활짝 열린 통유리문 옆 자리로 안내받고 스페셜 브렉퍼스트와 커피를 주문했다. 에그인헬 스타일의 뜨끈한 수프와 빵. 여유롭고 한가로운 식사를 즐겼다.
신용카드 제휴 서비스 알차게 이용하려고 국립신미술관 방문. 기획전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Keiichi Tanaami라는 작가의 개인전을 하고 있었다. 사진으로 볼 땐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닌데, 실제로 보면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만든 텍스쳐 등 굉장한 입체감이 느껴져 생각한 것과 많이 다르다. 정말 팝 아트의 극단으로 가는 것 같다고 할까.
중간에 플레이보이 일본판 작업 중 DJ의 하코네 연설 사진이 있어 오잉? 했다는...
발걸음을 옮겨 요요기 공원에서 잠깐 산책을 했다. 어디선가 팬플룻 음악 소리가 들려 공원 스피커로 틀어놨나 했더니, 아저씨 한 분이 숲 한가운데서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한가로이 쉬고 있는 까마귀도 정말 많다. 1년 동안 볼 까마귀 다 보고 온 것 같음.
점심은 샌드위치로 해결. 약간 성수동 느낌 나는 골목으로 카멜백 샌드위치 & 에스프레소를 찾아갔다.
한국인 관광객들 사이에 최근 인기 있는 곳인가 보다. 특히 젊은 여성이 많다.
메뉴판 제일 위에 있는 프로슈토와 이름 모를 이파리가 들어간 샌드위치 주문. 바게트 빵이 부드럽고 버터 같은 고소한 맛과 프로슈토의 짭짤함, 루꼴라 맛이 나는 이파리가 잘 어우러진다.
저녁은 역시 편의점 도시락으로.
무료입장이라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가 본 도쿄도청 전망대. 남측과 북측이 있는데 나는 남측으로.
간단한 소지품 검사가 있는데 그냥 가방 열어서 한번 쓱 보여주면 된다. 별 기대 없이 갔는데 생각보다 매우 잘 되어 있다. 시부야 스카이나 도쿄 시티뷰 등 비싼 입장료 내고 가는 전망대 못지않음. 야요이 스타일로 커스터마이징 된 피아노도 실제로 연주된다.
굳이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흉측한 폐건물로 남은 한강 다리 전망대나 700억 삽질한 수상 버스 뉴스를 들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 시장님... 좀 배워라...
하라주쿠역 쪽으로 가니 역시 엄청난 인파가 몰린다. 일요일이기도 하고.
뒷골목을 배회하다 우연히 발견한 조용한 카페 닷컴 스페이스. 한 블록 차이로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연남동 골목에 있는 세련된 분위기의 반지하 카페에 온 듯. 볼빨간사춘기나 헤이즈 같은 잔잔한 한국 노래가 많이 나와 여기가 진짜 도쿄인지 서울인지 싶다. 와이파이도 잘 되고.
푸어오버로 주문하면 나오는 두껍고 깊은 자기 재질의 잔이 커피 향을 가두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식을수록 달달한 산미가 슬쩍 올라온다.
직원들도 친절하고 드립 레시피도 공유해 줘서 좋다.
트렌디한 동네라는 시모키타자와로 가는 길, 비 예보가 없어 우산을 놓고 나왔는데 금방 그칠 것 같던 비가 점점 굵어진다. 핫도그 가게가 보여 일단 들어왔는데 제법 힙한 분위기.
핫도그와 믹스베리 음료를 시켰다. 빵이 굉장히 맛있었는데 정작 핫도그 사진이 없네;;
히가시키타자와 역에서 내려 걸어오는 동안 (중간에 핫도그집 경유) 사람이 너무 없어서 긴가민가 했는데, 핫플이 맞긴 맞는 것 같은 시모키타자와. 빈티지 샵도 많고 레코드 샵도 있고 헌책방도 있고 뭔가 야외 행사도 준비 중이고 장발의 청년도 많은 홍대나 왕년의 경리단길스러운 분위기다.
알고 보니 시모키타자와역은 엄청나게 붐비는 것이었다.
흐린 날의 레인보우 브리지는 그냥 다리였다. 어쩐지 걸어서 건너는데 길긴 길구나.
여기도 까마귀가 많다. 다리 중간에 앉아 놀던 애들이랑 눈 마주침. 삐죽삐죽한 머리털이 보일 정도로 진짜 가까이서 부리로 난간을 툭툭 치는데 좀 무섭다;
사실상 마지막 날인 이 날 하루는 거의 오다이바에서 보냈다. 자유의 여신상 한 번 봐주고 아쿠아시티로 이동.
휴족시간이나 있으면 사려고 별 기대 없이 들어간 빅카메라에서 스누피 젓가락 득템! 제법 디자인이 견고하다.
1층 푸드코트에서 교자세트 먹고 다시 구경. 중식 스타일의 볶음밥이 의외로 굉장히 맛있었다.
온천욕 하는 카피바라가 제법 귀여움.
플라잉타이거에서는 산 것도 없는데 사진은 왜 이렇게 많이 찍은 건지. 독특한 디자인이 많기는 하다.
광활한 오다이바를 하염없이 걷다 들어간 깔끔한 분위기의 카페. 음료를 가져다주는 여직원이 수줍은 한국말로 인사를 한 마디 건네고는 총총 사라진다. 왠지 귀엽다.
길다면 긴 11박 12일의 여정이지만 (계속 10박 11일로 알고 있었는데 정리해 보니 하루가 더 많았다) 체력의 한계로 매일 해 질 녘이면 마무리된 일정. 좀 더 열심히 다녀볼 걸 그랬나 아쉽기도 하다. 확실히 나이를 무시할 수 없구나. ㅠ
로손 무인계산대도 마스터하고 마트 이용도 이제야 좀 익숙한데 내일이면 떠나야 하네.
오전 비행기를 타러 일찍 숙소를 나섰다. 이래저래 여행은 끝났다. 어쩐지 헛헛하기도 하고 매번 그렇듯이 미련도 많이 남는다.
아직도 좌충우돌 쭈뼛쭈뼛거리다가 나가는 멍청비용도 많고 버리는 시간도 많지만... 이런 나도 난데 어쩌겠나.
다음에는 또 어디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