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보컬이 힘든가
노랫말 있는 노래(?), 그러니까 가사 있는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재즈를 좋아하지만, 보컬이 들어간 곡은 어쩐지 기피하게 된다. 음악을 듣는 순간만이라도 사람의 목소리가 듣고 싶지 않은 것일까. 나라는 인간 그냥 사람이 싫은 염세주의자인 것은 아닐지 고민도 해 보았다.
노랫말이 있는 노래가 좀체 좋아지지 않는 이유, 더 정확히는 악기의 소리로만 이루어진 연주곡이 더 좋은 이유를 굳이 생각해 보자면, 보컬리스트의 노래는 그 감정이나 메시지가 너무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것 같아 부담스럽달까. 연주자가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는 곡은 그의 감성이 악기를 통해 한 번 굴절되어 전달되는 느낌이다. 다시 말해, 연주자가 악기로 하여금 스스로 이야기하게 만든다는 것.
피아노가 말하게, 스스로 발음하게 하라.
알렉상드르 타로,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 중에서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는 그의 첫 스승이었던 타콩 선생님의 조언을 되새긴다. 몇 해 전 어느 늦은 가을날, 즉흥 연주로만 이루어진 피아노 솔로 공연을 본 적이 있다. (타로의 공연은 아니었다) 정해진 멜로디 없이 피아니스트가 그 순간순간의 느낌으로 자유롭게 연주하는 형식. 보통 음악을 들을 때는 연주자가 악기라는 도구를 통해서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즉흥 연주일 때는 반대로 악기가 연주자를 도구로 삼아,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 같다.
두 시간 가까이 무대 위의 피아노를 보고 있자니 저 양반(피아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공연장 한 곳에 굳건히 자리 잡고 앉아 매일 다른 온도와 습도와 공기를 경험하고, 매번 다른 연주자들의 손길을 느끼고 겪어오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쌓이지는 않았을까.